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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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시의 기억, 베를린은 후안 가라이사발이 제작한 설치 예술 작품으로, 베를린의 베들레헴 교회를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한시적 설치 예술로 기획되었으나, 2013년 베를린 시의 결정으로 영구 설치물로 전환되었다. 작품은 관용, 이민, 사상과 양심의 자유, 유럽주의 정신을 상징하며, 2016년에는 한국 고대도에 축소 제작되어 설치되기도 했다. 고대도 설치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1832년 고대도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도시의 기억, 베를린
일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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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 Urbana Berlin Juan Garaizabal. 밤
제목도시 기억 베를린
원어 제목Memoria Urbana Berlin
위치베를린 베들레헴 광장
제작 정보
예술가후안 가라이사발
제작 연도2012년
유형사각 단면 강관 및 LED 조명 시스템
높이30.8미터 (101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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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치와 유지

《도시의 기억 베를린》은 원래 한시적 설치예술로 기획되었으나, 2013년 12월 베를린 시 당국의 결정으로 영구 설치물로 전환되었다. 공공 부지에 영구적으로 설치하기 위한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작품의 유지 보수는 룩스-베들레헴(Lux-Bethlehem)과 Cultural Trust 등 20여 개의 공공 및 민간 기관이 담당한다. 이들은 다양한 자선 활동을 통해 유지 보수 자금을 지원하며, 2014년 10월 미테구 국회 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2.1. 대한민국 고대도 설치

2016년 7월 25일, 후안 가라이사발은 《도시의 기억 베를린》을 약 5m 크기로 축소 제작한 작품을 대한민국 충청남도 보령시 고대도에 설치했다(Memoria Urbana Berlin in Godaedo). 이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1832년 고대도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구동일교회는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도시의 기억 베를린》 제작 비용 전액을 부담했다. 대구동일교회는 베를린 보헤미아 교회가 귀츨라프를 배출한 베를린선교학교를 설립했던 교회이며, 선교와 관용 그리고 교파 간의 상생을 상징하는 교회이기에 21세기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생각하여 가라이사발 작품의 한국 유치를 적극 추진했다. 베를린선교학교는 요하네스 예니케(Johannes Jaenicke) 목사가 1800년 설립한 독일 최초의 선교학교이다.

보령시는 귀츨라프가 고대도 안항에 정박한 역사적 기록들을 바탕으로 안항 근처에 귀츨라프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현재 귀츨라프 기념 공원 안에는 귀츨라프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가라이사발의 《도시의 기억 베를린》도 기념공원 내,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야간에는 LED 조명으로 보헤미아 교회 형태를 밝히고 있는데, 환경친화적인 태양광을 사용하고 있다.

3. 상징적 의미

《도시의 기억 베를린》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이민, 유럽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원형이 된 베들레헴 교회는 18세기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보헤미아 난민들을 위해 건설한 것으로, 종교적 관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후안 가라이스발은 자신을 베를린의 스페인 이민자 중 한 명이라고 선언하며, 베를린에서 자신의 예술적 자유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베를린 어번 메모리"는 보헤미아 이민자,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주민의 용기와 과거 프로이센과 현재 베를린 시민의 관대함과 위대함에 대한 오마주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영웅적인 본질을 현대적인 미학을 통해 기술적인 모험으로 구축했으며, 도시의 긍정적인 과거의 진수를 미래로 투영하는 데 성공했다.

3.1. 베를린 베들레헴 교회

베를린 베들레헴 교회는 1733년에서 1735년 사이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현재 미테 지구)에 건설되었다.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종교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난 체코 난민들을 위해 세운 것으로, 프로이센의 종교적 관용 정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체코 난민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기반 뿐만 아니라 종교적 기반도 마련해 주었다. 그는 특별히 교회의 지붕을 돔 형태로 만들도록 지시했는데, 당시 이 돔 교회는 '멜론 교회'로 불렸다.

베들레헴 교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에 폭격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이후 1963년, 베를린 장벽 건설 과정에서 교회는 철거되었고, 그 부지는 체크포인트 찰리 시설에 포함되었다.

베를린 베들레헴 교회(Rekonstruktion Memoria Urbana 2012)의 조명이 켜진 둥근 지붕
베를린 베들레헴 교회(Rekonstruktion Memoria Urbana 2012)의 조명이 켜진 둥근 지붕

3.2. 칼 귀츨라프와 고대도

칼 귀츨라프는 1832년 고대도에 도착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요하네스 예니케 목사가 1800년에 설립한 독일 최초의 선교학교인 베를린선교학교 출신이다. 대구동일교회는 베를린 보헤미아 교회가 귀츨라프를 배출한 베를린선교학교를 설립했던 교회로, 선교와 관용, 그리고 교파 간의 상생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2016년 7월 25일 교회 설립 60주년 및 <제3회 칼 귀츨라프의 날(2016년 7월 25-26일)>을 기념하여 《도시의 기억 베를린》 제작 비용 전액을 부담하며 가라이사발 작품의 한국 유치를 적극 추진했다.

보령시는 귀츨라프가 고대도 안항에 정박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안항 근처에 귀츨라프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현재 귀츨라프 기념공원에는 귀츨라프 기념비와 가라이사발의 《도시의 기억 베를린》이 바다를 배경으로 설치되어 있다. 야간에는 LED 조명으로 보헤미아 교회 형태를 밝히고 있으며, 환경친화적인 태양광을 사용하고 있다.

4. 후안 가라이사발의 관점

후안 가라이사발은 자신을 베를린의 스페인 이민자 중 한 명으로 여기며, 베를린에서 예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 "베를린 어번 메모리"는 보헤미아 이민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민자들의 용기와 과거 프로이센 및 현재 베를린 시민들의 관용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긍정적인 가치를 현대적인 미학으로 표현하고, 이를 미래로 투영하고자 했다. 보헤미아 교회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매일 밤 빛을 발하며, 그 본래의 가치를 되찾았다.

"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박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과의 접촉을 통해 분명히 도서관이나 문서 보관소를 약탈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 후안 가라이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