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다이세이
1. 개요
나카무라 다이세이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오사카부립 센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 선발 등판했다. 1955년에는 23승 4패, 평균자책점 2.13을 기록하며 퍼시픽 리그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 최우수 투수를 수상했다. 1959년 한큐 브레이브스로 이적했으나, 1960년 은퇴했다. 2013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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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오사카부 출신 -
마에다 아키라
마에다 아키라는 일본의 격투기 선수이자 프로레슬러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여 UWF, 링스를 거쳐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은퇴 시합을 갖고 K-1 슈퍼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
오사카부 출신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한큐 브레이브스 선수 -
후쿠하라 미네오
후쿠하라 미네오는 닛폰 통운 우라와 사회인 야구 선수에서 한큐 브레이브스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1984년 퍼시픽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서 20년 이상 코치,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했다. -
한큐 브레이브스 선수 -
모리 고타로
모리 고타로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한큐군, 도큐 플라이어스, 니시닛폰 파이레츠 등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1941년 다승왕과 최고 승률을 석권하고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으며, 은퇴 후에는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2. 선수 시절
오사카부립 센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우완 본격파로서 슬라이더와 슈토를 주무기로 삼았다. 1955년 베스트 나인과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으나, 혹사의 영향으로 1956년 이후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져 등판 횟수도 크게 줄었다. 1960년 한큐 브레이브스로 이적했지만 단 한 번도 등판하지 못한 채 같은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난카이 호크스 시절
1953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다. 그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는데, 이것은 고졸 신인 투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에 선발 등판한 것이었다.
1955년에는 23승 4패, 평균자책점 2.13(리그 3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후반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난카이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퍼 리그의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평균자책점 0.72로 호투했다.
다음 해 1956년 2월 난카이는 하와이 원정을 갔지만, 나카무라는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여권 발급이 거부되어 참가하지 못했다. 이 일로 나카무라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해에 컨디션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였다고 감독 츠루오카 가즈토는 저서에서 말했다. 같은 해에는 개막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5월에 들어서 4승 1패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6월 이후 승리와 멀어져 시즌에서는 5승 5패로 마쳤다. 이후, 성적 하락과 함께 출전 기회를 급격히 잃어갔다. 1959년에는 등판 기회가 없어 시즌 오프에 자유 계약이 되었다.
5. 상세 정보
오사카부립 센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다. 같은 해 일본 시리즈 2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했는데, 이는 고졸 신인 투수로서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에 선발 등판한 기록이다.
1955년에는 23승 4패, 평균자책점 2.13(리그 3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후반기에 뛰어난 활약을 펼쳐 난카이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퍼 리그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 최우수 투수에 선정되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 승리는 없었지만 평균자책점 0.72로 호투했다.
1956년 2월, 난카이는 하와이 원정을 갔지만, 나카무라는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여권 발급이 거부되어 참가하지 못했다. 츠루오카 가즈토 감독은 이 사건이 나카무라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 해에 컨디션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였다고 저서에서 밝혔다. 실제로 나카무라는 개막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5월에 4승 1패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6월 이후 승수를 쌓지 못하고 5승 5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성적 하락과 함께 출전 기회가 줄었고, 1959년에는 등판 기회 없이 시즌 오프에 자유 계약되어 한큐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1960년에도 등판 기회는 없었고, 결국 현역에서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148경기 등판, 67경기 선발, 17완투, 7완봉, 39승 18패, 평균자책점 2.77, WHIP 1.15이다.
등번호
* 46 (1953년)
* 27 (1954년 ~ 1959년)
* 63 (1960년)
5.1. 연도별 투수 성적
|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몸맞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1953년 | 난카이 | 10 | 4 | 1 | 0 | 0 | 4 | 2 | - | - | .667 | 210 | 51.1 | 37 | 4 | 27 | - | 2 | 25 | 0 | 0 | 19 | 18 | 3.12 | 1.25 |
| 1954년 | 36 | 13 | 3 | 2 | 0 | 6 | 5 | - | - | .545 | 484 | 117.0 | 102 | 5 | 49 | - | 3 | 71 | 1 | 0 | 56 | 44 | 3.38 | 1.29 | |
| 1955년 | 51 | 33 | 10 | 4 | 0 | 23 | 4 | - | - | .852 | 1073 | 269.2 | 201 | 9 | 80 | 2 | 14 | 160 | 3 | 0 | 74 | 64 | 2.13 | 1.04 | |
| 1956년 | 30 | 14 | 3 | 1 | 0 | 5 | 5 | - | - | .500 | 448 | 109.0 | 95 | 3 | 30 | 1 | 3 | 60 | 0 | 0 | 45 | 36 | 2.97 | 1.15 | |
| 1957년 | 20 | 3 | 0 | 0 | 0 | 1 | 2 | - | - | .333 | 186 | 45.2 | 47 | 3 | 16 | 1 | 0 | 26 | 1 | 0 | 22 | 21 | 4.11 | 1.38 | |
| 1958년 | 1 | 0 | 0 | 0 | 0 | 0 | 0 | - | - | - | 8 | 2.0 | 1 | 0 | 0 | 0 | 0 | 2 | 0 | 0 | 0 | 0 | 0.00 | 0.50 | |
| 통산 : 6년 | 148 | 67 | 17 | 7 | 0 | 39 | 18 | - | - | .684 | 2409 | 594.2 | 483 | 24 | 202 | 4 | 22 | 344 | 5 | 0 | 216 | 183 | 2.77 | 1.15 | |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5.2. 수상 및 타이틀 경력
나카무라는 1955년에 23승 4패, 평균자책점 2.13(리그 3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후반기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난카이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55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승리는 없었지만 평균자책점 0.72로 호투했다.
5.2.1. 타이틀
* 최고 승률 1회(1955년)
5.3. 출신 학교
오사카부립 센요 고등학교
5.4. 선수 경력
오사카부립 센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다.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했다. 이것이 고졸 신인 투수로서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선발 등판이었다。
1955년에는 23승 4패, 평균자책점 2.13(리그 3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후반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난카이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퍼 리그의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평균자책점 0.72로 호투했다.
1956년 2월 난카이는 하와이 원정을 갔지만, 나카무라는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여권 발급이 거부되어 참가하지 못했다. 이 일로 나카무라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해에 컨디션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였다고 감독 츠루오카 카즈토는 저서에서 말했다。 같은 해에는 개막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5월에 들어서 4승 1패로 회복의 조짐을 보였지만, 6월 이후 승리와 멀어져 시즌에서는 5승 5패로 마쳤다. 이후, 성적 하락과 함께 출전 기회를 급격히 잃어갔다. 1959년에는 등판 기회가 없어 시즌 오프에 자유 계약이 되어 한큐 브레이브스로 이적。 그러나, 여기에서도 등판은 없었고, 1960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5.5. 등번호
* 46 (1953년)
* 27 (1954년 ~ 1959년)
* 63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