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포스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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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닐 포스트먼은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교육 비평가로, 평생을 뉴욕시에서 보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뉴욕대학교에서 미디어 생태학 대학원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그는 20권의 저서와 200편이 넘는 기사를 저술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죽도록 즐기기》와 《테크노폴리》가 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과 기술이 공론의 장을 파괴하고 문화를 쇠퇴시킨다고 비판하며, 학교 교육에서 기술 사용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2003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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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퍼리얼리티 이론가 - 필립 K. 딕
필립 K. 딕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정체성 혼란, 기술 발달과 인간 소외 등 철학적 주제를 다룬 미국의 유명한 과학 소설 작가로, 그의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사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하이퍼리얼리티 이론가 -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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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 연구에 큰 영향을 준 아일랜드계 영국인 학자이자 저술가로, 그의 저서 『상상된 공동체』에서 제시한 '상상된 공동체' 개념은 민족주의를 인쇄 자본주의와 연결하여 분석하며 널리 인용되고, 동남아시아 정치와 문화를 연구하며 반제국주의적 시각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을 했다. - 미국의 학자 - 찰스 윌리엄 엘리엇
찰스 윌리엄 엘리엇은 하버드 대학교 총장으로서 선택 과목 제도 도입과 연구 중심 대학 시스템 구축 등 미국 고등 교육 혁신을 이끌었으나, 여성 및 소수자 차별, 노동조합 반대 등 논란도 있는 미국의 교육자이다.
닐 포스트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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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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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31년 3월 8일 |
출생지 | 뉴욕 시, 미국 |
사망일 | 2003년 10월 5일 |
사망지 | 뉴욕 시, 미국 |
배우자 | 셸리 로스 (Shelley Ross) |
자녀 | 3명 (마르크 포스트먼(Marc) 포함) |
직업 | 작가, 교수 |
활동 기간 | 1959년–2003년 |
학력 | |
대학 | 뉴욕 주립 대학교 프레도니아 |
대학원 | 컬럼비아 대학교 |
연구 분야 | |
주제 | 미디어 생태학 미디어 비평 문화 비평 교육 |
2. 생애
닐 포스트먼은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2] 1953년 뉴욕 주립 대학교 프레도니아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5개월도 채 안 되어 제대했다.[3]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에서 1955년 석사 학위를, 1958년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4] 이후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를 거쳐[3] 1959년부터 뉴욕 대학교(NYU)에서 교수로 재직했다.[4]
1971년 뉴욕 대학교 슈타인하르트 문화, 교육 및 인간 개발 대학에 미디어 생태학 대학원 프로그램을 설립했고, 1993년 사범대학 유일의 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2002년까지 문화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학과장을 역임했다.[4] 2000년에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5]
2003년 10월 5일, 퀸스 플러싱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48년간 해로한 아내 셸리 로스 포스트먼과 세 자녀가 있었다.[1]
2. 1. 뉴욕에서의 성장과 교육
포스트먼은 평생을 뉴욕시에서 보냈다.[2] 1953년, 뉴욕 주립 대학교 프레도니아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5개월도 채 안 되어 제대했다.[3]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에서 1955년에 석사 학위를, 1958년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4] 1958년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영어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고,[3] 1959년에는 뉴욕 대학교(NYU)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4]2. 2. 학자로서의 경력
포스트먼은 1958년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영어과 교수로 임용되었다.[3] 1959년 뉴욕 대학교(NYU)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4]1971년 뉴욕 대학교 슈타인하르트 문화, 교육 및 인간 개발 대학에 미디어 생태학 대학원 과정을 설립했다. 1993년에는 사범대학 유일의 대학 교수가 되었고, 2002년까지 문화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학과장을 역임했다.[4]
2. 3. 사망
포스트먼은 2003년 10월 5일, 퀸스 플러싱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당시 그는 아내 셸리 로스 포스트먼과 결혼한 지 48년이 되었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포스트먼 가족은 플러싱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1]3. 주요 저작 및 활동
닐 포스트먼은 20권의 저서와 200편이 넘는 학술 및 대중 출판물 기사를 썼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애틀랜틱 먼슬리, 하퍼스 매거진, 타임, 새터데이 리뷰, 하버드 교육 리뷰,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슈테른, 르몽드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다.
