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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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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김창시(金昌始, 1775년~1812년)는 조선 후기의 인물로, 1811년(순조 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의 주모자 중 한 사람입니다. 본관은 광산, 자는 몽초(夢初)입니다.
생애 및 활동:


  • 배경: 김창시는 부호 출신으로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엽관 활동에 실패하여 집안을 몰락시켰습니다. 당시 과거 합격자 임용이 적체된 상황에서, 서북인 출신이라는 점은 그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 홍경래의 난 가담: 김창시는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과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홍경래, 우군칙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부원수를 맡아 반란군을 지휘했습니다.
  • 홍경래의 난: 1811년(순조 11년) 12월 18일(양력 1812년 1월 31일)부터 1812년(순조 12년) 5월 29일(음력 4월 19일)까지 홍경래, 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입니다.
  • 난의 진행: 홍경래는 군을 남진군과 북진군으로 나누었는데, 김창시는 부원수로서 주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최후: 홍경래의 난은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고, 김창시를 포함한 주요 가담자들은 처형되었습니다.

추가 정보:

  • 조선왕조실록에는 평안 병사가 홍경래, 김창시 등 적도의 동태에 대해 보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는 김창시가 우군칙과 함께 "대원수 홍경래의 다섯 형제는 모두 장재(將才)가 있는데, 두 사람은 선천(宣川)에서, 두 사람은 북도(北道)에서 기병(起兵)한다면 안주(安州)·평양(平壤)을 차례로 공격해 취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호서(湖西)에서 기병하여 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김창시는 홍경래의 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과 지역 차별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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