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 개요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는 1945년, 1963년, 2008년, 2013년에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들을 통칭한다. 1945년 사고는 73명의 사망자를 냈고, 1963년 사고는 진로 설정 오류로 2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했다. 2008년 사고는 기관사의 신호 착오로 무궁화호와 화물열차가 충돌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2013년 사고는 승무원과 관제원의 부주의로 무궁화호, KTX, KTX가 연쇄 충돌하여 기관사, 여객전무, 관제사가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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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철도 사고 -
노이하우젠역
스위스에 위치한 노이하우젠역은 바젤 및 취리히 S-반 노선이 운행되는 철도역으로, 과거 독일과의 국경 세관 검사 지역이었으나 솅겐 협정 가입 후 통과 절차가 간소화되었으며, 2013년과 2024년에 탈선 사고가 있었다. -
2013년 철도 사고 -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열차 탈선 사고
2013년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인근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 사고는 운전사의 과속으로 인해 79명이 사망하고 14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이후 안전 시스템 강화와 운전사 과실치사 재판이 진행되었다. -
한국고속철도 -
경부고속철도
경부고속철도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대한민국의 고속철도 노선으로, 1990년 건설 계획 결정 후 3단계에 걸쳐 건설되어 2015년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프랑스 TGV 기술 도입으로 서울-부산 간 소요시간을 단축하고 KTX 열차 운행을 통해 전국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핵심 교통망이 되었다. -
한국고속철도 -
호남고속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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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한민국 -
아리랑 5호
아리랑 5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SAR 관측 위성으로, 2013년 러시아에서 발사되어 야간 및 악천후에도 영상 획득이 가능하며 재난 감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
2013년 대한민국 -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은 2013년 국가정보원의 수사로 시작되어 이석기 의원이 RO라는 지하 혁명 조직을 결성,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모의 및 대한민국 정부 전복을 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에서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어 징역 9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3. 1963년 사고
1963년 9월 13일 오전 4시 45분경, 대구역에서 서울발 부산행 여객 열차와 부산발 서울행 화물 열차가 충돌하여 2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3.1. 사고 경위
1963년 9월 13일 오전 4시 45분경, 대구역으로 진입하던 서울발 부산행 제9 여객 열차가 진로가 잘못 설정되어, 역 구내에서 입환 중이던 부산발 서울행 제52 화물 열차와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 20여 명이 경상을 입었다.
3.2. 사고 원인
서울발 부산행 여객 9열차가 대구역으로 진입하던 중 진로가 잘못 설정되어, 구내에서 입환 중이던 부산발 서울행 화물 52열차와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 20여 명이 경상을 입었다.
4. 2008년 사고
2008년 2월 22일 오전 11시 22분경, 대구역 5번 선로(측선)에 정차 중이던 화물 열차가 4번 선로(하부 본선) 신호기의 진행 신호를 자신의 신호로 오인하여 무궁화호와 충돌한 사고가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4.1. 사고 경위
2008년 2월 22일 오전 11시 22분경, 대구역 5번 선로(측선)에 정차 중이던 화물 3113 열차가 4번 선로(하부 본선) 신호기의 진행 신호를 자신의 신호로 오인하고 출발하였다. 이로 인해 4번 선로에서 정상 신호를 받고 출발하던 무궁화호 1203 열차와 충돌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4.2. 사고 원인
3113 화물 열차 기관사가 하부본선인 4번선 신호기에 켜진 진행 신호를 자신의 신호로 착각하고 발차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4번선에서 정상 신호를 받고 출발하던 무궁화호 1203 열차와 충돌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5. 2013년 사고
2013년 8월 31일 오전 7시 15분경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는 승무원의 주의 의무 소홀과 로컬 관제원의 관제 소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3대의 열차가 연루되었고, 260명의 승객이 있었다.
5.1. 개요
2013년 8월 31일 오전 7시 13분경, 대구역에서 서울행 #1204 무궁화호가 서울행 #4012 KTX 열차와 충돌했고, 약 4분 후(오전 7시 17분) 부산행 #101 KTX 열차가 대구역으로 진입하던 중 이미 충돌해 있던 KTX #4012 열차의 2호차 측면과 접촉하여 다시 충돌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2008년 사고와 반대편인 상선 쪽에서 발생하였으나, 대구역의 좁은 부지로 인해 신호기가 몰려서 설치됨에 따른 신호 오인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점은 같다.
