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무
1. 개요
고연무는 7세기 후반 나당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구려 유민 출신 인물이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 사찬 설오유와 함께 말갈군을 격퇴했으나 당나라 군대를 피해 퇴각했다. 이후 보덕국이 건국되자 신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문무왕에게 감사를 표했다. 보덕국이 신라에 재편입된 후에는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KBS의 한국사기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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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가 -
보장왕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난으로 즉위하여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혼란을 겪다 고구려 멸망 후 부흥을 시도하다 유배되어 사망했다. -
고구려 부흥운동가 -
안승
안승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여 보덕국왕이 되었으며, 신라의 나당전쟁에 참전하여 당군 격퇴에 기여하고 신라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
고구려 유민 -
고선지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의 장군이 되어 서역에서 활약했으며,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당나라의 서진을 종식시키고 안사의 난 진압 중 처형되었다. -
고구려 유민 -
보장왕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난으로 즉위하여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혼란을 겪다 고구려 멸망 후 부흥을 시도하다 유배되어 사망했다. -
7세기 한국 사람 -
을지문덕
을지문덕은 612년 살수대첩에서 뛰어난 전략과 지휘 능력으로 수나라의 침략을 격퇴하고 고구려의 국력을 과시한 인물로,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후대에 국난 극복의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다. -
7세기 한국 사람 -
고연수
고연수는 고구려 말기의 북부 욕살로, 안시성 공격 당시 안시성 구원에 나섰으나 당나라 군대에 패배하여 항복 후 사망했다.
2. 생애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졌고, 680년(문무왕 20년) 고연무는 보덕국의 사신으로 신라에 가서 문무왕이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2.1. 고구려 부흥 운동과 신라 투항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2.2. 보덕국 건국과 활동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고연무는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2.3. 보덕국 멸망 이후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