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신촌리 금동관
1. 개요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얇은 동판을 오려 만든 관모로,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3개의 풀꽃 모양 장식이 특징이며, 내관은 반원형 동판에 인동문과 꽃무늬를 새겼다. 신라 금관과 유사하지만 더 오래된 양식으로 추정되며, 익산 입점리 고분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출토되어 백제와 일본 간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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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나주 신촌리 금동관 |
|---|---|
| 로마자 표기 | Naju Sinchon-ri geumdonggwan |
| 국가 | 대한민국 |
| 유형 | 국보 |
| 지정 번호 | 295 |
| 지정일 | 1997년 9월 22일 |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고분로 747 (반남면, 국립나주박물관) |
| 시대 | 백제 |
| 소유자 | 국유 |
| 수량 | 1식 |
| 지도 | 대한민국 |
| 꼬리표 | 국립나주박물관 |
| 문화재청 ID | 11,02950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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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징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얇은 동판을 오려 만든 관모(冠帽)로, 내관(內冠)과 외관(外冠)으로 구성되어 있다. 25.5cm 높이의 이 금동관은 1917~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된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백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2.1. 외관
외관은 폭 3cm, 길이 50cm의 동대(銅帶)를 구부려 지름 17cm의 테를 만들고, 거기에 세 개의 풀꽃 모양 장식(초화형 입식)을 세운 형태이다. 테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칠판화문(七瓣花紋)을 돋을새김(철점, 凸点)으로 나타내고, 위쪽 가장자리(상연, 上緣) 가까이에 하트 모양 영락(瓔珞)을 달았다. 세 개의 입식은 중앙 세 기둥의 끝부분과 좌우에 세 개의 보주형(寶珠形) 두식(頭飾)을 얹고, 그 아래로 좌우 각각 두 개씩의 가지(분지, 分枝)가 있는 형태이다. 앞쪽에는 하트 모양 영락을 매달았다.
2.2. 내관
내관은 반원형 동판 두 개를 맞붙여 만들었으며, 각 면마다 인동문 테두리 안에 백합꽃 같은 꽃무늬를 철점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러 면에서 신라의 금관과 비슷한 형식을 보이나, 신라의 관보다 약간 오래된 형태이며 왕관으로 추측되기도 하고, 지방 호족(豪族)이 썼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2.3. 양식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나뭇가지 모양 장식 3개를 머리띠 부분인 대륜에 꽂아 세운 형태이며, 내관은 반원형 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기본 형태는 신라 금관과 같으나, 머리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금관의 '山'자 모양이 아닌 복잡한 풀꽃 모양을 하고 있어 양식상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관, 즉 모자는 전라북도 익산시 입점리(사적 제347호)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 간의 문화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3. 제작 배경 및 소유자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나주 지역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로 추정된다. 다만, 이 금동관이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아니면 백제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내관인 모자는 전라북도 익산 입점리 고분(사적 제347호)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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