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정치인)
1. 개요
김용화는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 대학교와 베이징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후,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 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천안경찰서장과 협력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훈방 조치하여 보복 참사를 막았으며, 197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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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 -
권중돈
권중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무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민주당, 신민당 등 야당에서 활동하며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약력
*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 상수리 51번지에서 태어났다.
* 일본 니혼 대학 법학과 학사 (1926년)
* 중화민국 베이징 대학 정치학과 3년 중퇴 (1929년)
*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제헌 국회의원(충남 아산) 낙선
* 1949년 4월 8일 이병국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천안군의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1949년 6월 10일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자격을 상실하였다.
*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3. 생애
김용화는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나 1970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구한말 의관을 지낸 아버지 김정기의 영향을 받아 청백리적인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35년 서울로 이주하여 상회를 설립하고, 이후 천안으로 이주하여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천안 유지들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 제헌 국회의원 선거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하였다.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였고, 결국 과수원을 넘기게 되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보도연맹원들을 훈방 조치하여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보복 참사가 없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70년 8월 16일 68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천안시 성성동 노태산 기슭에 안장되었다.
3.1. 초기 생애 및 배경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 상수리 51번지에서 구한말 의관을 지낸 김정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직한 성품을 지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는 투지를 보였다고 하며, 이러한 성품은 그의 정치 생활에 외압과 핍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김정기는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민족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었으며, 김용화는 이러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청백리적인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35년 부친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여 남대문 근처에 성광상회(盛光商會)를 설립하였다. 이후 천안으로 이주하여 신부동 근방에 김용화 방죽과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3.2. 정치 활동
천안 유지들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충남 아산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펼쳤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학화호도과자에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였고, 결국 과수원을 넘기게 되었다. 1950년 7월 7일 천안이 인민군에 점령되기 전에 김종대 천안경찰서장과 상의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사상 전향 각서를 받고 훈방 조치하여, 인민공화국 시대에 보도연맹으로 인한 보복 참상이 없었다고 한다.
3.3. 6.25 전쟁과 보도연맹
1950년 7월 7일 천안이 인민군에 점령되기 전, 천안경찰서장 김종대와 상의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사상전향 각서를 받고 훈방 조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조치 덕분에 6.25 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보도연맹으로 인한 보복 참사가 없었다고 한다.
4.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대수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 1대 | 무소속 | 5,538표 | 9.58% | 5위 | 낙선 | |
| 1949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 1대 | 무소속 | 1위 | 당선 | 선거무효 | ||
|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2대 | 대한국민당 | 14,245표 | 28.49% | 1위 | 당선 | 초선 |
|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7대 | 민중당 | 638표 | 0.83% | 6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