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보덕국)
1. 개요
대문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보덕국의 군주 안승의 아들이나 조카로 추정되며, 횡성 고씨로 알려져 있다. 보덕국의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보덕국의 최고 권력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신문왕 대에 안승이 신라로 소환되어 보덕국과 격리되자, 684년 11월 안승의 조카이자 보덕국 장군으로서 모반을 꾀하다 처형되었고, 이 사건으로 보덕국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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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위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보덕국의 군주 안승의 아들이거나 조카로 추정되며, 횡성 고씨로 추정된다. 보덕국의 태대형이었던 고연무와 함께 보덕국의 최고위 권력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활동
신문왕 대 신라는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683년 10월, 번속국(藩屬國)이었던 보덕국의 왕 안승을 수도로 불러 신라의 소판(蘇判) 관등을 부여하고 김씨 성을 내리고 집과 토지를 주며 수도에 거주하게 하였다. 이는 금마저에 있는 보덕국과 안승을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한 불만으로 684년 11월 안승의 조카인 대문이 모반을 꾀하다 처형되었고, 이를 계기로 보덕국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