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시노 겐지
1. 개요
도마시노 겐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약했다. 상궁고등학교, 주오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수상했고, 1998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하여 1999년 은퇴했다. 은퇴 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코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도마시노 겐지 |
|---|---|
| 원어 이름 | 笘篠 賢治 |
| 로마자 표기 | Kenji Tomashino |
| 출생일 | 1966년 10월 11일 |
| 출생지 | 오사카부 이바라키시 |
| 신장 | 185cm |
| 체중 | 79kg |
| 포지션 | 내야수, 외야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양타 |
| 프로 입단 연도 | 1988년 |
|---|---|
| 드래프트 순위 | 3순위 |
| 첫 출장 | 1989년 4월 12일 |
| 마지막 출장 | 1999년 10월 11일 |
| 소속 팀 (선수)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1989 ~ 1997) 히로시마 도요 카프(1998 ~ 1999) |
| 소속 팀 (코치) | 히로시마 도요 카프(2000 ~ 2002) |
|---|
| 데뷔 리그 | NPB |
|---|---|
| 데뷔 팀 |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데뷔일 | 1989년 4월 12일 |
| 최종 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최종일 | 1999년 10월 11일 |
| 타율 | .254 |
| 안타 | 418 |
| 홈런 | 19 |
| 타점 | 105 |
| 도루 | 79 |
| 수상 내역 | 1989년 센트럴 리그 신인왕 |
|---|
| 올림픽 메달 | 1988 서울 야구 은메달 |
|---|
| 프로 입단 | 1988년 드래프트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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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나가오카 히데키
나가오카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및 2루수로 활동하며 2022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024년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
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다케우치 신이치
다케우치 신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2018년 은퇴 후에는 야쿠르트 구단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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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솔로
호프 솔로는 미국의 여자 축구 골키퍼로, 고등학교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다 골키퍼로 전향하여 미국 여자 프로 축구 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우승 등을 기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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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흐
토마스 바흐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변호사, 기업 임원 등을 거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올림픽 어젠다 2020을 추진했으나, 일부 논란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고 20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IOC 위원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선수 -
기타벳푸 마나부
기타벳푸 마나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213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로, 일본시리즈 우승과 MVP 수상,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선수 경력 이후 야구 해설가, 지도자, 유튜버로 활동했다. -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선수 -
콜비 루이스
콜비 루이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하여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 후 텍사스 레인저스로 복귀, 부성 휴가를 사용하기도 했던 미국의 전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주오대학교를 졸업한 도마시노는 1988년 드래프트에서 계약금 50, 연봉 6의 조건으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1989년 빠른 발을 활용하여 신인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주 포지션인 외야수 대신 2루수로 뛰며 32도루를 기록하여 일본프로야구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듬해 노무라 가쓰야 감독 부임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1년 차가 그의 커리어 하이가 되었다. 은퇴 후에는 닛폰 문화방송, 후지TV 원의 '프로야구 뉴스', TV 신히로시마(Shinhiroshima Telecasting)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1. 프로 입단 전
주오대학교에 진학한 도마시노는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내야 수비도 가능하여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도마시노가 입학할 당시 주오 대학교는 도쿄 대학 야구 연맹 리그에서 2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팀의 노력으로 1987년 춘계 리그부터 1부 리그로 승격하였다. 1부 리그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도마시노는 4학년 때 주장을 맡아 1988년 일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제30회 IBAF 월드컵(아마추어 야구 세계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또한 서울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부 리그 통산 44경기에 출전하여 176타수 49안타, 타율 .278, 10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1학년 후배로는 가와바타 가즈아키가 있었다.
