구로다 나오야스
1. 개요
구로다 나오야스는 에도 시대 후기의 무사로, 구루리번의 8대 번주이다. 1819년 구로다 나오요시의 첩복 장남으로 태어나, 구로다 나오마사의 양자가 되었고, 1854년 나오마사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막부 말기 혼란기에 에도 시내 치안 담당, 오사카성 야마자토마루 가반을 역임하며 해상 방어 강화에 힘썼다. 1866년 양자 구로다 나오요이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1876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모, 배우자, 자녀, 양자 등 가족 관계를 포함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 씨명 | 구로다 씨 |
|---|---|
| 이름 | 구로다 나오야스 |
| 원어 이름 | 黒田直和 |
| 아명 | 모리노죠(森之丞) |
| 초명 | 나오타다(直質) |
| 개명 | 나오야스(直和)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 출생 | 분세이 2년 음력 6월 21일(1819년 8월 11일) |
| 사망 | 메이지 9년(1876년) 1월 9일 |
| 묘소 | 사이타마현 한노시의 노닌지 |
| 관위 | 종5위하, 야마토노카미, 아와지노카미, 부젠노카미, 이즈미노카미, 이세노카미 |
| 아버지 | 구로다 나오요시(黒田直侯) |
|---|---|
| 양아버지 | 구로다 나오치카(黒田直静) |
| 형제 | 나오카즈(直和), 도쿠나가 나오타카(徳永直挙) |
| 배우자 | 정실: 오타 스케모토(太田資始)의 딸 계실: 이타쿠라 가쓰아키라(板倉勝明)의 딸 |
| 자녀 | 구로다 요리유키(黒田和志, 소 요시요리(宗義和)의 6남))의 정실 양자: 구로다 나오타카(黒田直養) |
| 막부 | 에도 막부 |
|---|---|
| 주군 | 해당사항 없음 |
| 번 | 가즈사 구루리번주 |
| 재임 기간 | 1854년 ~ 1866년 |
-
구루리번주 -
구로다 나오즈미
구로다 나오즈미는 혼다 마사노리의 차남으로 태어나 구로다 나오쿠니의 양자가 되어 누마타 번주가 되었으며, 구루리 번으로 이봉된 후 종4위하로 승진했으나 주자반 직을 해임당하고 71세에 사망했다. -
구루리번주 -
쓰치야 다다나오
쓰치야 다다나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 되어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겼으며, 가즈사 구루리 번의 번주가 되었고,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는 설이 있는 '후지 삼보 세이켄지 그림 병풍'이 전해진다. -
후다이 구로다씨 -
누마타번
누마타번은 에도 시대 고즈케국 누마타 지역에 존재했던 번으로, 사나다 씨, 혼다 씨, 구로다 씨를 거쳐 도키 씨가 다스렸으며 마지막 번주 도키 요리오키가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에 협력하여 폐번치현 이후 군마현에 편입되었다. -
후다이 구로다씨 -
소 다케유키
소 다케유키는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덕혜옹주와 결혼했으나 이혼 후 재혼하여 레이타쿠 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윤리학 연구, 번역, 저술 활동을 하다가 1985년에 사망했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2. 생애
덴포 9년(1838년) 7월, 아버지의 양자로 제7대 번주가 된 구로다 나오즈미의 양자가 되었다. 고카 3년(1846년) 12월, 종5위하 야마토노카미에 서위, 임관되었고, 가에이 원년(1848년) 10월, 아와지노카미로 전임되었다. 가에이 7년(1854년) 나오즈미가 사망하면서 가독을 이었다. 같은 해 6월 27일, 부젠노카미로 전임되었고, 안세이 2년(1855년) 6월, 이름을 나오스(直質)에서 나오카즈로 개명했다. 안세이 5년(1858년) 6월, 이세노카미로 전임되었다.
막말 동란기인 분큐 3년(1863년)부터 에도 시내의 치안이 악화되자 단속역을 맡았고, 같은 해 4월에는 오사카성 야마자토마루 가반에 임명되었다. 그 밖에도 외국 선박에 대비해 해상 방어 강화에 힘썼다.
게이오 2년(1866년) 4월 2일, 병 때문에 가독을 양자인 나오나가(양부 나오즈미의 조카)에게 물려주고 은거하여 삭발하고 쇼카쿠라고 호했다. 메이지 9년(1876년) 1월 9일, 아사쿠사의 도리고에 별저에서 58세로 사망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분세이 2년(1819년) 6월 21일, 에도에서 구루리번 제6대 번주 구로다 나오요시의 첩복 장남으로 태어났다.
덴포 9년(1838년) 7월, 아버지의 양자로 제7대 번주가 된 구로다 나오마사의 양자가 되었다. 고카 3년(1846년) 12월, 종5위하 야마토노카미에 서위·임관하였다. 가에이 원년(1848년) 10월, 아와지노카미로 전임되었다.
가에이 7년(1854년), 양부 나오마사가 사망하면서 가독을 상속받고 제8대 번주가 되었다. 같은 해 6월 27일, 부젠노카미로 전임되었다. 안세이 2년(1855년) 6월, 이름을 나오미쓰(直質)에서 나오카즈(直和)로 개명하였다. 안세이 5년(1858년) 6월, 이세노카미로 전임되었다.
2.2. 막부 말기 활동
막말 동란기인 분큐 3년(1863년)부터 에도 시내의 치안이 악화되자 단속역을 맡았고, 같은 해 4월에는 오사카성 야마자토마루 가반(大坂城山里丸加番일본어)에 임명되었다. 그 밖에도 외국 선박에 대비해 해상 방어 강화에 힘썼다.
2.3. 은거와 사망
게이오 2년(1866년) 4월 2일, 건강이 좋지 않아 가독을 양자인 나오나가(구로다 나오즈미의 조카)에게 물려주고 은거하였다. 은거 후에는 삭발하고 쇼카쿠(松閣)라는 호를 사용했다. 메이지 9년(1876년) 1월 9일, 아사쿠사의 도리고에 별저에서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둘째 딸 레이코(禮子일본어, 1863~1925)는 1877년에 구로다 나오요시의 가독을 이어 그의 사위로 무네요시와 6남 가즈시를 들여 구로다 가문을 계승하게 했다. 나오야스의 넷째 아들 소 다케유키는 조선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결혼했다.
3.1. 부모
* 구로다 나오타카 (친부)
* 구로다 나오시즈 (양부)
3.2. 배우자
* 정실: 오타 스케모리의 딸 오타 탄코
* 계실: 이타쿠라 카츠아키의 딸 이타쿠라 라쿠코
3.3. 자녀
차녀: 구로다 린코 - 구로다 나오야스의 양녀이자 자작 구로다 카즈시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