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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삼가해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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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강경삼가해 권1》은 1482년(성종 13)경에 정축자, 을해자, 한글 활자로 인쇄된 불서이다.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본문 글자를 바탕으로 주조된 정축자는 필력이 돋보이며, 《금강경오가해》와 함께 금속활자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를 포함하며, 한글 구결과 언해가 실려 국어학적 가치도 지닌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등 여러 판본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판본이 드물어 희귀성을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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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삼가해 권1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금강경삼가해 권1 표지
이름금강경삼가해 권1 (金剛經三家解 卷一)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457
지정일2019년 12월 5일
주소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1482년
소유자한기수
수량1책

2. 간행 배경 및 역사

《금강경삼가해》는 송나라 야보 도천(道川)의 「금강경착어(金剛經着語)」와 송(頌), 예장 종경(宗鏡)의 「금강경제강(金剛經提綱)」, 조선 함허 기화의 「금강경설의(金剛經說誼)」를 한글로 풀이하고 구결을 단 책이다.[1]

1482년(성종 13)경에 간행된 이 책은 금강경 본문의 큰 글자(大字)는 정축자를,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을해자 중자(中字)를, 한글 구결과 언해 부분은 을해자 소자(小字)를 사용했다.[1]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축자는 《금강경오가해》와 《금강경삼가해》의 금강경 본문에만 사용되어 '금강경대자'라고도 불린다.[1]

《금강경삼가해》는 정축자와 을해자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경 본문은 1행이 15자,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 등은 1행이 21자로 구성되었다.

2. 1. 세종 시대의 준비

세종은 함허 득통 기화 등의 금강경 주석과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언해를 《석보상절》에 넣으려 했으나, 언해가 완성되지 못했다. 세조가 이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금강경오가해》와 《영가진각대사증도가주해》만 간행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성종 때 정희왕후가 이어서 간행했다.[1]

2. 2. 세조 시대의 간행 시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금강경삼가해》 권5 말미에 있는 한계희의 발문에 따르면, 세종 대에 야보 도천, 예장 종경과 조선 승려 함허 기화의 금강경 주석, 그리고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의 언해를 《석보상절》에 넣으려 했으나 언해가 완료되지 못했다.[1] 세조는 이 사업을 이어받았으나, 결국 언해의 참고 자료인 《금강경오가해》와 《영가진각대사증도가주해》만을 간행하고 세상을 떠났다.[1]

2. 3. 성종 시대의 완성

세종 때 야보 도천, 예장 종경과 조선 승려 함허 기화가 쓴 금강경 주석, 그리고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을 한글로 번역하여 《석보상절》에 넣으려 했으나, 번역이 완료되지 못했다.[1] 세조가 이어서 번역하려 했으나 《금강경오가해》와 《영가진각대사증도가주해》만 간행하고 세상을 떠났다.[1] 성종 때 정희왕후가 이어서 간행하였다.[1]

이 책은 1482년 (연산군 9년)에 을해자 및 정축자로 간행되었으며, 정축자 제작을 위한 글자본은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본문이다.[1] 정교하게 주조되어 다른 활자의 큰 글자보다 필력이 예리하다.[1] 정축자 주성(鑄成) 관련 기록은 《영가진각선사증도가주해》와 《금강경오가해》 책 끝의 「어제발(御製跋)」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1]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경오가해》를 간행할 때,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글자를 금속활자로 만들었다.[1] 정축자는 현재 남아있는 판본들을 보면 《금강경오가해》와 《금강경삼가해》의 금강경 본문에만 사용되어 '금강경대자'라고도 불린다.[1] 《금강경삼가해》는 정축자와 을해자를 함께 사용했기에 경 본문은 1행이 15자,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 등은 1행이 21자이다.[1] 행자수(行字數)는 금강경 본문의 조판 상황에 따라 9∼11행까지 쓰였다.[1]

3. 구성 및 내용

《금강경삼가해》는 야보(冶父)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 기화(己和)(1376-1433)가 설의(說誼)를 뽑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책이다.[1] 성종 13년(1482)에 간행되었으며, 금강경 본문의 대자(大字)는 정축자(丁丑字),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을해자(乙亥字) 중자(中字), 한글 구결과 언해 부분은 을해자 소자(小字)를 사용했다.[1]

