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해안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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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조선해안경비대는 1946년 6월 15일 미군정청 통위부의 승인을 받아 창설되어 해안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1945년 11월 11일 창설된 해방병단을 모체로 하며, 이후 대한민국 해군의 기초가 되었다. 진해에 사령부를 두고 인천, 목포, 묵호, 군산, 부산 등에 기지를 설치했다. 미국 해군의 프리깃함 7척과 구 일본 해군의 소해정 3척으로 함대를 구성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편되었다. 초대 지휘관은 손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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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해안경비대 | |
---|---|
기본 정보 | |
명칭 | 남조선해안경비대 |
영어 명칭 | Korean Coast Guard |
한자 명칭 | 南朝鮮海岸警備隊 |
로마자 표기 | Namjoseon haean gyeongbidae |
설립일 | 1946년 |
해산일 | 1948년 |
후신 | 대한민국 해군 |
관할 | 미 군정 조선 |
상급 기관 | 국내경비부 (통위부) |
주요 인물 | |
총사령관 | 손원일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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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설 배경
1946년 6월 15일 미군정청 통위부장 류동렬의 승인으로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승격되어 해안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광복 후 조직된 해사대와 11월 조직된 해방병단은 도서와 해안의 방비를 맡았다. 해방병단은 미군정청의 인가를 받아 결성된 해사관계 군사단체로 재정적 곤란이 컸으나, 일본 해군이 남기고 간 공작시설을 확보하여 조함창(造艦廠)을 세우고 폐선을 수리하여 취항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며 1,000명에 가까운 대원들을 확보하였다.
1946년 6월 15일 해방병단(海防兵團)이 미군정청 통위부장 류동렬의 승인으로 해안경비대로 승격, 해안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광복 후 조직된 해사대와 11월 조직된 해방병단은 도서와 해안의 방비를 맡았다. 해방병단은 미군정청의 인가를 받아 결성된 해사관계 군사단체로 재정적 어려움이 컸으나 일본 해군이 남기고 간 공작시설을 확보하여 조함창(造艦廠)을 세우고 폐선을 수리하여 취항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며 1,000명에 가까운 대원들을 확보하였다.
1946년 6월 15일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통위부 산하 조선해안경비국과 해방병단이 통합되어 해안경비대로 조직되었다. 1월 14일 조직된 해방병단 본부는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부로 소급하여 개칭되었다.
미 군정청은 조선해사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Coastal Defense Force)을 창설했는데, 이것이 후에 대한민국 해군의 기초가 되었다.
1946년 6월 15일, 구 일본 해군 진해경비부가 있던 진해에 사령부를 두는 “해안경비대”가 탄생했다. 인천, 목포, 묵호, 군산, 부산에 기지가 설치되었다.
3. 창설과 활동
1946년 6월 15일 군정법령 제86호로서 통위부 산하 조선해안경비국과 해방병단을 통합하여 해안경비대로 조직되고, 1월 14일에 조직된 해방병단 본부를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부로 소급하여 개칭하였다.
1946년 9월 조선해안경비대는 미군정의 주선으로 미국 해군으로부터 상륙정 2척을 비롯한 함정과 잠수함들을 받았고, 10월 사령부를 서울특별자유시에 설립하였다. 1947년 진해, 김해, 인천, 제물포, 서산, 목포, 묵호, 군산, 울산, 포항, 부산 등지에 기지를 설치하여 해안경비대의 군함이 상륙할 곳을 마련하였다. 해안경비대는 정부수립 직전까지 병력 3,000명, 함정 105척을 확보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해군으로 승격되었다.
미국 군정청은 조선해사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1945년 11월 11일에 “해방병단”(Coastal Defense Force)을 창설했고, 이것이 후에 대한민국 해군의 기초가 되었다. 1946년 6월 15일, 구 일본 해군 진해경비부가 있던 진해에 사령부를 두는 “해안경비대”가 탄생했으며, 인천, 목포, 묵호, 군산, 부산에 기지가 설치되었다. 미국 해군의 프리깃함 7척과 구 일본 해군의 소해정 3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편성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성립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편되었다.
4. 대한민국 해군으로의 전환
1946년 9월 조선해안경비대는 미군정의 주선으로 미국 해군으로부터 상륙정 2척을 비롯한 함정과 잠수함들을 받았고, 10월 사령부를 서울특별자유시에 설립하였다. 1947년 진해, 김해, 인천, 제물포, 서산, 목포, 묵호, 군산, 울산, 포항, 부산 등지에 기지를 설치하여 해안경비대의 군함이 상륙할 곳을 마련하였다. 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까지 병력 3,000명, 함정 105척을 확보하였고,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으로 승격되었다.
5. 역대 지휘부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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