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무
1. 개요
고연무는 7세기 후반 나당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구려 유민 출신 인물이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 사찬 설오유와 함께 말갈군을 격퇴했으나 당나라 군대를 피해 퇴각했다. 이후 보덕국이 건국되자 신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문무왕에게 감사를 표했다. 보덕국이 신라에 재편입된 후에는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KBS의 한국사기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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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가 -
보장왕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난으로 즉위하여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혼란을 겪다 고구려 멸망 후 부흥을 시도하다 유배되어 사망했다. -
고구려 부흥운동가 -
안승
안승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여 보덕국왕이 되었으며, 신라의 나당전쟁에 참전하여 당군 격퇴에 기여하고 신라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신라의 귀족 -
김흠순
김흠순은 신라의 왕족이자 장군으로, 김유신의 동생이며 황산벌 전투에서 아들의 죽음으로 신라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삼국 통일에 기여한 후 승상에 올랐으나 당나라에 억류되기도 했고, 그의 삶은 여러 작품에서 재조명되었다. -
신라의 귀족 -
김서현
김서현은 가락국 구형왕의 손자이자 신라 각간을 지낸 인물로, 김유신의 아버지이며, 각간, 소판, 대량주도독 등을 역임하며 군사적으로 공헌했고, 그의 딸 문명왕후는 태종 무열왕과 혼인했다.
2. 생애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졌고, 680년(문무왕 20년) 고연무는 보덕국의 사신으로 신라에 가서 문무왕이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2.1. 고구려 부흥 운동과 신라 투항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2.2. 보덕국 건국과 활동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고연무는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2.3. 보덕국 멸망 이후
668년 신라·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정복하자, 670년 나당 전쟁에서 고연무는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말갈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곧 도착한 대규모 당군을 피해 퇴각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며 보덕국이 세워지자, 680년(문무왕 20년) 신라에 보덕국의 사신으로 가서 문무왕이 보덕국왕 안승에게 조카딸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감사의 표문을 전하기도 했다.
683년 신라가 보덕국을 남원경(전라북도 남원)으로 재편입한 후, 고연무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