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쌍계정
1. 개요
나주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 때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정자이다.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흐르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삼현당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세조 때에는 정서, 신숙주 등 학자들이 학문 연구 장소로 사용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과 어울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자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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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나주쌍계정 |
|---|---|
| 한자 표기 | 羅州雙溪亭 |
| 국가 | 전라남도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34 |
| 지정일 | 1973년 4월 21일 |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251번지 |
| 시대 | 해당 정보 없음 |
| 소유 | 해당 정보 없음 |
| 참고 | 해당 정보 없음 |
| 면적 | 해당 정보 없음 |
| 수량 | 1동 |
| 전승지 | 해당 정보 없음 |
| 전승자 | 해당 정보 없음 |
| 문화재청 ID | 21,00340000,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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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
고흥향교
고흥향교는 세종 23년에 건립되어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 21년에 재건되었으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을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로 조선 시대 교육 기능을 수행하다 갑오개혁 이후 제사 기능만 유지하고 있다. -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
곡성 함허정
조선 시대 문신 심광형이 처음 지은 함허정은 섬진강변의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위치한 조선 시대 정자 건축 양식의 **대한민국 보물 제563호**이다. -
없는 문서를 링크하고 있는 -
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압둘라 아잠에 의해 1988년 설립되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국제적인 지하디스트 테러 조직으로, 샤리아 법에 기반한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9·11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테러에 연루되어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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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
나주시의 건축물 -
나주역
나주역은 1913년 보통역으로 시작하여 KTX 등 다양한 열차가 정차하며, 섬식 승강장 2면 4선의 구조를 갖춘 전라남도 나주시에 위치한 철도역이다. -
나주시의 건축물 -
다시역
다시역은 1931년 영업을 시작한 호남선 상의 철도역으로, 무인역으로 운영 중이며 무궁화호가 용산, 광주, 목포 방면으로 운행된다.
2. 역사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문정공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정자이다.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흘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삼현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정서, 신숙주 등 당대의 학자들이 학문 연구 장소로 사용하였다.
2.1. 건립 배경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문정공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하는 정자이다.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흘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정공은 이곳에서 김주정, 윤보와 함께 학문과 인격을 닦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삼현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정서, 신숙주 등 당시 대표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 장소로 사용하였다.
2.2. 조선시대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문정공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하는 정자이다.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흘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정공은 이곳에서 김주정, 윤보와 함께 학문과 인격을 닦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삼현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정서, 신숙주 등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 장소로 사용하였다.
쌍계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쌍계정과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치있게 어울려 조선시대 대표적 정자로 손꼽힌다.
4. 경관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문정공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정자이다.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흘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정공은 이곳에서 김주정, 윤보와 함께 학문과 인격을 닦았는데, 이 때문에 ‘삼현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정서, 신숙주 등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 장소로 사용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쌍계정과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치 있게 어울려 조선시대 대표적 정자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