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밍고 고메스아세도
1. 개요
도밍고 고메스아세도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선수 경력 전체를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냈다. 그는 코파 델 레이에서 4번 우승하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구단 역사상 최연소 출전 및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스페인 국가대표로 1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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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도밍고 고메스-아세도 이 비야누에바 |
|---|---|
| 출생일 | 1898년 6월 6일 |
| 출생지 | 빌바오, 스페인 |
| 사망일 | 1980년 9월 14일 |
| 사망지 | 게초, 스페인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빌바오 (1913–1914) |
|---|---|
| 클럽 | 아틀레틱 빌바오 (1914–1929) |
| 출장 (골) | 0 (0)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1920–1924) |
|---|---|
| 국가대표팀 출장 (골) | 11 (1) |
| 비스카야 대표팀 | 비스카야 (1922–1924) |
| 비스카야 대표팀 출장 (골) | 2 (1) |
| 올림픽 | 1920년 안트베르펜 단체전 은메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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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는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 유벤투스 FC 세리에 A 5회 연속 우승, 1934년 FIFA 월드컵 우승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
192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비르지니오 로세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고, 프로 베르첼리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와 팔레르모에서 감독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했다. -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비르지니오 로세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고, 프로 베르첼리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와 팔레르모에서 감독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했다. -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리카르도 사모라
리카르도 사모라는 1920-30년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은퇴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서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라리가 최고 골키퍼에게 리카르도 사모라 트로피가 수여된다. -
빌바오 출신 -
미겔 데 우나무노
미겔 데 우나무노는 186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소설 『안개』 등을 통해 실존주의적 사상을 표현하고 살라망카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초기 프랑코를 지지했으나 이후 반대하여 가택 연금 상태에서 사망했다. -
빌바오 출신 -
안데르 에레라
안데르 에레라 아길레라는 스페인의 프로 축구 선수로, 레알 사라고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클럽을 거치며 다양한 우승 경력을 쌓았으며, 스페인 U-21 대표팀과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아세도는 현역 시절 전부를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냈다. 1914년 아틀레틱 빌바오 1군 선수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14년 10월 18일 북부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 16세 4개월 12일의 나이로 데뷔하여 득점까지 기록하며 아틀레틱 역사상 최연소 출전 및 득점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아틀레틱 선수로 공식 등록된 지 6개월이 되지 않아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의 기록은 때때로 아구스틴 가인사나 이케르 무니아인의 기록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아세도는 코파 델 레이에서도 아틀레틱의 최연소 출전 및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1915년 4월 25일, 16세 10개월 19일의 나이로 대회 데뷔전에서 득점했다. 이는 무니아인이나 가인사도 17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까지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그는 호세 마리아 벨라우스테, 사비노 빌바오, 피치치와 같은 동료들과 함께 14년간 활약하며 아틀레틱의 주요 선수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 준우승 1회,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우승 8회를 달성했다. 특히 1916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1골, 1921년 결승전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아세도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빠른 주력과 정교한 세트 피스 처리 능력이었으며,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하는 '올림피코 골'을 기록한 경험도 있다.
1929년 라 리가가 출범하기 전에 현역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프로 리그 선수로서의 경험은 없다.
| 대회 | 우승 | 준우승 |
|---|---|---|
| 코파 델 레이 | 1915, 1916, 1921, 1923 | 1920 |
|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 1914–15, 1915–16, 1919–20, 1920–21, 1922–23, 1923–24, 1926–27, 1928–29 | - |
3. 국가대표팀 경력
그는 19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원년 선수단 일원으로,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20년 8월 28일, 아세도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경기였던 1920년 하계 올림픽 덴마크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세 경기에 더 출전했는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기록했고, 네덜란드와의 은메달 결정전에도 선발로 나서 스페인의 3-1 승리를 도왔다. 아세도는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스페인 국가대표로 총 1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wikitext
:아세도의 팀 득점이 먼저 나열되었으며, 점수 열은 그의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3.2. 비스케이 대표팀 기록
:아세도의 팀 득점이 먼저 나열되었으며, 열은 그의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4. 사생활
도밍고 아세도의 형 아킬리노도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였는데, 도밍고보다 조금 먼저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아킬리노는 1913 FEF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출전하여 당시 라싱 이룬에게 패했고, 산 마메스 개장 경기에서는 같은 상대(이후 레알 우니온으로 개칭)를 만나 승리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그의 누이인 마리아 메르세데스 아세도는 언론인 마누엘 아스나르 수비가라이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1990년대에 스페인의 총리를 지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의 조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