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 (광록훈)
1. 개요
김상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봉거도위를 거쳐 김일제의 뒤를 이어 투후에 봉해졌다. 전한 선제 때 곽씨 가문에 불길한 조짐이 보이자 아내와 이혼하여 곽씨 일가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 태복을 거쳐 전한 원제 때 광록훈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절이다.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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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4년 출생 -
전한 소제 (8대)
전한 소제는 전한의 제8대 황제로, 무제의 막내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곽광 등의 보필을 받으며 민생 안정과 국력 회복에 힘썼으나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급사했다. -
기원전 42년 사망 -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이며,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했으나 내전에서 패배하여 자결했다. -
기원전 42년 사망 -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정치인이자 군인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였으며, 필리피 전투에서 패배하여 자결했다. -
전한의 시중 -
곽거병
곽거병은 전한 무제 시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젊은 나이에 표기장군과 대사마에 오르며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4세에 병사했으며, 그의 묘는 흉노를 짓밟는 말의 석상으로 유명하다. -
전한의 시중 -
이릉
이릉은 전한의 무장으로 이광의 손자이며 기마궁술에 능하여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항복 후 흉노의 우교왕이 되어 20여 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 병사했고 그의 항복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비판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옹호론이 있다.
2. 생애
김상은 봉거도위를 지냈고, 김일제의 뒤를 이어 투열후(秺侯)에 봉해졌다. 전한 선제 때 곽씨 가문에 나쁜 조짐이 보이자 먼저 글을 올려 아내와 이혼하여 관계를 끊었다. 덕분에 곽씨 일가가 모반죄로 주살되었을 때 연좌되지 않았다.
이후 태복을 거쳐 전한 원제 때 광록훈이 되었다가 1년 만에 죽었다. 시호는 절이라 하였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2.1. 관직
봉거도위를 지냈고, 김일제의 뒤를 이어 투열후(秺侯)에 봉해졌다. 전한 선제 때 곽씨 가문에 나쁜 조짐이 보이자 먼저 글을 올려 아내와 이혼하여 관계를 끊었다. 덕분에 곽씨 일가가 모반죄로 주살되었을 때 김상은 연좌되지 않았다.
이후 태복이 되었고, 전한 원제 때 광록훈이 되었다가 1년 만에 죽었다. 시호를 절이라 하였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2.2. 곽씨 가문과의 관계 단절
선제 때 곽씨 가문에 나쁜 조짐이 보이자 먼저 글을 올려 아내와 이혼하여 관계를 끊었다. 덕분에 곽씨 일가가 모반죄로 주살되었을 때 김상은 연좌되지 않았다.
김상은 김일제의 뒤를 이어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2.3. 사망과 후계
김상은 봉거도위를 지냈고, 김일제의 뒤를 이어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전한 선제 때 곽씨 가문에 나쁜 조짐이 보이자 먼저 글을 올려 아내와 이혼하여 관계를 끊었다. 덕분에 곽씨 일가가 모반죄로 주살되었을 때 김상은 연좌되지 않았다.
이후 태복이 되었고, 전한 원제 때 광록훈이 되었다가 1년 만에 죽었다. 시호를 절이라 하였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3. 출전
班固중국어, 《한서》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권68 곽광김일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