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봉행
1. 개요
군칸부교는 일본 바쿠후의 해군 관련 직책이다. 1845년 이후 해안 수역 감독 및 외국 관련 문제를 처리하는 '가이보가카리'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미즈노 다다노리, 나가이 나오무네, 이노우에 규오나오 등이 역임했으며, 에노모토 다케아키, 가쓰 가이슈, 기무라 가이슈도 군칸부교를 지냈다.
군함봉행
군함봉행
| 로마자 표기 | Gunkan-bugyō |
|---|---|
| 한자 표기 | 軍艦奉行 |
| 일본어 표기 | 軍艦奉行 |
| 직책 | 에도 막부의 직책 |
|---|
상세 정보
| 소속 | 해군 부대 |
|---|---|
| 역할 | 군함 건조 감독 해군 요원 훈련 조선소 관리 |
| 관할 | 나가사키 고베 요코하마 기타 주요 항구 |
| 설치 시기 | 1855년 |
| 폐지 시기 | 1869년 |
| 관련 직책 | 가이군부교 (海軍奉行) 쇼군 |
| 영향 | 일본 해군 발전 기여 서양식 군함 도입 해군 기술 발전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막부해군 -
대선건조의 금
대선건조의 금은 에도 막부가 서국 다이묘의 군사력 약화와 막부 권력 강화를 목적으로 160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500석 이상의 대형 선박 건조를 금지한 정책으로, 이후 무가제법도 개정을 거쳤으나 1853년 서양 세력의 등장으로 폐지되었다. -
에도 막부 군함봉행 -
오구리 다다마사
-
에도 막부 군함봉행 -
나가이 나오유키 (1816년)
나가이 나오유키는 에도 막부 말기의 하타모토로, 나가사키 해군 전습소 총감, 외국 봉행 등을 지내며 막부 해군력 강화와 통상 조약 체결에 기여했고, 에조 공화국 수립에 참여했으며, 메이지 유신 후에는 메이지 정부에서 관료를 지냈다. -
봉행 -
오봉행
오봉행은 도요토미 정권의 행정 실무를 담당한 5명의 중신으로, 사법, 행정, 토목, 재정, 종교 분야를 분담하여 교토와 그 주변 지역을 통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
봉행 -
정봉행
정봉행은 에도 막부의 직책으로 에도의 민정을 담당하며 행정권과 재판권을 가졌고, 사사봉행, 감정봉행과 함께 삼봉행으로 불렸다.
2. 군칸부교의 역할과 중요성
군칸부교는 에도 막부의 해군 운영과 관련된 직책이었다. 주요 임무는 함선 건조 및 유지 보수, 해군 훈련, 해안 방어 등이었다. 19세기 중반 외세의 위협이 커지면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군칸부교를 역임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미즈노 다다노리 (1859)
* 나가이 나오무네 (1859)
* 이노우에 규오나오 (1859–1862)
* 오구리 다다마사 (1865)
* 에노모토 다케아키 – 해군경(海軍卿) (1866–1868)
* 가쓰 가이슈
* 기무라 가이슈 (1860–1865, 1866–1868)
2.1. 가이보가카리(海防掛)와의 관계
海防掛일본어는 1845년 이후 일부 바쿠후 관리들의 직책에 사용된 용어이다. 이 용어는 해안 수역을 감독하고 외국인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특별한 책임을 지닌 자들을 지칭했다. 예를 들어, 海防-掛-御目付일본어는 나중에 外国掛일본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3. 역대 군칸부교
| 이름 | 재임 기간 |
|---|---|
| 미즈노 다다노리 | 1859년 |
| 나가이 나오무네 | 1859년 |
| 이노우에 규오나오 | 1859년 ~ 1862년 |
| 오구리 다다마사 | 1865년 |
| 에노모토 다케아키 (해군경) | 1866년 ~ 1868년 |
| 가쓰 가이슈 | 1864년, 1866년 ~ 1868년 |
| 기무라 가이슈 (키무라 요시타케) | 1859년 ~ 1863년, 1867년 ~ 1868년 |
| 나가이 다카시 | 1859년 |
| 미즈노 다다토쿠 | 1859년 |
| 우치다 마사토쿠 | 1862년 ~ 1863년 |
| 마쓰다이라 요리하라 | 1863년 |
| 호리 토시모토 | 1864년 |
| 오구리 다다스미 | 1864년 ~ 1865년 |
| 기노시타 토시요시 (이자와 킨고) | 1865년 ~ 1867년 |
| 이시노 노리츠네 | 1865년 ~ 1866년 |
| 오카베 나가츠네 | 1865년 |
| 후지사와 쓰기켄 | 1866년 ~ 1867년 |
| 아카마쓰 노리시즈 | 1867년 ~ 186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