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내친왕 (1224년)
1. 개요
기시 내친왕은 가마쿠라 시대 후기의 황족으로, 고사가 천황의 이복 여동생이다. 1245년에 내친왕 선하를 받고 이세 재궁에 봉직했으며, 이듬해 고사가 천황의 양위로 재궁 직에서 물러났다. 1248년 황후로 책봉되었으며, 1251년 원호를 받아 센카몬인으로 불렸다. 1262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기시 내친왕 (1224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 이름 | 기시/아키코 내친왕 (曦子内親王) |
|---|---|
| 직위 | 제88대 고사가 천황의 준모 센카몬인 (仙華門院) |
| 출생 | 1224년 |
| 사망 | 1262년 10월 5일 |
| 아버지 | 츠치미카도 천황 |
| 어머니 | 미나모토노 아리마사의 딸 |
생애
| 출생 | 1224년 |
|---|---|
| 내친왕 선하 | 간겐 2년 12월 16일 (1245년 1월 15일) |
| 입후 근거 | 제88대 천황의 준모 |
| 황후 | 호지 2년 8월 8일 (1248년 8월 27일) |
| 여원호 | 센카몬인 (仙華門院) |
| 여원 | 겐초 3년 3월 27일 (1251년 4월 19일) |
| 사망 | 고초 2년 8월 21일 (1262년 10월 5일) |
| 이세 사이구 | 이세 사이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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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간겐 2년(1245년) 내친왕 선하를 받고 이복 오빠 고사가 천황의 즉위에 따라 21세의 나이로 재궁으로 정해졌다. 간겐 4년(1246년) 고사가 천황의 양위로 군행(群行) 없이 재궁 직에서 물러났다. 호지 2년(1248년) 고사가 천황의 준모(准母)로서 황후에 책봉되었고, 겐초 3년(1251년) 원호를 받아 센카몬인(仙華門院)이라 불렸다. 고초 2년(1262년) 39세의 나이로 붕어하였다.
2.1. 출생과 재궁 봉직
간겐 2년 12월 16일 (1245년 1월 15일) 내친왕 선하를 받았고, 같은 날 이복오빠인 고사가 천황의 즉위에 따라 21세의 나이로 재궁에 복정되었다. 간겐 3년 8월 13일 (1245년 9월 5일)에는 사콘노에후로 쇼사이인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9월 17일 (10월 9일) 노미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간겐 4년 1월 29일 (1246년 2월 16일), 고사가 천황이 양위함에 따라 군행을 거치지 않고 재궁 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