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간 망절씨
1. 개요
도간 망절씨는 1942년 경상남도 진해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망절일랑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망절일랑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성장하다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적을 회복했으나, 유산 문제로 갈등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양산에 정착하여 버섯 재배업에 종사하다 2012년에 사망했으며, 본관은 그의 조부 출신지인 일본 다네가시마 섬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2000년에는 10명, 2015년에는 9명이 도간 망절씨 성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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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간 망절씨 -
망절일랑
망절일랑은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농업에 헌신하며 "버섯 박사"로 불렸고, 기능성 버섯 개발과 친환경 농법으로 농업 기술 혁신을 이끌었으며, 한일 농가 교환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일 친선에 기여한 인물이다.
2. 역사
시조 망절일랑(網切一郞, 아미키리 이치로)은 1942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일본인 경찰관 아버지 아미키리 요시우에몬(網切義右衛門)과 한국인 어머니 양두연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아버지가 일본으로 추방되자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일랑(梁一郞)으로 성장했다. 진해 충무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축산협동조합에서 일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NHK의 도움으로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섬에서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서신 교환을 시작했고, 1968년 가족들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적을 회복, 1969년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다.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일본인 사촌 등과 갈등을 겪은 후 1970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경상남도 양산군에 정착했다. 한국인 아내 정순남과 결혼하여 망절용, 망절웅 형제 등 2남 2녀를 두었다. 버섯재배업에 종사하다 2012년 양산시 동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별세하였다.
2.1. 시조
망절일랑(網切一郞, 아미키리 이치로)은 1942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일본인 경찰관 아버지 아미키리 요시우에몬(網切義右衛門)과 한국인 어머니 양두연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2.2. 해방 이후
1942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일본인 경찰관 아미키리 요시우에몬(網切義右衛門)과 한국인 여성 양두연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망절일랑(網切一郞, 아미키리 이치로)은 1945년 일제 패망으로 아버지가 일본으로 추방되자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일랑(梁一郞)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했다. 그는 진해 충무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축산협동조합에서 근무했다.
2.3.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NHK의 도움으로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섬에서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서신 교환을 시작했다. 1968년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적을 회복하고 1969년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일본인 사촌 등과 갈등을 겪었고, 곧 한국을 그리워하게 되면서 1970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경상남도 양산군에 자리를 잡았다.
2.4. 한국 정착
시조 망절일랑(網切一郞, 아미키리 이치로)은 1970년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경상남도 양산군에 정착하였다. 한국인 아내 정순남과 결혼하여 망절용, 망절웅 형제 등 2남 2녀를 두었다. 버섯재배업에 종사하다가 2012년 양산시 동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별세하였다.
4. 인구
| 연도 | 인구 (명) |
|---|---|
| 2000년 | 10 |
| 2015년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