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1898년)
1. 개요
김철 (1898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과 제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으며,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50년과 1963년 총선에서는 각각 일민구락부와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김철 (18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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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선 여부 | 비고 |
|---|---|---|---|---|---|---|
| 1948년 | 제헌 국회의원 선거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15,333표 (40.11%) | 1위 | 당선 | 초선 |
| 1950년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일민구락부 | 2,829표 (7.00%) | 4위 | 낙선 | |
| 1954년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 | 15,116표 (33.18%) | 1위 | 당선 | 재선 |
| 1963년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국민의당 | 1,988표 (2.19%) | 6위 | 낙선 |
2.1. 제헌 국회의원 선거 (1948년)
김철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경북 경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15,333표(40.11%)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2.2.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김철은 일민구락부 소속으로 경북 경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829표(7.00%)를 얻어 4위로 낙선하였다. 이 시기에는 한국 전쟁 직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경쟁하면서 김철의 지지율이 분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2.3.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김철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 경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15,116표(33.18%)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안정화 단계에서 개인의 역량과 지역구에서의 지지 기반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무소속 당선은 당시 정당 정치의 불안정성과 김철의 개인적인 영향력을 시사한다.
| 선거명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 여부 | 비고 |
|---|---|---|---|---|---|---|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 | 15,116표 | 33.18 | 1위 | 당선 | 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