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칸 터널
1. 개요
도칸 터널은 일본 산인 본선 건설 과정에서 험준한 지형을 통과하기 위해 건설된 철도 터널이다. 1902년 노선 건설 당시 해안 노선과 내륙 우회 노선 사이의 논쟁 끝에 해안 노선이 채택되었고, 도칸 고개 통과를 위해 터널 건설이 시작되었다. 1907년 측량 작업을 시작하여 1912년 12월 열차 운행을 목표로 건설되었으며, 화약 폭발 방식을 사용하고 동쪽 입구의 지하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1918년 홍수 피해를 입어 터널 연장 및 역경사 설치 등의 복구 작업을 거쳤다. 이 외에 구 국도 178호선 터널과 산인 긴키 자동차도 하마사카 도로의 신도칸 터널도 존재한다.
| 이름 | 도칸 터널 |
|---|---|
| 원어 이름 (일본어) | 도칸톤네루 (桃観トンネル) |
| 위치 | 효고현 미카타군 가미정 여부, 신온센정 구다니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노선 | 산인 본선 |
|---|---|
| 상태 | 사용 중 |
| 소유자 | 서일본 여객철도 (JR 서일본) |
| 선로 수 | 1 (단선) |
| 궤간 | 1,067mm |
| 전철화 여부 | 비전철화 |
| 경사 | 15.2퍼밀 |
| 길이 | 1,992m |
|---|---|
| 착공 | 1907년 (메이지 40년) |
| 개통 | 1912년 (메이지 45년) 3월 1일 |
-
긴키 지방의 터널 -
한신 고속도로 32호 신고베 터널
효고현 고베시의 롯코 산지 서부를 종단하는 4,785m 길이의 한신 고속도로 32호 신고베 터널은 아리마 가도의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건설되었고, 현재 고속버스를 포함한 다수의 노선버스가 운행 중이며, 고베 공항 연장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
긴키 지방의 터널 -
이코마 터널
이코마 터널은 일본 나라현과 오사카부를 연결하는 3개의 터널로, 구 이코마 터널은 폐쇄되었고 신 이코마 터널과 제2 신 이코마 터널이 운영 중이며,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건설에 투입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
신온센정 -
안타이지
안타이지는 1921년 오카 소탄에 의해 창건된 조동종 수행학당으로, 사와키 고도와 우치야마 고쇼에 의해 재건되어 좌선 수행 도량으로 부흥했으며, 현재 효고현에서 장기 참선과 좌선 리트릿을 개최하여 수행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
신온센정 -
하마사카역
하마사카역은 효고현 신온센정에 위치한 JR 서일본 산인 본선의 지상역으로, 특급 하마카제 일부가 정차하며 하마사카 온천향 등 주변 관광 명소로의 교통 편의를 제공한다. -
일본의 철도 터널 -
신칸몬 터널
신칸몬 터널은 혼슈와 규슈를 잇는 총연장 18,713m의 산요 신칸센 해저터널로, 1970년 착공되어 1975년 개통되었으며, JR 서일본이 관리 및 운영하고, 터널 중간에는 일본 유일의 1000km 철도 표지판이 있다. -
일본의 철도 터널 -
세이칸 터널
세이칸 터널은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총 연장 53.85km의 해저터널로, 전략적 목표에서 시작되어 도야마루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본격화, 1조 1,000억 엔의 건설비를 들여 1988년 개통되었으며, 현재 홋카이도 신칸센이 운행 중이고 통신 및 송전 통로 역할도 수행한다.
2. 건설 배경
산인 본선 중 요나고역 동쪽 구간은 와다야마역 쪽에서 건설된 산인히가시 선과, 요나고 역 쪽에서 건설된 산인니시 선으로 나뉘어 있었다. 도칸 터널은 산인니시 선 구간 중 가장 늦게 건설된 가스미역 ~ 하마사카역 구간의 공사와 더불어 뚫리게 되었다.
