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다케오
1. 개요
다나카 다케오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정무총감을 역임했다. 1912년 메이지 대학 법률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 시작하여 함경북도 경찰부장, 경무국 경찰과장 등을 거쳤다. 1944년 고이소 내각의 내각서기관장을 지냈으며, 1945년 귀족원 의원이 되었으나 공직 추방되었다. 해방 후 공직 추방이 해제되었으며, 중앙일한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일제강점기 전범으로 처벌받은 한국인들을 지원했다. 그의 행적은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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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883년 1월 10일 |
|---|---|
| 사망 | 1945년 10월 16일 (62세) |
| 출신지 | 일본 후쿠오카현 |
| 최종 학력 |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
| 소속 | 내무성 → 다쿠무성 |
| 최종 관위 | 종3위 |
| 최종 계급 | 훈2등 |
| 1907년 |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
|---|---|
| 1908년 | 내무성에 들어가다. |
| 1911년 | 후쿠이현 사무관 |
| 1912년 | 만주 파견 |
| 1913년 | 외무성 영사관보, 지린성 파견 |
| 1917년 | 다쿠무성 이사관 |
| 1923년 | 다쿠무성 토지과장 |
| 1924년 | 다쿠무성 경리국장 |
| 1929년 | 다쿠무 차관 |
| 1932년 | 관동청 장관 |
| 1934년 | 다쿠무 대신 만주국 특명전권대사 겸임 |
| 1935년 | 귀족원 칙선의원 |
| 특징 | 1934년에 다쿠무 대신으로 임명되어 만주국 특명전권대사를 겸임. 1935년에는 귀족원 칙선의원이 되다. 오자와 다케오는 사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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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사망 -
마해송
마해송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상을 비판하는 등 대한민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1966년 사망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메이지 대학 동문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메이지 대학 동문 -
오탁근
오탁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검사로 활동하다 10·26 사건 처리 후 강제 퇴임, 이후 법무부 장관,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약력
타이가쿠 중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7월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14년 나가노현 경찰 경부보와 경시를 거쳐, 1915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 발탁되어 함경북도 경찰부장, 경무국 경찰과장, 보안과장, 도서과장, 경기 경찰부장, 경무국 보안과장, 총독관방 외사과장을 역임하였다.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을 역임하다가 9월에 퇴관하였다. 1938년 신민회 감찰부 차장, 1939년 탁무 차관을 지냈다. 1940년 퇴관 후 만주 이주 협회 상무이사를 역임하였다. 1942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취임하였다.
1944년 고이소 내각의 내각서기관장으로서 대만 사무국, 기획원, 군수성, 기술원, 총력전 연구소 등을 담당하였다. 1945년 2월 10일 귀족원 의원으로 칙선되었으나, 1946년 2월 13일 사임하고 공직 추방을 당했다. 1951년 공직 추방에서 해제되었고, 1953년 제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전국구에서 개진당 공천으로 입후보했으나 낙선하였다. 묘소는 타마 영원에 있다.
1965년경,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함께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인 중앙일한협회를 이끌었다. 그는 일본 통치 당시 잘못을 보상하는 의미에서 군속으로 끌려갔다가 포로경비병 등을 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처벌받았던 한국인(추산 120명)들을 끝까지 돌봐주고 일본 내에서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2.2. 조선총독부 관료 시절
1915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함경북도 경찰부장, 경무국 경찰과장, 보안과장, 도서과장, 경기 경찰부장, 경무국 보안과장, 총독관방 외사과장을 역임하였다.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되었다가 9월에 퇴임하였다. 1938년 신민회 감찰부 차장, 1939년 탁무 차관을 지냈다. 1940년 퇴관하고 만주 이주 협회 상무이사를 지냈다. 1942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역임하였다.
2.3. 일본 패전 이후
1944년 고이소 내각의 내각서기관장에 취임하여 대만 사무국, 기획원, 군수성, 기술원, 총력전 연구소 등을 담당했다. 1945년 2월 10일 귀족원 의원으로 칙선되었으나, 1946년 2월 13일 사임하고, 공직추방을 당했다. 1951년 공직 추방이 해제되었다. 1953년 제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전국구에서 개진당 공인으로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3.1. 일제강점기 활동
전전(戰前)·전중(戰中)에는 헌병·군무 관련으로 활약했다. 특히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까지 역임한 그의 행적은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된다.
3.2. 해방 이후 활동
전후 사단법인 중앙일한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