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정치인)
1. 개요
김용화는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 대학교와 베이징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후,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 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천안경찰서장과 협력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훈방 조치하여 보복 참사를 막았으며, 1970년 사망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천안시 출신 -
주돈식
주돈식은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박정희 의장 비서관, 공보실장, 민주공화당 대변인,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김대중 정부의 정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국민회의 국회의원을 지낸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
천안시 출신 -
이재정 (1944년)
이재정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성공회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을 거쳤으며, 국민참여당 대표와 경기도 교육감을 역임했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
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약력
*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 상수리 51번지에서 태어났다.
* 일본 니혼 대학 법학과 학사 (1926년)
* 중화민국 베이징 대학 정치학과 3년 중퇴 (1929년)
*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제헌 국회의원(충남 아산) 낙선
* 1949년 4월 8일 이병국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천안군의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1949년 6월 10일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자격을 상실하였다.
*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3. 생애
김용화는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나 1970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구한말 의관을 지낸 아버지 김정기의 영향을 받아 청백리적인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35년 서울로 이주하여 상회를 설립하고, 이후 천안으로 이주하여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천안 유지들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 제헌 국회의원 선거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하였다.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였고, 결국 과수원을 넘기게 되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보도연맹원들을 훈방 조치하여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보복 참사가 없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70년 8월 16일 68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천안시 성성동 노태산 기슭에 안장되었다.
3.1. 초기 생애 및 배경
1902년 함경남도 함주군 상수리 51번지에서 구한말 의관을 지낸 김정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직한 성품을 지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는 투지를 보였다고 하며, 이러한 성품은 그의 정치 생활에 외압과 핍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김정기는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민족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었으며, 김용화는 이러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청백리적인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35년 부친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여 남대문 근처에 성광상회(盛光商會)를 설립하였다. 이후 천안으로 이주하여 신부동 근방에 김용화 방죽과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3.2. 정치 활동
천안 유지들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충남 아산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49년 천안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의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펼쳤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학화호도과자에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였고, 결국 과수원을 넘기게 되었다. 1950년 7월 7일 천안이 인민군에 점령되기 전에 김종대 천안경찰서장과 상의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사상 전향 각서를 받고 훈방 조치하여, 인민공화국 시대에 보도연맹으로 인한 보복 참상이 없었다고 한다.
3.3. 6.25 전쟁과 보도연맹
1950년 7월 7일 천안이 인민군에 점령되기 전, 천안경찰서장 김종대와 상의하여 보도연맹원 22명을 사상전향 각서를 받고 훈방 조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조치 덕분에 6.25 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보도연맹으로 인한 보복 참사가 없었다고 한다.
4.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대수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 1대 | 무소속 | 5,538표 | 9.58% | 5위 | 낙선 | |
| 1949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 1대 | 무소속 | 1위 | 당선 | 선거무효 | ||
|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2대 | 대한국민당 | 14,245표 | 28.49% | 1위 | 당선 | 초선 |
|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7대 | 민중당 | 638표 | 0.83% | 6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