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 (1926년)
1. 개요
김철우는 1926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포스코 건설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포항제철소 건설을 주도하여 한국 철강 생산량 증대에 기여했으며, 이후 포스코 기술고문,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첨단 철강 기술 개발을 이끌었다. 또한 박태준 회장과 함께 포항공과대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RIST를 설립하여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퇴임 후에는 중소기업 기술 교류에 힘썼으며, 동북아국제협력상을 수상했다.
-
도쿄 공업대학 동문 -
이와타 사토루
이와타 사토루는 1959년 출생하여 2015년 사망한 일본의 사업가이자 프로그래머로, 닌텐도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며 닌텐도 DS와 Wii를 출시하여 게임 시장을 확대하고 게임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도쿄 공업대학 동문 -
간 나오토
간 나오토는 1946년생으로 도쿄 공업대학을 졸업하고 변리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하여 사회민주연합과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2010년 제94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대응 과정에서 2011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일본의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기업인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기업인 -
문재인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2. 생애
김철우는 1926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인 2세 과학자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정진하여 도쿄공업대학과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금속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연구 성과로 일본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1968년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포스코 건설에 참여하여 초기 용광로 설계와 공장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한국 철강 기술 발전과 포스코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포스코 기술고문 및 부사장으로서 파이넥스 공법, 스트립캐스팅 등 첨단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또한 박태준 회장과 함께 포항공과대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실용화 연구기관인 RIST(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설립을 주도하여 초대 소장을 역임하며 한국의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포스코 퇴임 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고문과 (사)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를 창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중소기업 간 기술교류에 힘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으로부터 제1회 동북아국제협력상을 받았다.
2.1. 재일 한국인 과학자
1926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인 2세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꿈을 잃지 않고 금속학도의 길을 선택하여 도쿄공업대학과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직하였다.
그는 "고로에서의 규소환원의 속도론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연구 성과를 통해 아사히학술상과 일본철강협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며 실력 있는 연구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2. 포스코 설립과 한국 철강 산업 발전
1968년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포스코 건설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포스코 건설 초기부터 참여했다. 그는 포철 1고로(용광로) 설계와 공장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한국 철강 기술의 토대를 마련하고 철강 산업의 고속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68년부터 포스코의 모든 공정 구성과 기술 도입에 참여하며 한국의 철강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포스코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연간 1.03 규모의 포철 1고로 건설은 한국의 철강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유일한 고로였던 삼화제철소의 고로가 연간 8의 선철을 생산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이 포철 1고로는 ‘경제국보 1호’로 불리며 한국 철강 산업의 중요한 토대로 평가받는다.
198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후, 1982년부터 포스코의 기술고문과 기술담당 부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철강 산업의 기술 발전을 이끌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파이넥스 공법의 기반이 되는 용융환원제철법, 스트립캐스팅(Strip Casting) 기술, 400계 스테인리스강(STS) 기술, 초대형 고로 설계 기술 등 첨단 철강 기술 개발에 착수하여 한국이 세계 철강 기술을 선도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89년부터는 탄소 소재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조 흑연 제조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코크스, 탄소섬유,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 복합재료 등을 포스코의 신성장 사업으로 확장시켰으며, 이는 현재 2차전지 음극재 소재 개발의 기초를 마련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2.3. RIST 설립과 산학연 협력
포스코 기술연구소장(겸임 부사장)으로 재임하던 중, 박태준 회장과 함께 포항공과대학교 건립을 추진하며 ‘산학연 체제 구축’을 구상했다. 이러한 구상의 일환으로 RIST(산업과학기술연구소, 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RIST는 1987년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발족한 실용화 전문 연구기관으로, 국제협력과 선진기술 습득을 통해 한국 고유의 철강 기술 확보를 목표로 했다. 김철우는 RIST의 초대 소장을 2년간 역임하면서 포스코-포항공과대학교-RIST로 이어지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노력은 RIST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연구소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2.4. 퇴임 이후
포스코 퇴임 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의 고문과 (사)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를 창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중소기업 간 기술교류에 힘썼다. 자신의 퇴직금 전액을 출연하여 만든 (사)한국테크노마트를 통해 일본의 우수 중소기업 기술이전과 산업인재 교류를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으로부터 제1회 동북아국제협력상을 받았다.
3. 학력
wikitext
4. 주요 경력
5. 상훈
| 연도 | 수상 내역 |
|---|---|
| 1957년 | 일본 아사히학술상 (자연과학부문) |
| 1961년 | 일본철강협회 최우수논문상 |
| 1965년 | 일본금속학회 연구논문상 |
| 1987년 | 대한금속·재료학회 금속기술상 |
| 1989년 | 대한금속·재료학회 금속공로상 |
| 1999년 | 대한금속·재료학회 최고금속학회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