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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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형칠은 1976년부터 승마 선수로 활동하며, 1985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1988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4회 연속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2002년 부산 대회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크로스 컨트리 경기 도중 낙마 사고로 사망했으며, 아시안 게임 역사상 경기 중 사망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다. 사후 체육훈장 맹호장이 추서되었다.

김형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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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칠
이름김형칠
출생 이름김형칠
로마자 표기Kim Hyung-chil
한글김형칠
한자金亨七
가타카나キミョンチル
별칭'엉클 킴'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59년 7월 1일
출생지광주광역시
사망일2006년 12월 7일 (47세)
사망지카타르 도하
스포츠승마
종목마장마술
소속팀금안회
경력
메달 정보
아시안 게임2002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 (종합마술 단체전)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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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선수 경력

아버지에게 승마 기술을 배운 김형칠은 1976년부터 승마 선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88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이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부터 4회 연속으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3. 2006년 아시안 게임

2006년 12월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승마 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 선수 중 최고령이었으며,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아시안 게임 출전이자 마지막 은퇴 경기로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합마술 크로스 컨트리 경기 도중 낙마 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인근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48세. 이는 1951년 시작된 아시안 게임 역사상 경기 도중 선수가 사망한 첫 사례였다.

사고 이후 2006년 12월 8일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는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 유가족으로는 동생, 부인, 1남 1녀가 있다.

3.1. 사고 경위

2006년 12월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크로스 컨트리 경기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김형칠 선수는 5년간 함께한 애마 '벤디'를 타고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사고는 총 23개의 장애물 중 8번째 장애물을 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높이 1.1m인 장애물 상단에 말의 앞발이 걸리면서 김형칠 선수는 말에서 떨어졌고, 곧이어 무게 500kg에 달하는 말이 그의 머리와 가슴 부위를 덮쳤다. 이 사고로 김형칠 선수는 심각한 뇌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의 응급 요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선수촌 인근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그러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현지 시각 오전 10시 50분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향년 48세였다.

사고로 인해 다리가 부러진 말 '벤디' 역시 안락사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은 후에 취소되었다.

사고 직후 일부 언론에서는 사고 당일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이 경기를 강행한 점을 지적하며, 비로 인해 미끄러워진 경기장 환경이 낙마 사고의 한 원인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51년 시작된 아시안 게임 역사상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한 것은 이 사고가 처음이었다.

3.2. 사고 원인 분석 및 비판

2006년 12월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크로스 컨트리 경기 도중 발생한 김형칠 선수의 사망 사고는 주최 측의 미흡한 대회 운영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사고는 총 23개의 장애물 중 8번째 장애물을 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높이 1.1m인 장애물 상단에 김형칠 선수가 5년간 함께한 말 '벤디'의 앞발이 걸리면서 낙마했고, 이어 무게 500kg인 말이 그의 머리와 가슴 부위를 덮치면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언론들은 사고 당시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주최 측이 경기를 강행한 사실을 보도했다. 언론들은 비로 인해 미끄러워진 경기장 환경 때문에 김형칠 선수가 낙마한 것으로 분석하며, 주최 측의 무리한 경기 진행을 지적했다. 1951년 아시안 게임이 시작된 이래 경기 도중 선수가 사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3.3. 사망 이후

사고 직후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006년 12월 7일 현지 시각 10시 50분경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향년 48세였다. 유가족으로는 동생, 부인, 1남 1녀가 있다.

사고 직후 언론들은 비가 오는데도 경기를 강행한 주최측의 무리한 진행을 지적하며, 김형칠 선수가 비 때문에 미끄러워진 경기장 환경으로 인해 낙마한 것으로 분석했다. 1951년 시작된 아시안 게임 역사상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6년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승마 대표팀 참가 선수 중 최고령이었던 김형칠에게 이 대회는 다섯 번째 아시안 게임 출전이자 마지막 은퇴 경기가 될 예정이었다. 2006년 12월 8일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는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

사고 당시 김형칠 선수와 함께 넘어진 말 '벤디'는 다리가 부러져 안락사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은 후에 취소되었다.

4. 평가 및 영향

김형칠 선수의 사망은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1951년 시작된 아시안 게임 역사상 경기 도중 선수가 사망한 첫 사례였다. 이 사건은 국내외 스포츠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카타르 도하 현지에서는 비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종합마술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강행되었는데, 이로 인해 미끄러워진 경기장 환경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며 주최측의 무리한 경기 진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김형칠 선수는 당시 대한민국 승마 대표팀 최고령 선수였으며, 해당 아시안 게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예정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로를 기려 2006년 12월 8일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