이 사고로 21명이 부상당했고, 서울행 KTX 8량, 서울행 무궁화호 기관차 1량이 탈선해 열차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5.2. 사고 경위
2013년 8월 31일 오전 7시 13분경, 서울행 #1204 무궁화호가 대구역에서 서울행 #4012 KTX 열차와 충돌했고(1차 사고), 약 4분 뒤인 오전 7시 17분, 부산행 #101 KTX 열차가 대구역으로 진입하던 중 이미 충돌해 있던 KTX #4012 열차의 2호차 측면과 접촉하며 2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2008년 사고와 반대편인 상선 쪽에서 발생하였으나, 대구역의 좁은 부지로 인해 신호기가 몰려서 설치됨에 따른 신호 오인이 주된 원인이 되어 열차가 충돌했다는 점이 같다.
이 사고로 21명이 부상당했고, 서울행 KTX 8량, 서울행 무궁화호 기관차 1량이 탈선해 열차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사고는 대구역에서 승객 승하차를 진행하던 상행 무궁화호가 출발 신호를 오인하여 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무궁화호는 KTX 4012 열차와 충돌했고, KTX 4012 열차는 급제동을 했으나 객차 8량이 탈선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부산행 KTX 101 열차가 대구역에 접근하다가 KTX 4012 열차와 2차 충돌했다. (각 열차별 상세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
5.2.1. 상행 무궁화호 1204열차
2013년 8월 31일 7시 7분,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가는 무궁화 1204열차가 동대구역을 출발해 7시 10분에 대구역의 1번선(상부본선)으로 접근하였다. 관제사는 뒤따라오는 4012 KTX 열차를 대구역에서 먼저 통과시키라는 운전명령을 통보하였고, 대구역 로컬관제원은 상부본선에 도착한 1204열차를 확인하고 후속 4012열차를 상본선(2번선)으로 선로 방향을 변경하고 출발 및 장내 신호기에 진행신호를 현시하였다. 이때 로컬관제원은 1번선에는 장내신호기에 정지신호가 현시되어 있으므로 기관사와 여객전무에게 임시 운전명령을 통보하지 못하였다.
약 2분간 여객 승객의 승차와 하차를 진행한 후 여객전무는 2번선의 출발신호기를 오인하여 기관사에게 출발전호를 실시하였고, 기관사는 이에 환호응답 후 오전 7시 13분 열차를 출발시켰으나 자신의 상행 출발신호기를 확인하지 않았다. 1204열차가 약 155m를 진행한 후 대구역 로컬관제원이 무전기로 다급하게 정지를 요구하여 기관사가 비상제동을 하였으나 약 41m를 더 진행하여 같은 시간에 통과하는 4012 KTX 열차의 동력차와 충돌하였다.
5.2.2. 상행 KTX 4012열차
대구역 장내 신호기를 통과할 때(오전 7시 13분) 1204 무궁화호 열차를 발견하고 약 113km 속도에서 비상제동을 걸었으나 약 183m 진행하여 약 85km 속도로 동력차 좌측면 후드부분이 무궁화호 열차 우측 모서리에 충격을 받고 객차 8량이 탈선한 후 187m 더 진행하여 정지하였다.
5.2.3. 하행 KTX 101열차
부산행 KTX 101열차가 1차 사고 발생 4분 후 대구역에 접근하였고, 이때 상행 KTX 우측에서 비상 수신호를 하는 사람을 보았으나 상용제동을 작동하여 약 42km/h의 속도로 3번 선으로 통과하던 중 동력차 우측 출입문이 상행 KTX 2호 객차의 측면과 접촉하면서 2차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약 59m를 더 가서 정지하였다.
5.3. 사고 원인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는 무궁화호 기관사의 신호 위반과 대구역 관제사 및 중앙관제센터의 대응 미흡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고였다. 1차 충돌은 무궁화호 기관사가 신호를 오인하고, 여객전무 또한 현장 업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출발 신호를 보낸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는 코레일의 인력 감축 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반발로 인해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대체 투입된 배경도 작용했다. 2차 충돌은 대구역 관제사가 1차 충돌 후 적절한 방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중앙관제센터 역시 운행 중지 등의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5.3.1. 1차 충돌의 원인
무궁화호 기관사가 신호를 위반한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 일반열차 승강장과 KTX 통과용 선로에는 2개의 신호기가 있었는데, 무궁화호 기관사는 4012열차가 통과할 선로인 2번선의 신호기를 자신들이 정차하고 있던 1번선의 신호기로 착각해 출발했고, 여객전무도 신호기를 잘못 보고 출발 무전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해당 여객전무는 원래 지역본부 직원이었다. 여객전무 경험은 있으나 7~8년 동안 현장 업무를 하지 않았던 직원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이 사측의 역-열차 순환전보 방침에 반발하여 열차승무 분야가 휴일근무를 거부함에 따라 해당 직원이 여객전무로 대체 투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반발이 있어 왔던 코레일의 인력 감축 정책에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