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마 오키나리
1. 개요
다누마 오키나리는 일본의 무사시국이와쓰키번주 오카 다다히로의 아들로, 1855년에 태어났다. 1869년 고쿠보번주 다누마 오키타카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 오키타카가 사망하자 고쿠보 번지사가 되었다. 번교 확대 등 문치 정책을 펼쳤으나, 1871년 폐번치현으로 번지사에서 해임되었다. 1873년 가독을 다누마 지에에게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1925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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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카씨 -
오오카 다다미쓰
오오카 다다미쓰는 18세기 에도 시대의 무사로,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의 측근으로 신임을 얻어 이례적인 출세를 거듭하여 소바요닌을 거쳐 무사시 이와쓰키 번의 번주가 되었으며, 산업 발전에 힘쓰다 1760년에 사망했다. -
오오카씨 -
오오카 다다스케
오오카 다다스케는 에도 시대 막부 관료로서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교호 개혁을 보좌하고 에도 시내 행정을 담당하며 도시 정책, 사법, 방화 체제 강화, 하층민 대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오오카 에치젠노카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다누마씨 -
다누마 오키쓰구
다누마 오키쓰구는 에도 시대 후기 쇼군의 신임을 얻어 로주에 올라 막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부정부패와 농촌 황폐화로 비판받으며 실각한 인물이다. -
다누마씨 -
다누마 오키아키
다누마 오키아키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토모의 아들이자 다누마 오키쓰구의 손자이며, 가문 계승 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숙청으로 고초를 겪다 오사카 가반 임명 후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동생 다누마 오키이치가 가문을 이었다. -
가즈사국의 번주 -
이노우에 마사나오
이노우에 마사나오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으로, 하마마츠 번의 영주를 거쳐 로주를 역임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게이오기주쿠에서 학문을 연마하다 1904년에 사망했다. -
가즈사국의 번주 -
다누마 오키타카
다누마 오키타카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로, 오사카 정번, 와카도시요리를 거쳐 막부군 총독으로 텐구당의 난을 진압하고 부타노 전투에서 패배한 후 고쿠보 번 지번사로 서양 학문 도입에 힘쓰다 1869년에 사망했다.
2. 생애
안세이 2년(1855년) 7월, 무사시국 이와쓰키번주 오카 다다히로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메이지 2년(1869년) 고쿠보번주 다누마 오키타카의 양자가 되었고, 이듬해인 메이지 3년(1870년) 2월 22일 양아버지 오키타카가 사망하자 가문을 상속받아 고쿠보 번지사에 취임했다. 번지사로서 학문 장려와 번교 확대 등 문치 정책을 펼쳤으나, 메이지 4년(1871년) 7월 14일 폐번치현으로 인해 지번사에서 해임되었다. 메이지 6년(1873년) 11월에는 가독을 오키타카의 장녀 지혜에게 물려주고 은거하며 다누마 가문을 떠났다. 다이쇼 14년(1925년) 9월 3일에 70세로 사망했으며, 야나카 영원에 묘가 있다. 생부인 오카 다다히로의 묘도 인접하여 건립되어 있다.
2.2. 고쿠보번 번지사 시절
메이지 2년(1869년)에 고쿠보번주 다누마 오키타카의 양자가 되었다. 이듬해인 메이지 3년(1870년) 2월 22일, 양아버지 오키타카가 사망하면서 가문을 상속받아 고쿠보번의 지번사(번의 통치자)로 취임했다. 번지사로서 그는 학문을 장려하고 번교(번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확대하는 등 문치(文治) 정책을 펼쳤다.
메이지 4년(1871년) 2월 14일에는 번의 행정을 대참사(번의 고위 관리)에게 맡기고 유학을 떠나는 것을 허가받았으며, 같은 해 2월 25일에는 도쿄로 이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 해 7월 14일, 메이지 유신의 일환으로 단행된 폐번치현(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한 행정 개혁) 조치에 따라 번지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3. 폐번치현과 그 이후
메이지 3년(1870년) 2월 22일, 양아버지 다누마 오키타카가 사망하자 가문을 상속받아 코쿠보 번지사에 취임했다. 그는 학문을 장려하고 번교를 확대하는 등 문치 정책을 채택했다. 메이지 4년(1871년) 2월 14일, 번정을 대참사에게 맡기고 유학을 허가받았다. 같은 해 2월 25일에는 도쿄로 이주했다.
같은 해 7월 14일, 폐번치현으로 인해 지번사에서 해임되었다.
메이지 6년(1873년) 11월, 가독을 오키타카의 장녀 지혜에게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동시에 다누마 가문에서도 떠났다. 다이쇼 14년(1925년) 9월 3일에 70세로 사망했다. 야나카 영원에 묘가 있으며, 그의 생부인 오카 다다히로의 묘도 인접하여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