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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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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 기지였던 곳으로, 1599년(선조 32년)에 건립되어 여러 차례 개축 및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국보이다. 정면 15칸, 측면 5칸의 240평 규모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 중 최대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이며, 조선 초기 객사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망해루는 1991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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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진남관
이름여수 진남관
로마자 표기Yeosu Jinnamgwan
한글 표기진남관 (진남관)
위치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
높이14m
길이75m
면적800㎡
층수1층
재료나무
역사
완공일1599년
문화재 정보
국가대한민국
유형국보
지정 번호304
지정일2001년 4월 17일
주소전라남도 여수시 동문로 11 (군자동)
소유자국유
시대조선 시대
문화재청 ID11,03040000,36
추가 정보
공식 웹사이트여수시 진남관
참고 자료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2. 역사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에 재 복원한 2층 누각이다.[7] 1599년 선조 32년 기해년 12월에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75칸의 거대한 객사이다. 그 후 절도사 이도빈이 1664년 갑진년에 개축하고 숙종 42년(1716) 94대 이여옥 수사 때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재면이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6]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또한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는 하례를 드리고 나라에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1910년 고종 4년 경술년 때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학교로 사용한 바 있다. 준국보 제480호로 1959년에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보수에 착수하게 되었으며, 1973년 단청을 하고 1978년에 4억 2천만원을 투입하여 진입도로를 개설한 바 있다. 2001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거대하고 웅장한 모양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조선 초기 객사양식으로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의 건축은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년)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건한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의 규모이다.[6]

건물 내부공간을 크게 하기 위하여 건물 양측의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이주법(移柱法)을 사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리고 있으며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6]

기둥위의 포작은 출목첨차가 있는 다포계 수법과 살미로만 중첩된 익공계 수법을 혼용하였고 정면 어칸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按草工)[8]과 기둥사이의 화려한 화반, 각 부재에 남아있는 단청문양 및 양측면에는 2개의 충량(衝樑, 측면보)을 걸어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6]

2. 1. 건립 배경

선조 32년(1599년) 기해년 12월에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세웠다.[7] 그 후 절도사 이도빈이 1664년 갑진년에 개축하고 숙종 42년(1716) 94대 이여옥 수사 때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재면이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7]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는 하례를 드리고, 나라에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고종 4년(1910년)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학교로 사용한 바 있다. 1959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보수에 착수하게 되었으며, 1973년 단청을 하고 1978년에 진입도로를 개설했다. 2001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7]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거대하고 웅장한 모양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7] 조선 초기 객사양식으로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의 건축은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7]

2. 2. 조선시대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에 재 복원한 2층 누각이다.[7] 1599년 선조 32년 기해년 12월에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75칸의 거대한 객사이다. 그 후 절도사 이도빈이 1664년 갑진년에 개축하고 숙종 42년(1716) 94대 이여옥 수사 때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재면이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6]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또한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는 하례를 드리고 나라에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1910년 고종 4년 경술년 때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학교로 사용한 바 있다.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거대하고 웅장한 모양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조선 초기 객사양식으로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의 건축은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년)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건한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의 규모이다.[6]

건물 내부공간을 크게 하기 위하여 건물 양측의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이주법(移柱法)을 사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리고 있으며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6]

기둥위의 포작은 출목첨차가 있는 다포계 수법과 살미로만 중첩된 익공계 수법을 혼용하였고 정면 어칸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按草工)[8]과 기둥사이의 화려한 화반, 각 부재에 남아있는 단청문양 및 양측면에는 2개의 충량(衝樑, 측면보)을 걸어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6]

2. 3.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일제강점기에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가 철거되었으나, 1991년 4월에 2층 누각으로 다시 복원되었다.[7] 1599년 선조 32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세웠다. 이후 1664년 절도사 이도빈이 개축하였고, 숙종 42년(1716)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숙종 44년(1718)에 수사 이재면이 다시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국가 경사에는 하례를,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1910년 고종 4년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 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1959년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어 본격적인 보수가 시작되었으며, 1973년 단청, 1978년 진입도로 개설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2001년에는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조선 초기 객사 양식으로,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 공간에는 화반을 받치는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 계통의 수법으로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

3. 건축 특징

진남관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을 가지며, 1718년(숙종 44년)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건한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6]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6]

건물 내부 공간을 넓히기 위해 건물 양측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이주법(移柱法)을 사용하여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6]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6]

기둥 위 포작은 출목첨차가 있는 다포계 수법과 살미로만 중첩된 익공계 수법을 혼용하였다.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按草工)이 있고,[8]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화반이 있다. 각 부재에는 단청 문양이 남아있으며, 양측면에는 2개의 충량(衝樑, 측면보)을 걸어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는 등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6]

3. 1. 규모 및 구조

3. 2. 건축 양식

3. 3. 단청

4. 사진



5. 기타

5. 1. 망해루

5. 2. 좌수영다리


참조

[1] 웹사이트 Heritage Search http://english.cha.g[...] 2019-04-03
[2] 웹사이트 Jinnamgwan Hall (여수 진남관) http://english.visit[...] 2019-04-03
[3] 웹사이트 Jinnamgwan http://www.yeosu.go.[...] 2019-04-03
[4] 웹사이트 Picture of sign at Jinnamgwan Hall on KakaoMap 2019-04-03
[5] 서적 Lonely Planet Korea https://books.google[...] Lonely Planet 2019-04-03
[6]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등 지정 문화재청장 2001-04-17
[7] 뉴스 진남관 망해루 복원키로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0-12-22
[8] 문서 안초공(按草工)은 기둥상부의 공포를 받는 부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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