포스트먼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3. 1. 저술 활동
포스트먼은 20권의 저서와 200편이 넘는 기사를 발표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애틀랜틱 먼슬리, 하퍼스 매거진, 타임, 새터데이 리뷰, 하버드 교육 리뷰,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슈테른, 르몽드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6] 1976년부터 1986년까지는 분기별 저널 ETC: 일반 의미론 검토의 편집장을 맡았으며, CBS-TV의 선라이즈 세메스터에서 "커뮤니케이션: 보이지 않는 환경"이라는 NYU 학점 강좌를 가르치기도 했다.[6] 네이션의 기고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그의 기사 중 일부는 2013년 ''ETC: 일반 의미론 검토'' 75주년 기념판에 사후 재게재되었다.[7]3. 2. 미디어 관련 활동
포스트먼은 1976년부터 1986년까지 ''ETC: 일반 의미론 검토''의 편집장을 역임했다.[6] 1976년에는 CBS-TV의 ''선라이즈 세메스터''에서 "커뮤니케이션: 보이지 않는 환경"이라는 NYU 학점 강좌를 가르쳤다.[22] 그는 ''네이션''의 기고 편집자이기도 했다.[6] 그의 기사 중 일부는 2013년 10월 75주년 기념판의 일부로 ''ETC: 일반 의미론 검토''에 사후 재게재되었다.[23]4. 교육 이론
포스트먼은 앨런 샤피로와 협력하여 1969년과 1970년에 뉴욕 뉴로셸에서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의 원칙에 기반한 모델 학교를 개발했다.[8] 이후 ''보존적 활동으로서의 교육''을 출판하며 학교가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대중 문화에 대한 대항마 역할을 해야 하고, 문해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3][14]
1995년 PBS의 ''맥닐/레러 뉴스아워'' 인터뷰에서 포스트먼은 학교에서 개인용 컴퓨터 사용에 반대하며, 학교는 응집력 있는 그룹으로 함께 배우는 장소이며 개별 학습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가 시민과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교류를 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15]
4. 1.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
앨런 샤피로와 협력하여 포스트먼은 1969년과 1970년에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에서 제시된 원칙들을 바탕으로 한 모델 학교를 뉴욕 뉴로셸에 개발했다.[8] 이 책에서 포스트먼과 공동 저자인 찰스 와인가르트너는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의 삶과 관련이 없고 사소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9] 이러한 비판의 결과로 뉴로셸 고등학교 내에 "탐구, 참여, 독립 학습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8] 이 "열린 학교" 실험은 15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후 미국 고등학교에서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뉴욕 그레이트넥에 있는 빌리지 학교의 월터 코랄의 언어 수업이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10]1973년 영어 교육 컨퍼런스에서 포스트먼은 "학습의 생태"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학교에 대한 일곱 가지 변화를 제안했다.[11] 그는 학교가 학생들을 판단하고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친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습 태도보다 학교 내 경쟁을 유발하는 채점 관행을 폐지하거나 대폭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질적인 학생 그룹, 경쟁을 조장하는 표준화 시험, 학생 통제에 사용되는 영구적인 학생 기록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 및 전문 학교가 학생 선발 기준을 개발해야 하며, 학교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르치는 시민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12]
4. 2. 《보존적 활동으로서의 교육》
포스트먼은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에서 벗어나 《보존적 활동으로서의 교육》을 출판했다.[13] 그는 학교가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대중 문화에 대한 대항마 역할을 해야 하며, 문해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14] 포스트먼은 또한 교사가 복장과 언어에서 학생들과 구별되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역할 모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트먼은 기술로 인한 문화의 퇴보에 대해 우려했으며 교육을 중요한 문화적 아이디어를 보존하는 수단으로 보았다.4. 3.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
닐 포스트먼은 1969년과 1970년에 뉴욕 뉴로셸의 교육자 앨런 샤피로와 협력하여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에서 제시된 원칙에 기반한 모델 학교를 개발했다.[8] 이 책에서 포스트먼과 찰스 와인가르트너는 많은 학교가 학생들의 삶과 관련이 없고 사소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9] 이러한 비판의 결과로 뉴로셸 고등학교 내에 "탐구, 참여, 독립 학습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8] 이 "열린 학교" 실험은 15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후 미국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뉴욕 그레이트넥에 있는 빌리지 학교의 월터 코랄의 언어 수업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10]1973년 영어 교육 컨퍼런스에서 "학습의 생태"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포스트먼은 학교에 대한 일곱 가지 변화를 제안했다.[11] 그는 학교가 판단과 처벌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친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습 태도보다는 학교 내 경쟁을 유발하는 채점 관행을 폐지하거나 대폭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질적인 학생 그룹, 경쟁을 조장하는 표준화 시험, 학생 통제에 사용되는 영구적인 학생 기록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 및 전문 학교가 학생 선발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학교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르치는 시민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12]
