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동 (1918년)
1. 개요
김태동은 1918년에 태어나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으며, 해방 이후 미군정청과 대한민국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주일대표부 정무국장과 한일회담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한일 관계 업무를 담당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박정희 정부에서 교통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체신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 기업 및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82년 일본 뉴저팬 호텔 화재로 사망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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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통부 차관 -
조경식
조경식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정부 관료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정책 관련 비판과 환경 정책 기여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
대한민국의 교통부 차관 -
이재창
행정 관료 출신인 이재창은 인천직할시장, 환경청장, 교통부 차관, 경기도지사, 환경처장관을 역임하고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과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공무원이다. -
대한민국의 경제기획원 차관 -
문희갑
문희갑은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장과 경제기획국장을 지내며 경제 정책 수립에 참여했고, 국회의원과 대구광역시장을 역임하며 지방자치단체경영대상 수상 및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기여했다. -
대한민국의 경제기획원 차관 -
한이헌
대한민국의 경제관료이자 정치인인 한이헌은 경제기획원,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거치며 경제 정책에 참여했고, 금융실명제 도입을 주도했으며, 국회의원,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교장,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기술 및 교육 분야에도 기여했다. -
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 -
이우재 (1934년)
이우재(1934년)는 육군 준장으로 예편 후 정치, 기업, 체육 분야에서 활동하며, 제11대 국회의원, 한국전기통신공사 초대 사장, 체신부 장관, 대한사격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 -
장기영 (1903년)
장기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 외무부 차관보, 체신부 장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측근으로 활동하다 결별 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및 경력
김태동은 1918년 세도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하인들을 거느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에 의해 전매국 사무관에 임명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외무부, 주일대표부, 부흥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국방부 차관보, 교통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을 거쳐 체신부 장관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장관 퇴임 후에는 여러 기관 및 단체의 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중앙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2년 일본 방문 중 뉴저팬호텔 화재로 사망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등재되었다.
2.1. 일제강점기
1918년 세도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부유한 집안에서 하인들을 두고 자랐다.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전라북도 무주군수와 고창군수를 지냈으며, 조선총독부 전매국 총무과 사무관을 역임하였다.
2.3.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외무부 서기관으로 정무국 기획과장을 맡았다. 1950년 주일대표부 정무국장과 한일회담 정무국장을 역임하며 한일관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1956년 부흥부 조정국장을 지냈다.
5.16 군사정변 이후 1962년 국방부 차관보, 1964년 교통부 차관, 1966년 경제기획원 차관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에 참여하였다. 1968년 체신부 장관, 1969년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장관 퇴임 이후 가족계획연구원 이사장, 한국알루미늄 사장, 한미경제연구원 이사장, 일간내외경제신문 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국제사회개발기구 한국지부장, 한국신문협회 이사, 코리아헤럴드 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79년 중앙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일본 방문 중 뉴저팬호텔 화재로 사망하였다.
3.1. 명예 박사 학위
1979년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4. 논란 및 비판
김태동은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정권에 부역한 행적으로 인해 비판받고 있다.
4.1. 친일 행적
일제강점기에 무주군수와 고창군수, 조선총독부 전매국 총무과 사무관을 지냈다. 이러한 경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