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리아 벨라우스테
1. 개요
호세 마리아 벨라우스테는 1909년부터 1925년까지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선수 생활을 한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다. 그는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3경기에 출전했다. 클럽에서는 코파 델 레이 6회, 비스카야 선수권 대회 5회 우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바스크 국민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했다. 스페인 내전 발발 후 멕시코로 망명하여 1964년 멕시코 시티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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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호세 마리아 데 벨라우스테기고이티아 란달세 |
|---|---|
| 출생일 | 1889년 9월 3일 |
| 출생지 | 빌바오, 스페인 |
| 사망일 | 1964년 4월 9일 |
| 사망지 | 멕시코시티, 멕시코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신장 | 193cm |
| 별칭 | 엘 레온 데 암베레스 (안트베르펜의 사자) |
| 클럽 | 아틀레틱 빌바오 (1905-1926) |
|---|---|
| 출전 | 93 |
| 득점 | 20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1920) |
|---|---|
| 국가대표 출전 | 3 |
| 국가대표 득점 | 1 |
| 올림픽 | 은메달: 1920 안트베르펜 단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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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민족주의자 -
호세 앙헬 이리바르
호세 앙헬 이리바르는 아틀레틱 빌바오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감독으로,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가로 활동했다. -
바스크 민족주의자 -
아마데오 가르시아
아마데오 가르시아는 에스파냐의 왕자이다. -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민간 사람 -
루이스 레게이로
루이스 레게이로는 레알 우니온,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한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스페인과 바스크 국가대표팀에서 뛰었으며, 은퇴 후에는 목재 사업에 종사했고, 그의 아들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민간 사람 -
펠릭스 칸델라
스페인 태생의 건축가 펠릭스 칸델라는 얇은 쉘 구조와 포물면, 쌍곡선 기하학을 활용한 혁신적인 콘크리트 건축물 설계로 유명하며,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우주선 연구소와 멕시코시티 지하철 칸델라리아 역 등이 대표작으로 구조적 합리성과 미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다. -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비르지니오 로세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고, 프로 베르첼리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와 팔레르모에서 감독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했다. -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리카르도 사모라
리카르도 사모라는 1920-30년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은퇴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서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라리가 최고 골키퍼에게 리카르도 사모라 트로피가 수여된다.
2. 클럽 경력
비스카이아 도 빌바오 출신인 벨라우스테는 15세 때부터 36세 때까지 아틀레틱 빌바오에서만 활약하였다. 그는 신장이 1.93m였고 체중은 95kg이었던 덕분에 강인한 신체적 조건을 이점으로 경기를 뛰었다.
그가 활약한 유일한 구단에서의 첫 경기는 1909년 4월 4일, 2-4로 패한 산 세바스티안 사이클링 클럽(오늘날의 레알 소시에다드)과의 경기였고, 현역 시절에 코파 델 레이 6회,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5회 우승을 거두었다.
| 대회 | 우승 연도 |
|---|---|
| 코파 델 레이 | 1910, 1911, 1914, 1915, 1916, 1921 |
|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 1913–14, 1914–15, 1915–16, 1919–20, 1920–21 |
3. 국가대표팀 경력
벨라우스테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3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19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스페인 대표팀의 초대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고,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는 1920년 8월 28일 올림픽 본선 덴마크전이었으며, 이는 스페인 대표팀의 첫 국제 A매치이기도 했다. 벨라우스테는 이 대회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은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3.1. 국가대표팀 출전 대회
벨라우스테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원년 선수단 주장으로서 3번 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0으로 이긴 덴마크와의 대회 본선 경기였다. 벨라우스테는 스웨덴과 치른 두 번째 경기에서, 그의 어록이 스페인 축구 역사에 남아 길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는 1-1로 동률을 이룬 상황에 같은 아틀레틱 소속의 사비노 빌바오에게 계속해서 공을 넘겨달라고 소리쳤다: "공을 보내, 사비노, 내가 뭉개버릴게!"(A mí el pelotón, Sabino, que los arrollo스페인어) 이는 국가대표팀에 붉은 분노(Furia Roja스페인어)라는 별칭이 붙게 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출전 대회
* 스페인 대표
**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 (은메달)
4. 사생활
벨라우스테는 중산층 가정의 9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는 현역 선수 시절 데우스토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은퇴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벨라우스테의 형제 중 라몬과 파초 역시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공식 경기에서 벨라우스테와 함께 뛴 기록은 없다. 라몬은 1913년부터 1915년까지 활동하며 1914년과 1915년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다. 파초는 1919년부터 1922년까지 활동하며 1921년 코파 델 레이 우승 후, 파리로 건너가 마리 퀴리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축구 외 다른 종목에서도 재능을 보였는데, 1925년 스페인 전국 육상 대회 원반던지기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벨라우스테는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바스크 국민당에 가입해 체육 부문을 담당했다. 1922년 한 회의에서는 "스페인에 죽음을!"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또한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에서는 개회식 행진 중 스페인 국기 들기를 거부하여 은메달을 받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망명하여 프랑스, 알제리,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지를 거쳐 귀국했으나, 스페인 내전 발발 후 다시 멕시코로 망명했다. 1964년 9월 4일, 멕시코시티에서 폐암으로 향년 75세에 사망했다.
5. 수상
클럽
* 아틀레틱 빌바오
코파 델 레이 (6회): 1910, 1911, 1914, 1915, 1916, 1921
비스카야 선수권 대회 (5회): 1913–14, 1914–15, 1915–16, 1919–20, 1920–21
국가대표팀
* 스페인
**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20
5.1. 클럽
비스카이아 도 빌바오 출신인 벨라우스테는 15세부터 36세까지 아틀레틱 빌바오 한 팀에서만 활약하였다. 그는 키 1.93m, 몸무게 95kg의 건장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강인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아틀레틱 빌바오 데뷔 경기는 1909년 4월 4일에 열린 산 세바스티안 사이클링 클럽(오늘날의 레알 소시에다드)과의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팀은 2-4로 패배했다. 현역 시절 동안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6번의 코파 델 레이와 5번의 비스카야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 코파 델 레이 (6회): 1910, 1911, 1914, 1915, 1916, 1921
* 비스카야 선수권 대회 (5회): 1913–14, 1914–15, 1915–16, 1919–20, 1920–21
5.2. 국가대표팀
벨라우스테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원년 선수단의 주장을 맡았다. 그는 이 대회에서 총 3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덴마크와의 대회 본선 경기로, 스페인이 1-0으로 승리했다. 스웨덴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스페인의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일화가 있다. 1-1로 동점을 이루던 상황에서, 그는 같은 아틀레틱 클루브 소속이었던 사비노 빌바오에게 계속해서 공을 넘겨달라고 외쳤는데, 그 내용은 A mí el pelotón, Sabino, que los arrollo!스페인어("공을 보내, 사비노, 내가 뭉개버릴게!")였다고 전해진다. 이 외침은 이후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Furia Roja스페인어('붉은 분노')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