《금강경삼가해》는 1482년(성종 13)경에 간행된 불서로, 《금강경언해》의 구결과 송나라 야보 도천의 「금강경착어(金剛經着語)」와 송, 송나라 예장 종경의 「금강경제강(金剛經提綱)」, 조선 함허 득통 기화(1376-1433)의「금강경설의(金剛經說誼)」를 언해하고 결의(決誼)를 더한 언해본 불서이다. 권수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1]

《금강경삼가해》 이전에 만들어진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는 당나라 종밀(宗密)의 찬요(纂要), 양나라 부대사(傅大士)의 찬(贊), 당나라 육조 혜능의 구결(口訣), 송나라 야보의 송, 송나라 종경의 제강에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당 득통 기화(1376-1433)가 중요한 부분을 모아 풀이한 책이다. 이 중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를 뽑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책이 《금강경삼가해》이다.[1]

현재 이 책은 1책만 남은 영본(零本)으로, 초기 왕실 불서 간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1] 인쇄 상태가 좋고 글자 자획이 정교하며 세조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판본으로서 희귀하며, 언해본으로서 15세기 중엽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

본 대상본은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총 5권 가운데 권1의 1책만 남아 있으며, 서문과 권1의 내용을 담고 있다. 표지 우측 하단에 수록된 기록과 《금강경삼가해》의 구성 체재로 볼 때 본래 5책이 완질이지만, 이 책은 1책만 남은 것이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의 크기는 서문 세로 27.0㎝ 가로 19.6㎝, 본문 세로 27.2㎝ 가로 19.4㎝이며, 본문은 9행 21자, 책의 크기는 세로 36.7㎝ 가로 24.3㎝이다. 표지는 후대에 개장되었으며 오침안(五針眼)의 선장(線裝)이다. 판심의 어미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고 판심제는 '金剛經三家解'이다. 표지 다음에 공격지 없이 서문이 시작되고 이어서 권1의 본문이 시작된다.[1]

3. 1. 원문 및 주석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권1의 본문은 《금강경》 본문을 단락별로 나누어 싣고, 야보(冶父) 도천(道川)의 송(頌)과 예장(豫章) 종경(宗鏡)의 제강(提綱)은 한 글자 내려서, 함허 기화(涵虛己和)의 설의(說誼)는 한 글자 더 내려서 싣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1] 경 본문에는 한글로 구결만 달려 있고 언해는 되어 있지 않으며,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구결과 번역이 모두 달려 있다.[1]

본문의 내용에 앞서 1415년에 작성한 함허 득통(涵虛得通)의 「금강반야바라밀경서(金剛般若波羅密經序)」와 종경의 「제송강요서(提頌網要序)」가 서문으로 수록되어 있다.[1]

3. 2. 한글 구결 및 언해

《금강경삼가해》는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당 득통 기화(1376~1433)가 금강경에 대한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자신의 설의를 뽑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책이다.[1] 성종 13년(1482)에 간행되었는데, 금강경 본문은 정축자 대자,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을해자 중자, 한글 구결과 언해 부분은 을해자 소자를 사용했다.[1]

경 본문에는 한글로 구결만 달려 있고 언해는 되어 있지 않으며,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구결과 번역이 모두 되어 있다.[1]

정축자는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금강경삼가해》에서는 금강경 본문에 사용되었다.[1] 이 활자는 주조가 정교하여 다른 활자의 대자보다 필력이 예리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1]

4. 서지학적 특징

《금강경삼가해》는 1482년(성종 13년)경에 간행된 불서로, 금강경언해의 구결과 송나라 야보 도천(道川)의 「금강경착어(金剛經着語)」와 송(頌), 송나라 예장(豫章) 종경의 「금강경제강(金剛經提綱)」, 조선 함허득통 기화(己和, 1376~1433)의 「금강경설의(金剛經說誼)」를 언해하고 결의(決誼)를 더한 언해본 불서이다. 권수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1]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를 뽑아 한글 구결을 달고 언해한 책으로, 성종 13년(1482) 내수사에서 300부를 간행하였다.[1]

본 대상본은 《금강경삼가해》 총 5권 가운데 권1의 1책만 남아있는 영본(零本)으로, 내용은 서문과 권1이다. 본래 5책이 완질이지만, 이 책은 서문과 권1의 1책만 남은 것이다. 판식, 변란, 반곽, 본문, 책의 크기, 장정, 판심 등은 다음과 같다.[1]

