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와 마사쓰네
1. 개요
도자와 마사쓰네는 1664년 도자와 가문의 중신인 나라오카 도모키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686년 도자와 마사노부의 양자가 되었고, 1710년 양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어받아 번주가 되었다. 번주 재임 기간 동안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1737년 셋째 아들인 도자와 마사카쓰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그는 1740년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코 사건 관련 일화는 사실과 다르며, 가계는 나라오카 도모키요를 친아버지로, 도자와 마사노부를 양아버지로 두었다.
| 씨명 | 나라오카 씨 → 도자와 씨 |
|---|---|
| 출생 | 간분 4년 5월 4일(1664년5월 29일) |
| 사망 | 겐분 5년 12월 27일(1741년2월 12일) |
| 개명 | 야고로 (유명) → 나라오카 마사쓰네 → 도자와 마사쓰네 |
| 계명 | 겐토쿠인 호잔 조류 |
| 묘소 | 도쿄도미나토구미타의 조린지 즈이운인 |
| 관위 | 종5위 하, 시모쓰케노카미, 가즈사노스케, 나카쓰카사다이후, 야마토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데와국신조번 번주 |
| 아버지 | 나라오카 도모키요 |
| 어머니 | 도자와 기요후사(도자와 간베에 가문)의 딸 |
| 양아버지 | 도자와 마사사다 |
| 자녀 | 마사요시(차남), 마사카쓰(삼남), 마사노부(사남), 쓰네요시(오남), 마사토모(칠남), 마사치카(팔남), 구남, 딸(이타쿠라 가쓰아키라 정실), 그 외 딸 7명 |
| 양자 | 마사시게 |
| 번주 대수 | 3대 |
|---|---|
| 임기 | 1710년 ~ 1737년 |
| 이전 | 도자와 마사노부 |
| 이후 | 도자와 마사요시 |
-
1664년 출생 -
존 밴브루
존 밴브루는 휘그당 지지, 극작가 활동, 건축가 전향, 퀸스 극장 설립, 문장관 임명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영국의 인물이다. -
1664년 출생 -
무스타파 2세
오스만 제국의 제22대 술탄인 무스타파 2세는 대터키 전쟁에 참여했으나 패배 후 제국 영토를 상실했고, 술탄 권위 강화를 시도했으나 에디르네 사건으로 폐위되었다. -
신조번주 -
도자와 마사스케
도자와 마사스케는 신조 번의 7대 번주이며, 형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으나 번 재정난과 덴메이 대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신조번주 -
도자와 마사타다
도자와 마사타다는 에도 시대 신조 번의 6대 번주로, 가로 호조 로쿠에몬에 의해 번정 개혁이 추진되고 번교 메이린도를 창설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동생이 가문을 이었다. -
1741년 사망 -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에서 다수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로 널리 알려져 바로크 및 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말년에 빈곤 속에서 사망 후 20세기에 재평가되었다. -
1741년 사망 -
고륜순희공주
고륜순희공주는 순치제의 서손녀이자 화석공친왕의 서녀로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몽골 귀족 반디의 두 번째 부인이었으나 자녀는 없었고 70세에 사망하였다.
2. 생애
1664년(간분 4년) 5월 4일 도자와 가문의 중신인 나라오카 헤이에몬 도모키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쿄 3년(1686년) 5월 19일, 제2대 번주 마사노부의 양자가 되었고, 조쿄 4년(1687년) 12월에 종오위하, 시모쓰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2월 16일, 양아버지 마사노부가 은거하여 가독을 이었고, 가즈사노스케, 이어서 나카쓰카사노다이후에 서임되었다.
마사노부 사후 표면화된 번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신의 영지 삭감이나 어용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겐분 2년(1737년) 12월 6일, 셋째 아들인 마사카쓰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하여 야마토노카미로 전임되었다.
겐분 5년(1740년) 12월 27일에 사망했다. 향년 77세.
2.1. 출생과 가계
1664년(간분 4년) 5월 4일 마사쓰네는 도자와 가문의 중신인 나라오카 헤이에몬 도모키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쿄 3년 5월 19일, 제2대 번주 마사노부의 양자가 되었고, 조쿄 4년 12월에 종오위하, 시모쓰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마사쓰네의 아버지 도모키요는 마사노부의 생모의 남동생이었고, 어머니 또한 번의 중신인 도자와 기요후사(도자와 마사후사의 아들)의 딸이었기 때문에, 친아들이 잇따라 요절한 마사노부에 의해 양자로 지명되었다. 다만 양자 연을 맺을 때 마사노부의 혈통을 이은 자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엄명받았다.
2.2. 양자 시절
1686년(조쿄 3년) 5월 19일, 마사노부의 양자가 되었다. 양자가 될 때 마사노부의 혈통을 이은 자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엄명받았다. 1687년(조쿄 4년) 12월에 종오위하, 시모쓰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1710년(호에이 7년) 2월 16일 양아버지 마사노부가 은거하였으나, 마사노부는 은거 후에도 마사쓰네가 죽을 때까지 실권을 놓지 않았다.
2.3. 번주 시절
호에이 7년(1710년) 2월 16일, 양아버지 마사노부가 은거하여 가독을 이었다. 이후 가즈사노스케, 나카쓰카사노다이후에 서임되었다.
마사노부는 은거 후에도 실권을 놓지 않았다.
마사노부 사후 표면화된 번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신의 영지를 삭감하거나 어용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2.4. 은거와 사망
1737년 12월 6일, 셋째 아들인 마사카쓰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하여 야마토노카미로 전임되었다. 1740년(겐분 5년) 12월 27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아코 사건 관련 일화
원록 아코 사건 당시 마사쓰네가 아사노 나가노리에게 조언했다는 일화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마사쓰네는 사건 이후에 번주가 되었고, 세자가 막부 향응 역할을 맡는 예는 없었다.
3.1. 사실 관계
아사노 나가노리가 칼부림을 하기 전, 이요 국 오즈 번의 번주 가토 야스쓰네가 닛코 사참, 닛코 도쇼구 법회 때 키라 요시히사에게 받은 괴롭힘을 아사노에게 전하고, 임무를 마칠 때까지 참으라고 타이르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레이코군 어전기』나 『아코 의인록』 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도자와 마사쓰네가 번주가 된 것은 호에이 7년 (1710년)으로, 원록 아코 사건 및 나가노리의 죽음보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가독 전의 세자가 막부의 향응 역할을 맡는 예는 전혀 없었다. 또한 간분 3년(1663년) 닛코 법회 때, 가토 야스쓰네는 불과 3세였으며, 교호 13년(1728년) 법회 시점에서는 이미 사망했다.
4. 가계도
| 구분 | 내용 |
|---|---|
| 부모 | |
| 처 | |
| 자녀 | |
| 양자 |
4.1. 부모
* 친아버지: 나라오카 도모키요
* 친어머니: 도자와 기요후사의 딸
* 양아버지: 도자와 마사노부
4.2. 처
* 엔조인
4.3. 자녀
| 이름 | 비고 |
|---|---|
| 도자와 마사요시 | 차남 |
| 도자와 마사카츠 | 삼남 |
| 도자와 마사노부 | 사남, 생모는 측실 엔조인 |
| 도자와 쓰네노리 | 오남 |
| 도자와 마사토모 | 칠남 |
| 도자와 마사요시 | 팔남 |
| (구남) | |
| 이타쿠라 가쓰아키 정실 | |
| 외 딸 7명 | |
| 양자 | 비고 |
| 도자와 마사나리 | 도리이 시게카츠의 삼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