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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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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릉 김씨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셋째 아들 김무득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 진흥왕 때 김무득이 금릉군에 봉해진 데서 유래하며, 고려 고종 때 김중구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인 금릉이며, 주요 인물로는 고려 시대 김위, 김의, 김석보, 김효탁 등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김택, 김광귀, 김규, 김각, 김맹지, 김철성, 김원석, 김장, 김상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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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경상북도 김천시 지도
경상북도 김천시 지도
관향경상북도 김천시
시조김무득(金武得)
중시조김중구(金仲龜)
집성촌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경상북도 김천시
경상북도 구미시
경상북도 상주시
인구18,158명 (2000년)

2. 유래

가락국(駕洛國)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아들인 '''김무득'''(金武得)을 시조로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562년(진흥왕 23) 대가야(大伽倻)가 신라의 장수 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斯多含)에게 정복되어 신라(新羅)와 병합(倂合)되고, 진흥왕(眞興王)이 가락국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을 설치하여 시조인 김무득이 시랑(侍郞) 겸 총관(總管)에 제수하고 금릉군(金陵君)에 봉해져 본관을 금릉(金陵)으로 삼았다.

그 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고려 고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수사공(守司空)·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서경유수(西京留守) 등을 지내고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오르고 금릉군(金陵君)에 봉해진 김중구(金仲龜)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3. 본관

금릉(金陵)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김천지역이다. 김천지역은 삼한시대(三韓時代)의 감문소국(甘文小國)이었다. 그후 660년(신라 무열왕 7)에 와서 감문군(甘文郡)으로 불리었고, 757년(경덕왕 16) 개령군(開寧郡)으로 개칭되었다. 1941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김천군(金泉郡)으로 바뀌었으며, 1949년 김천군이 금릉군으로 개편되고 김천군은 김천부로, 다시 김천시(市)로 승격되었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을 김천시로 통합하였다.

4. 상계도

금릉 김씨의 시조는 '''김무득'''(金武得)이다. 그 후손으로 '''김창현'''(金昌玄), '''김경'''(金慶), '''김원생'''(金元生)이 있다.

'''김원생'''(金元生)의 아들로는 '''김중구'''(金仲龜)가 있고,. '''김중구'''(金仲龜) 아들로는 '''김위'''(金褘)가 있다.

'''김위'''(金褘)의 아들로는 '''김의'''(金儀)가 있고,. '''김의'''(金儀) 아들로는 '''김대년'''(金大年)이 있다.

'''김대년'''(金大年)의 아들로는 '''김석보'''(金錫保)가 있다.

'''김석보'''(金錫保)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김효탁'''(金孝鐸)과 '''김효인'''(金孝仁)이다.

'''김효인'''(金孝仁)의 아들로는 '''김관'''(金琯)이 있고,. '''김관'''(金琯) 아들로는 '''김택'''(金澤)이 있다.

'''김택'''(金澤)은 아들 셋을 두었는데, '''김광귀'''(金光貴), '''김광부'''(金光富)와 '''김광수'''(金光壽)이다.

'''김광수'''(金光壽)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김규'''(金規)와 '''김거'''(金炬)이다.

'''김거'''(金炬)의 아들로는 '''김연'''(金璉)이 있고,. '''김연'''(金璉) 아들로는 '''김자정'''(金自貞)이 있다.

'''김규'''(金規)의 아들로는 '''김각'''(金珏)이 있고,. '''김각'''(金珏) 아들로는 '''김자형'''(金自亨)이 있다.

'''김자형'''(金自亨)의 아들로는 '''김옥정'''(金玉鼎)이 있고,. '''김자정'''(金自貞) 아들로는 '''김맹지'''(金孟智)가 있다.

5.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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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22세23세24세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37세38세39세40세41세
덕(德)상(相)유(惟)○신(信)석(錫)○호(浩)병(秉)○로(魯)재(在)○현(鉉)영(泳)○식(植)용(容)○준(埈)정(鉦)○완(浣)동(東)○희(熙)기(基)○용(鎔)준(浚)


6. 주요 인물

6. 1. 고려 시대


  • 김위(金褘)는 금릉군 중구의 아들로, 보문각 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 김의(金儀)는 김위(金褘)의 아들로, 낭장(郎將)을 역임하였다.
  • 김석보(金錫保)는 태자 태보(太子太保)를 역임하였다.
  • 김효탁(金孝鐸)은 김석보(金錫保)의 아들로, 태자 첨사(太子詹事 : 동궁에 속한 정 3품 벼슬)에 올라 좌복야를 역임했다.

6. 2. 조선 시대

김택(金澤)은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광귀(金光貴)는 김택의 아들로, 양주 목사(楊州牧使)를 역임했다. 김규(金規)는 김광귀의 아들로, 성리학(性理學)에 정통한 학자였다. 그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으나 벼슬을 버리고 금릉군(金陵郡) 어모면(禦侮面) 덕마동(德馬洞)에 돌아갔다가 옥천(沃川) 청산(靑山)의 청량산(淸凉山)으로 이주하여 성리학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김각(金珏)은 김규의 아들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정국원종이등공신(靖國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고 덕산 현감(德山縣監)을 지냈다. 김맹지(金孟智)는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김철성(金哲成)은 김맹지의 아들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다.

김원석(金元錫)은 빈곤한 가정 형편에도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장(金樟)은 교위 홍선의 아들로, 김장생(金長生)의 문인(門人)으로 학문이 뛰어나 「훈몽서지행방편(訓蒙書知行方編)」을 저술했다. 김상원(金相元)은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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