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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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명월은 수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614년에 거병하여 수나라에 대항했으며, 10만 대군을 이끌고 치허현에 주둔했으나 장수타에게 패배했다. 615년에는 무상왕을 자칭하며 회양군과 양성군을 공격하고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이후 하남에서 활동하다 회북으로 근거지를 옮겼으며, 40만 명의 무리를 거느렸다고 칭했다. 617년 1월, 왕세충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참수되었다.

노명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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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614년에 거병하여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얼마 후, 10만 병력을 이끌고 치허현에 주둔하자 장수타는 1만여 병력으로 그와 맞섰다. 열흘간 대치가 지속되어 군량이 떨어지자 장수타는 별동대로 진숙보, 나사신을 남겨둬 매복시킨 채 퇴각했는데, 노명월이 이를 보고는 진영을 거의 비우고 장수타를 추격하자 별동대는 적의 진영을 급습해 불태웠다. 노명월이 자기 진영이 점령된 것을 보고 당황하자 장수타는 군대를 돌려 반격했다. 노명월은 겨우 수백의 기병만을 거느리고 도망가 숨었다.

615년 10월, 10만의 군중을 이끌고 회양군·양성군을 공격했으며, 무상왕(無上王)을 자칭하였다. 하남에서 전전하다 나중에는 회북으로 들어가 40만 명의 무리를 거느렸다고 칭했다.

617년 1월, 왕세충의 공격을 받아 남양에서 싸웠지만 대패해 참수되었다.

2.1. 초기 거병과 장수타와의 대치

614년, 노명월은 수나라에 반기를 들고 거병하였다. 초기에는 1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치허현(일본어 위키백과에는 축아현)에 주둔하며 세력을 과시했다. 이에 수나라 장수 장수타가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노명월에 맞섰다. 양측은 열흘 동안 대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노명월은 군량 부족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장수타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별동대 진숙보와 나사신을 매복시킨 후 퇴각하는 척하였고, 노명월은 이를 추격하다가 본진을 기습당해 대패하였다. 노명월은 겨우 수백의 기병만을 거느리고 도망가 숨었다.

2.2. 무상왕 자칭과 세력 확장

615년 10월, 노명월은 10만 명의 군세를 모아 회양군과 양성군(일본어 위키백과에는 상성군)을 공격하며 재기를 도모했다. 하남에서 활동하다 회북으로 근거지를 옮긴 노명월은 40만 명의 무리를 거느린다고 칭하며 '무상왕(無上王)'을 자칭했다. 이는 당시 수나라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민심을 얻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2.3. 왕세충과의 전투 및 최후

614년, 노명월은 거병하여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12월, 10여 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축아(祝阿)에 들어가 수나라 장수타 군과 10여 일 동안 대치했다. 장수타가 철수하자 이를 추격했지만, 진숙보(陳叔寶)와 라사신(羅士信) 등에게 본영을 함락당하여 대패했다.

615년 10월, 10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회양군(淮陽郡)과 상성군(襄城郡)을 공격했다. 하남(河南)에서 전전하다가 나중에 회북(淮北)으로 들어가 40만 명의 무리를 거느렸다고 칭했다. 또한 스스로 무상왕(無上王)을 자칭하였다.

617년 1월, 수나라 강도(江都) 통수 왕세충의 공격을 받아 남양(南陽)에서 싸웠지만 대패해 참수되었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2. 부정적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