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유
1. 개요
위유는 후한 말 유주목 유우 밑에서 동조연을 지낸 인물이다.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할 때 여러 차례 간언하며 이를 막았으나, 결국 유우는 공손찬을 공격했다. 위유는 이민족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유우에게 금품 증정을 진언하기도 했다. 위유는 193년에 병사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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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년 사망 -
페르티낙스
페르티낙스는 콤모두스 암살 후 로마 황제가 되었으나, 재정 개혁과 군 기강 확립 시도 중 프라이토리아니의 반발로 87일 만에 암살당한 인물이다. -
193년 사망 -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2세기 로마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는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파르티아 전쟁과 마르코만니 전쟁에서 공을 세워 황실의 일원이 되었고 집정관까지 역임했으며, 콤모두스 암살 후에는 황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히미코
히미코는 3세기경 야마타이국을 다스린 여왕으로,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주술로 백성을 다스렸다고 전해지지만 실존 여부와 야마타이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2.1. 초기 활동
위유는 유주목(幽州牧) 유우 밑에서 동조연(東曹掾)을 지냈다.
초평 3년, 유우가 공손찬을 치고자 하였다. 이때 위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를 말렸고, 유우는 곧 그만두었다.
今聞天下擧首而望公、莫不歸心、如有不樂豫者、則公孫瓚文武備足、可謂當今之要也。중국어
그러나 위유는 이듬해에 병들어 죽었고, 유우는 결국 공손찬을 공격하였다.
유우는 천하의 두터운 인망을 얻고 있었기에, 이민족도 주 내부로 침입하지 못할 정도였다. 위유는 이민족과의 교우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유우에게 이민족에게 금품을 증정하도록 진언하여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우의 인망을 시샘하던 공손찬에 의해 그 금품을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우는 공손찬과 회견하려 했으나, 공손찬은 이유를 대며 만나려 하지 않았다.
초평 3년, 이에 분노한 유우는 공손찬이 계교 전투에서 원소에게 패배한 것을 보고, 스스로 공격하려 했다. 그때 위유는 “공손찬의 문무는 믿을 만한 것이므로, 그의 작은 악행에는 눈감고 참아야 합니다.”라고 간언하여 그 뜻을 멈추게 했다.
이듬해 병사했다. 그의 사후, 유우는 마침내 공손찬과 대립하게 된다.
2.2. 공손찬과의 갈등 중재
초평 3년(192년),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하자 위유는 다음과 같이 간언하며 이를 말렸다.
: 지금 온 천하가 목을 빼어 공을 존경하며 귀의하기를 원하니, 훌륭한 부하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손찬이 문무(文武)에 뛰어나니, 그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유우는 위유의 간언을 받아들여 공손찬 공격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위유는 이듬해에 병들어 죽었고, 유우는 결국 공손찬을 공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