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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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인은 임진왜란 때 김충선과 함께 조선으로 귀화한 인물이다. 병자호란 때 북방 경비에 공을 세워 김성인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광해군 때 관직에 제수되어 가선대부, 가의대부, 자헌대부로 승진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경상북도 청도군에 정착했으며, 후손들은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성인의 자손으로는 김귀성, 김흥발, 김득추, 김수태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 건국 후 대종회를 결성하여 현재 약 4천 명 정도가 있다.

김성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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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인
본관김해 김(金海 金氏)
자(字)명보(明甫)
호(號)동고(東皐)
생애
출생1564년
사망1636년
활동 분야조선 무신
관직
주요 관력훈련원 판관
경상도병마사
가족 관계
아버지김취문(金 Joachim)
어머니은진 송씨(恩津 宋氏)
배우자정부인 문화 유씨(貞夫人 文化 柳氏)
자녀4남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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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진왜란과 귀화

임진왜란김충선과 함께 조선으로 귀화하였다. 구체적으로 문록·경장 전투에서 김충선(사야가)과 함께 투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귀화 후 조선 조정에 기용되어 1620년(광해군 12년)에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고, 이듬해인 1621년(광해군 13년)에는 변방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가의대부로 승진하며 광해군으로부터 김성인(金誠仁)이라는 이름과 자(字), 그리고 김해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이어 1622년(광해군 14년)에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하였다.

3. 조선에서의 활동

임진왜란김충선과 함께 조선으로 귀화한 김성인은 광해군 대에 변방 수비의 공으로 관직과 함께 이름, 자, 본관 등을 하사받았다. 이후 병자호란 때에도 북방 경비에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당시 일본인 투항병 다수가 함경도 방면에 배치되었으며, 전쟁 후 이들은 그 지역에 모여 살게 되었다.

김성인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경상북도 청도군에 정착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그의 후손들은 대종회(함박김씨)를 결성했으며, 현재 약 4천 명의 후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1. 관직 제수

임진왜란김충선과 함께 조선으로 귀화한 후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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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인 관직 제수 내역
연도관직비고
1620년(광해군 12년)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제수
1621년(광해군 13년)가의대부변방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였으며, 광해군으로부터 성과 이름, 자, 본관을 하사받음
1622년(광해군 14년)자헌대부승진

3.2. 하사받은 성명과 본관

임진왜란김충선과 함께 조선으로 귀화했다. 1621년(광해군 13년) 변방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가의대부로 승진하였고, 이때 광해군으로부터 성과 이름, 자, 본관을 하사받았다. 이는 1620년(광해군 12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로 제수받고, 1622년(광해군 14년) 자헌대부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후손들은 그가 처음 조선에 들어올 때 정착했던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알려진 자손으로는 김귀성(金貴成), 김흥발(金興發), 김득추(金得秋), 김수태(金守泰) 등이 있다.

4. 후손

김성인의 후손들은 그가 처음 조선에 들어온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알려진 자손으로는 김귀성(金貴成), 김흥발(金興發), 김득추(金得秋), 김수태(金守泰) 등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김성인의 후손들은 대종회(함박김씨)를 결성하였다. 현재 확인 가능한 김성인의 후손은 약 4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5. 정착

김성인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경상북도 청도군에 정착했다. 그의 자손들은 김성인이 처음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한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성인의 자손으로는 김귀성, 김흥발, 김득추, 김수태 등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김성인의 후손들은 함박김씨 대종회를 결성하였다. 현재 김성인의 모든 후손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약 4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