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승
1. 개요
도승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내황현의 관리를 지냈다. 193년 위군의 반란 당시 평한장군을 칭하며 반란에 가담했으나, 마음을 바꿔 반란군을 막고 원소의 물건을 호송했다. 원소는 그를 건의중랑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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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유
위유는 후한 말 유우의 동조연으로,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할 때 만류했으며 이민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을 건의했으나 193년에 병사한 인물이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도승은 내황현(內黃縣)의 관리를 지냈다.
초평 4년(193년) 3월 상사일(上巳日), 공손찬을 격파하고 돌아온 원소는 박락진(薄洛津)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이때 위군(魏郡)의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흑산적(黑山賊)의 우두머리 우독(于毒) 등과 손을 잡고 수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업으로 진격하여 위군태수(魏郡太守) 율성을 죽였다.
도승은 자신을 평한장군(平漢將軍)이라 칭하며 반란에 가담하였으나, 마음을 바꿔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막아 도적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원소의 의관 등 중요한 물건들을 수레에 싣고 척구(斥丘)까지 호송하였다. 원소는 척구에 주둔한 후 도승을 건의중랑장(建義中郞將)에 임명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도승은 내황현(內黃縣)의 관리를 지냈다.
193년 3월 상사일(上巳日), 공손찬을 격파하고 돌아온 원소가 박락진(薄洛津)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위군(魏郡)의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흑산적(黑山賊)의 우두머리 우독(于毒) 등과 손을 잡고 수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업으로 진격하여 위군태수(魏郡太守) 율성을 죽였다.
이때 도승도 자신을 평한장군(平漢將軍)이라 칭하며 반란에 가담하였으나, 마음을 고쳐 혼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막아 도적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원소의 의관 등 중요한 물건들을 수레에 싣고 척구(斥丘)까지 호송하였다. 원소는 척구에 주둔한 후 도승을 건의중랑장(建義中郞將)에 임명하였다.
2.2. 위군 반란 가담과 번심
초평 4년(193년) 3월 상사일(上巳日), 공손찬을 격파하고 돌아온 원소가 박락진(薄洛津)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위군(魏郡)의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흑산적(黑山賊)의 우독(于毒) 등과 손을 잡고 수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업으로 진격하여 위군태수(魏郡太守) 율성을 죽였다.
이때 도승도 자신을 평한장군(平漢將軍)이라 칭하며 반란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도승은 마음을 고쳐먹고 혼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막아 도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원소의 의관 등 중요한 물건들을 수레에 싣고 척구(斥丘)까지 호송하였다. 원소는 척구에 주둔한 후, 도승을 건의중랑장(建義中郞將)에 임명하였다.
2.3. 원소의 신임과 건의중랑장 임명
초평 4년(193년) 3월 상사일(上巳日), 공손찬을 격파하고 돌아온 원소는 박락진(薄洛津)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이때 위군(魏郡)의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켜 흑산적(黑山賊)의 우독(于毒) 등과 손을 잡았고, 수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업으로 진격하여 위군태수(魏郡太守) 율성을 죽였다.
이때 도승도 자신을 평한장군(平漢將軍)이라 칭하며 가담하였는데, 마음을 고쳐 혼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막아 도적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수레에 원소의 의관 등 중요한 물건들을 싣고 척구(斥丘)까지 호송하였다. 원소는 곧 척구에 주둔하였고, 도승을 건의중랑장(建義中郞將)에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