구분내용
판식사주단변(四周單邊)
변란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 크기서문: 세로 27.0㎝ 가로 19.6㎝, 본문: 세로 27.2㎝ 가로 19.4㎝
본문9行21字
책 크기세로 36.7㎝ 가로 24.3㎝
장정후대에 개장, 오침안(五針眼)의 선장(線裝)
판심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판심제는 '金剛經三家解'



표지 다음에 공격지 없이 서문이 시작되고 이어서 권1의 본문이 시작된다.[1]

서문은 1415년에 작성한 함허득통의 「금강반야바라밀경서(金剛般若波羅密經序)」와 종경의 「제송강요서(提頌網要序)」이다. 본문의 체재는 우선 금강경 본문을 단락으로 나누어 싣고, 야보의 송과 종경의 제강은 한 글자 내려서, 기화의 설의는 한 글자 더 내려서 싣고 있다. 경 본문은 한글로 구결만 달려 있고 언해는 되어 있지 않으며,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구결도 달려 있고 번역도 되어 있다.[1]

책의 표지는 후대에 개장하였고 본문은 누습으로 얼룩진 흔적이 있으나 내용을 확인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고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다만 권1의 제33-36장이 결락되어 온전하지 않다.[1]

4. 1. 활자 및 인쇄술

1482년(성종 13년)에 간행된 《금강경삼가해》 권1은 정축자(丁丑字)와 을해자(乙亥字)를 사용하여 인쇄되었다.[1] 금강경 본문의 큰 글자(大字)는 정축자로, 야보의 송(頌), 종경의 제강(提綱), 기화의 설의(說誼)는 을해자 중자(中字)로, 한글 구결과 언해 부분은 을해자 소자(小字)로 인쇄되었다.[1]

정축자는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본문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주조가 정교하여 다른 활자의 큰 글자보다 필력이 예리하게 나타난다.[1] 정축자는 《금강경오가해》와 《금강경삼가해》의 금강경 본문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강경대자'라고도 불린다.[1]

《금강경삼가해》는 정축자와 을해자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경 본문은 1항이 15자, 야보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 등은 1항이 21자이다.[1] 항자수(行字數)는 금강경 본문의 조판 상황에 따라 9항에서 11항까지 쓰였다.[1]

인쇄 상태는 좋고 글자 자획이 정교하며, 세조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판본으로서 희귀하다.[1]

4. 2. 희귀성 및 가치

《금강경삼가해》는 현존하는 판본이 드물어 희귀하며, 초기 왕실 불서 간행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1] 인쇄 상태가 좋고 글자 자획이 정교하며, 세조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1] 또한, 15세기 중엽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1]

특히, 금강경오가해와 더불어 금속활자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정축자의 주조를 위한 글자본은 세조가 직접 쓴 금강경 본문으로, 주조가 정교하여 다른 활자의 대자보다 필력이 예리하게 나타난다.[1]

동일한 시점에 간행된 판본이 매우 드물게 남아있다는 점도 희귀성을 더한다. 동일 판본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보물 제722-1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보물 제722-2호), 장흥 보림사 소장본(보물 제722-3호), 계명대학교 도서관 소장본(보물 제722-4호)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1]

5. 국어학적 가치

1482년(성종 13)경에 간행된 《금강경삼가해》는 15세기 중엽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 책은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불서로, 당시 국어의 모습을 보여준다.[1]

《금강경삼가해》는 한글 활자로 간행되었으며, 세종대에 시작된 언해 작업이 세조와 성종 대에 걸쳐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정희왕후가 간행을 이어받아 완성했다는 기록은 왕실 주도의 불서 간행 및 언해 사업의 연속성을 보여준다.[1]

《금강경삼가해》는 15세기 중엽 국어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동일한 시점에 간행된 판본이 매우 드물게 남아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1]

6. 문화재 지정 현황

현재 남아있는 《금강경삼가해》 동일 판본들은 다음과 같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1]

지정 번호소장처
보물 제772-1호세종대왕기념사업회
보물 제772-2호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보물 제772-3호장흥 보림사
보물 제772-4호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사 대상본은 비록 1책만 남은 영본(零本)이고 몇 장이 결락되었지만, 초기 왕실 불서 간행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1] 1482년(성종 13년)에 간행된 이 판본은 인쇄 상태가 좋고 글자 자획이 정교하며, 세조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어 희귀하다.[1] 또한, 언해본으로서 15세기 중엽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 이처럼 동일 시점에 간행된 판본이 매우 드물게 남아있으므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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