2.2. 프로 선수 시절
도마시노 겐지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1989년~1997년)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1998년~1999년)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2.1.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1989년 ~ 1997년)
도마시노는 1988년 드래프트에서 계약금 50, 연봉 6의 조건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1989년에는 빠른 발을 무기로 활약하며 신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 해 주 포지션인 외야수 대신 2루수로 활약하며 32도루를 기록, 일본프로야구 신인왕을 수상했다. 도루왕 타이틀은 히로시마의 쇼다 고조가 34도루로 차지하여 2개 차이로 아쉽게 놓쳤다. 이듬해 노무라 가쓰야 감독 부임 후 이이타 데쓰야, 조니 레이, 렉스 핫들러 등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1년 차가 그의 커리어 하이가 되었다.
그 후에는 형과 마찬가지로 내야와 외야를 모두 소화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용되며 준주전으로 활약했다.
1991년에는 전년도에 은퇴한 구리야마 히데키가 달았던 등번호 4번(형인 세이지와 동일)으로 변경했다.
1992년 세이부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형제 대결이 펼쳐졌는데, 4차전까지 2루수로 기용되었고 1차전에서는 2안타를 기록했다.
1994년에는 초반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1995년에는 출전 기회가 없었다. 1996년에 복귀했으나, 1997년 일본 시리즈를 앞두고 야쿠르트로부터 전력 외 통고를 받았다.
2.2.2.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1998년 ~ 1999년)
1998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테스트 입단하여 개막부터 2번 타자, 2루수로 기용되며 부활을 알렸다. 같은 해, 과거 도루왕 경쟁을 했던 정다 고조와 함께 기용되어 45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99년에는 개막이 늦어졌고, 2루수 자리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에디 디아스에게 내주었다. 4월 하순에 1군에 복귀했지만, 부진과 부상, 그리고 히가시데 테루히로와 키무라 타쿠야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인해 같은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1988년 서울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히로시마 구단에 남아 2002년까지 1군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특히 김본 지헌(金本知憲)의 2000년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도루가 큰 약점으로 여겨졌지만, 도마시노가 김본에게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이후 문화방송(文化放送), 후지텔레비ONE(フジテレビONE)의 『프로야구 뉴스(プロ野球ニュース)』, 미야기 텔레비(ミヤギテレビ), 텔레비 신히로시마(テレビ新広島)에서 해설자를 맡고 있다.
4. 은퇴 후
야구 선수 은퇴 후 닛폰 문화방송, 후지TV 원의 '프로야구 뉴스', TV 신히로시마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까지 히로시마 구단 1군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특히 김본 지헌(金本知憲)의 2000년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도루가 큰 약점으로 여겨졌지만, 도마시노가 김본에게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이후 문화방송(文化放送), 후지텔레비ONE(フジテレビONE)의 『프로야구 뉴스(プロ野球ニュース)』, 미야기 텔레비(ミヤギテレビ), 텔레비 신히로시마(テレビ新広島)에서 해설자를 맡고 있다.
5. 상세 정보
오사카부 이바라키시 출신으로 주오 대학에서 야구부 주장과 서울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198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3순위 지명으로 입단하여, 1년 차에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거쳐 은퇴했고, 현재는 분카 방송과 후지 TV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5.1. 출신 학교
* 우에노미야 고등학교
* 주오 대학
5.2.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서울 올림픽 은메달(1988년)
* 신인왕(1989년)
5.3. 개인 기록
* 첫 출장: 1989년 4월 12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10회 말에 와카마쓰 쓰토무의 대주자로서 출장
* 첫 안타: 1989년 4월 14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 초에 미야모토 겐지의 대타로서 출장, 다이몬 가즈히코로부터 우전 안타
* 첫 선발 출장: 1989년 4월 18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2번·2루수로서 출장
* 첫 도루: 1989년 4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3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5회 말에 2루 안착(투수: 가와시마 겐, 포수: 다쓰카와 미쓰오)
* 첫 타점: 1989년 5월 13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7차전(사세보 야구장), 9회 말에 쓰다 쓰네미로부터 좌전 2점 적시타
* 첫 홈런: 1989년 5월 23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5차전(도쿄 돔), 1회 초에 빌 걸릭슨으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