이후 포스트먼은 ''보존적 활동으로서의 교육''을 출판하며 ''전복적인 활동으로서의 교육''에서 제시했던 입장과는 다른 주장을 펼쳤다.[13] 그는 학교가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대중 문화에 대한 대항마 역할을 해야 하며, 문해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또한, 교사가 복장과 언어에서 학생들과 구별되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역할 모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트먼은 기술로 인한 문화의 퇴보를 우려했으며, 교육을 중요한 문화적 아이디어를 보존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1995년 PBS의 ''맥닐/레러 뉴스아워'' 인터뷰에서 포스트먼은 학교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학교가 응집력 있는 그룹으로 함께 배우는 장소이며, 개별 학습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가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교류를 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15]
5. 미디어 비평
닐 포스트먼은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죽도록 즐기기: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공적 담론》, 《테크노폴리: 문화를 기술에 넘겨주다》가 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 모든 것을 오락으로 만들고,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테크노폴리' 사회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모든 기술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전화, 대형 여객선, 위생 관련 기술 등 일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3]
5. 1. 《죽도록 즐기기》
《죽도록 즐기기: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공적 담론》에서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아이디어를 표현함으로써 정치, 뉴스, 역사 및 기타 진지한 주제들을 오락으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했다.[3] 그는 사람들이 청중이 되고 공적 업무가 "보드빌 쇼"가 될 경우 문화가 쇠퇴할 것을 우려했다. 또한 텔레비전이 수세기 동안 인쇄기에 의해 유지되어 온 "진지하고 합리적인 공적 대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제한된 정보 흐름보다는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 분산의 흐름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5. 2. 《테크노폴리》
1992년 닐 포스트먼은 저서 《테크노폴리: 문화를 기술에 넘겨주다(Technopoly: the Surrender of Culture to Technology)》에서 "테크노폴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테크노폴리는 "인간의 노동과 사고의 주요 목표, 아니 유일한 목표는 효율성이며, 기술적 계산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판단보다 우월하며, 시민의 일은 전문가에 의해 가장 잘 인도되고 수행된다"고 믿는 사회이다.C-SPAN 인터뷰에서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가 "미국 문화에서 기술에 주권, 지휘, 통제권을 넘겨주는 경향"을 다룬다고 설명했다.[16]
포스트먼은 미국이 테크노폴리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는 기술 애호가(technophile)들로 넘쳐난다고 보았다. 이는 기술 애호가들이 더 많은 기술과 그에 따른 더 많은 정보를 원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나 포스트먼에 따르면, 기술 혁신이 일방적인 영향만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정보가 끊임없이 증가함에 따라 "정보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질문에 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소한 문제의 해결조차도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는 데 거의 쓸모가 없는 쓰레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먼이 모든 형태의 기술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테크노폴리》 7쪽에서 그는 "전화, 대형 여객선, 위생의 지배"와 같은 기술 발전이 현대 생활을 연장하고 개선했다고 인정한다. 그는 이러한 동의가 자신이 "외눈박이 기술 혐오자"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테크노폴리》에서 포스트먼은 러다이트(Luddism)에 대해 논하며, 러다이트(Luddite)가 종종 기술에 대한 순진한 반대와 연관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포스트먼에 따르면, 역사적인 러다이트들은 새로운 기술 발전 이전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생활 방식과 권리를 보존하려 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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