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황
1. 개요
대건황은 발해 선왕의 손자이자,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6대손으로, 형 대이진의 뒤를 이어 858년 발해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841년 일본에 서한을 보냈으며, 859년에는 일본에 달력을 보내는 등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활발히 했다. 871년 재위 13년 만에 사망했으며, 신당서에는 그와 대현석의 관계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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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귀족 -
열만화
열만화는 발해 유민으로 추정되며 후발해를 멸망시키고 정안국을 건국한 인물로, 남해부 도독으로서 후당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송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으나 오현명에 의해 피살되었고 가계나 출신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
871년 사망 -
애설레드 1세
애설레드 1세는 에델울프 왕의 아들이자 86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웨섹스의 왕으로, 대 이교도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웠으며 머시아 왕국과의 통화 동맹을 통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혼합하는 데 기여했다. -
871년 사망 -
비자얄라야
비자얄라야는 850년경 탄자부르를 점령하고 촐라 제국을 부활시킨 촐라 왕조의 통치자이며, 팔라바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니숨바수다니 사원을 세웠다. -
발해 국왕 -
대현석
대현석은 대야발의 7대손이자 발해의 왕으로, 일본과 교역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
발해 국왕 -
대이진
대이진은 발해의 제11대 왕으로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문물 교류에 힘썼고, 중앙 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국가 체제를 강화하려 했다.
2. 생애
대건황은 고왕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6대손이자, 선왕의 손자이며, 일찍 죽은 태자 대신덕의 차남이다. 형 대이진에게 자녀가 여럿 있었는데도 왕위에 올랐다.
841년 당시 중대친공 정당성대내상 겸 전중령(中臺親公 政堂省大內相 兼 殿中令)과 안풍현개국공(安豊縣開國公)이었다. 그해 9월 25일 정당성춘부경 상중랑장 상주국(春部卿上中郞將 上柱將) 문리현의개국남(聞理縣擬開國男) 하수겸(賀守謙) 등과 공동 명의로 일본에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842년 3월 28일 일본 태정관에 제출되었으며, 후일 임생가문서(壬生家文書) 중 고왕래소식잡잡(古往來消息雜雜) 2권 중 제1권에 사본이 수록되었다. 이는 일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서 소장해오다가 1950년 발견되었다.
858년 2월 대이진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신당서》에는 이진이 죽자 동생 건황을 세웠다고 기록되었다. 곧 사신을 보냈는데, 《구당서》 19권에는 858년 2월 왕제 권지국무(王弟權知國務)인 그에게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흘한주도독(銀青光祿大夫 檢校秘書監 忽汗州都督)에 임명하고 발해국왕에 책봉했다 한다.
859년 5월 10일 오효신(烏孝愼) 등 104명의 사절을 일본에 파견했을 때 달력인 「장경선명력경(長慶宣明暦經)」을 일본에 보냈다. 그가 일본 왕에게 보낸 서한은 《일본삼대실록》에 수록돼 있다. 860년 다시 일본에 사절을 보냈다. 871년 6월 재위 13년만에 붕어하였다.
《신당서》 발해편에는 선대왕과 후대 왕의 관계를 기술하였으나 대건황 이후의 세계는 기록하지 않았다.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대현석을 대건황의 아들로 보았으나, 정약용은 《발해속고》에서 년월과 세계가 전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2.1. 가계와 왕위 계승
발해 고왕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6대손이자, 발해 선왕의 손자이며, 일찍 죽은 태자 대신덕의 차남이다. 형 대이진에게 자녀가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올랐다.
858년 2월 대이진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신당서》에는 이진이 죽자 동생 건황을 세웠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2.2. 당과의 관계
858년 2월, 당은 왕제 권지국무(王弟權知國務)였던 대건황에게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흘한주도독(銀青光祿大夫 檢校秘書監 忽汗州都督)을 제수하고 발해국왕으로 책봉하였다.
2.3. 일본과의 관계
841년 대건황은 중대친공 정당성 대내상 겸 전중령(中臺親公 政堂省大內相 兼 殿中令) 및 안풍현개국공(安豊縣開國公) 직책에 있었다. 같은 해 9월 25일, 정당성 춘부경 상중랑장 상주국(春部卿上中郞將 上柱將) 문리현의개국남(聞理縣擬開國男) 하수겸(賀守謙) 등과 공동 명의로 일본에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842년 3월 28일 일본 태정관에 제출되었으며, 후일 임생가문서(壬生家文書)에 사본이 수록되었다.
859년 5월 10일 오효신(烏孝愼) 등 104명의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며 달력인 「장경선명력경(長慶宣明暦經)」을 보냈다. 일본 왕에게 보낸 서한은 일본삼대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860년 다시 일본에 사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