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선정릉은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 중종의 능으로, 사적 제199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어 시신이 없는 상태이며, 중종의 능은 원래 고양시에 있었으나 이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선정릉은 도심 속 역사 공간으로, 인근 테헤란로의 옛 이름은 삼릉로였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 강남구의 문화유산 - 경국대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72호)
경국대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72호)은 1485년 완성된 조선 시대 법전 《경국대전》의 내용을 담은 1668년 평안도 판본으로, 완전한 형태의 희귀한 동일본이라는 점에서 서지학 및 법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서울 강남구의 문화유산 -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조선 시대 문신 이후원과 부인들의 묘가 있는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은 대모산 자락에 위치하며, 왕실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석물과 묘표 등으로 조선 후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조선 성종 - 성종 (조선)
성종은 조선의 제9대 국왕으로,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아들이며 예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친정 후 홍문관 설치, 경국대전 반포 등 조선의 통치 체제 확립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폐비 윤씨 사사 사건과 서얼 차별 강화는 비판받기도 한다. - 조선 성종 - 경국대전
《경국대전》은 조선 시대 국가 통치와 사회 전반을 규정한 성문법전으로, 세조 때 시작된 개정과 보완을 거쳐 성종 때 최종 반포되었으며, 6전으로 구성되어 조선 사회의 제도와 법규를 규정하고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으나 서자 차별을 제도화하는 등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
선정릉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선정릉 |
한자 | 宣靖陵 |
로마자 표기 | Seonjeongneung |
문화재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199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삼성동 131)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70년 5월 26일 |
문화재청 번호 | 13,01990000,11 |
관할 기관 | 문화재청 |
세계유산 | |
등재 연도 | 2009 |
등재 회차 | 33회 세계유산위원회 |
유형 | 문화 |
등재 기준 | iii, iv, vi |
등재 번호 | 1319 |
지역 | 아시아 및 오스트랄라시아 |
2. 역사
2. 1. 조성 배경
2. 2. 임진왜란과 수난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파헤쳐져 재궁이 전부 불타 버렸기 때문에, 선릉과 정릉의 세 능상 안에는 시신이 없다. 정릉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침에서는 아예 잿더미들만 나왔지만 중종의 능침에서는 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신이 중종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원로 대신에서부터 궁중의 나인들까지 동원되어 살펴보았지만 중종이 승하한 지 오래 되어 외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었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이라 확인이 힘들었다. 남아있던 기록과 시신의 모습이 달랐고 중종이 승하할 당시가 더운 여름이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가져다 둔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중종의 시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릉 근처의 정결한 곳에 묻었다. 어쨌든 선정릉의 세 능상은 모두 비어있으며(정확히는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의복들만 묻혀있다), 그 시신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2. 2. 1. 역사적 기록과 논란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파헤쳐져 재궁이 전부 불타 버렸기 때문에, 선릉과 정릉의 세 능상 안에는 시신이 없다. 정릉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침에서는 아예 잿더미들만 나왔지만 중종의 능침에서는 시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신이 중종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원로 대신에서부터 궁중의 나인들까지 동원되어 살펴보았지만 중종이 승하한 지 오래 되어 외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었고 남은 사람들도 고령이라 확인이 힘들었다. 남아있던 기록과 시신의 모습이 달랐고 중종이 승하할 당시가 더운 여름이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가져다 둔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중종의 시신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릉 근처의 정결한 곳에 묻었다. 어쨌든 선정릉의 세 능상은 모두 비어있으며(정확히는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의복들만 묻혀있다), 그 시신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3. 구조 및 특징
3. 1. 선릉
3. 2. 정릉
4. 문화적 가치
4. 1. 사적 지정 및 세계유산 등재
1495년 성종의 능인 선릉이 조성되었고, 1530년 성종의 제2계비인 정현왕후의 능이 선릉 동쪽에 안장되었다.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각 한 봉분씩 조성한 경우로 동원(同原) 이강(異岡) 형식이다. 1562년 문정왕후는 1544년에 축조된 중종의 능인 정릉을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에서 이곳으로 옮겼으나, 이 곳 또한 매년 여름이면 능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태릉에 홀로 안장되었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선정릉은 사적 제199호이고,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4. 2. 도심 속 역사 공간
5. 기타
5. 1. 테헤란로 명칭 유래
인근 테헤란로의 원래 이름은 이 선정릉에 봉분 세 개가 있다는 것에 착안한 '삼릉로'(三陵路)였다.[4]참조
[1]
웹사이트
Seonjeongneung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8-04-21
[2]
웹사이트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http://jikimi.cha.go[...]
2010-11-06
[3]
웹사이트
서울의 공원
http://parks.seoul.g[...]
[4]
뉴스
커버스토리: 테헤란로의 새 주인은 누구인가
http://gangnam.joins[...]
중앙일보 강남통신
2016-03-3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