가스미 역 ~ 하마사카 역 구간은 험준한 산지가 바다를 끼고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철도를 건설하기가 어려웠다. 이 구간에 어떻게 철도 노선을 건설하느냐에 대하여 논쟁이 일자, 요나고 출장소장이었던 이시마루 시게요시가 지금의 안을 꺼냈다. 한편, 후쿠치야마 출장소장이었던 모가미 게이지와 교량 기술자 후루카와 세이이치는 내륙으로 우회하자는 안을 주장했다. 내륙으로 철도를 뚫자는 안이 당시의 토목 기술로는 뚫기 어려웠던 장거리 터널이 필요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시마루는 자신의 안이 그러한 문제를 피하면서 최대한 짧은 거리에 두 지역을 잇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가미 쪽은 이시마루의 안에 따른 "다리" 또한 초기 건설이 힘들며, 건설 후에도 위치상 바닷바람이 자주 불어 보수 작업이 까다롭다고 반박했다. 마침내 정부에서는 이시마루의 손을 들어주었다.
가스미 역의 표고는 7m이고, 하마사카 역의 표고는 7.3m로 차이가 적지만, 가스미와 하마사카 사이에는 큰 산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고도의 기복이 심하다. 장대형 터널을 뚫지 않으려면 대신 산의 최대한 높은 곳까지 철도를 끌어올린 후, 그곳에 짧은 터널을 뚫어야만 했다. 이 부근으로는 여러 개의 하천이 남쪽에서 발원하여 동해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강줄기를 따라 산으로 철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도칸 고개 (桃観峠일본어)에서는 고개 동쪽으로는 니시카와 강이 아마루베를 향해 흐르고 서쪽으로는 구도 강이 하마사카를 향해 흐르고 있었는데, 건설 당국은 두 강의 줄기를 이용하여 도칸 고개에서 가능한 한 높은 곳까지 철도를 끌어올린 후, 고개 아래의 표고 80m 지점에 이 "도칸 터널" (길이 1992m)을 뚫는 안을 고려했다. 이와 함께, 아마루베에서 하세가와 강이 이루고 있는 약 300m의 깊은 계곡을 횡단하기 위하여, 아마루베 철교가 세워지게 되었다.
도칸 고개는 지형이 험하여, "이 고개를 넘으면 다리가 저린다" (この峠を越えれば股の痛み甚だしい일본어)라는 옛말에서 딴 "모모우스기 고개" (ももうずき峠일본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철도의 개통 이후 지역 주민들의 주도로 "복숭아를 구경한다"는 의미의 "도칸 고개"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3. 건설 과정
1907년 8월부터 10월까지 측량 작업을 거쳐, 1908년 3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도칸 터널은 동쪽의 표고가 약 80m로, 초입 구간은 수평이지만, 그 뒤로는 15.2m의 급경사가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배수 문제 등을 고려하여 서쪽 입구를 중심으로 굴착 공사가 이루어졌다. 서쪽 현장에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32마력의 공기 압착기를 쓰는 암석 파쇄기를 들여왔다.
반면 동쪽 출구 구간의 공사는 인부들이 손과 도구로 직접 땅을 파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하수가 솟아올랐기 때문에, 근처의 못에 수력 발전기를 설치하여 만든 전력으로 펌프를 가동하여 지하수를 빼냈다. 그러나 입구에서 16체인 (320m)을 판 지점에서, 분당 500갤런 (약 1900L)을 넘는 물이 솟구쳐 물을 빼내는 데에 어려움이 생겨, 공사는 3개월 동안 중지되었다. 그 후, 화력 발전기의 도움을 받아 펌프의 배수 능력을 높여, 공사를 재개했다.
1910년 9월 21일에는 당시 일본의 국유철도망을 관할하는 철도원의 총재였던 고토 신페이가 현장을 찾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12일에 아마베 교량과 함께 시찰)
1911년 2월 11일 터널이 완전히 뚫렸고, 12월에는 마무리 작업까지 모두 끝났다. 그 후 아마루베 철교의 완공에 맞추어, 1912년 3월 1일 열차 운행이 개시되었다. 터널을 뚫는 데는 총 616451.743JPY이 들었다. 개통 이후, 고토 신페이는 서쪽 입구에는 "만방유경"(萬方惟慶, 온 나라가 경하할 것이다), 동쪽 입구에는 "유덕망소" (惟徳罔小, 이 덕은 작지 않다)라는 사자성어를 쓴 편액을 걸었다. 그러나 공사를 하던 중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뒷날 일본 정부는 구타니역 부근의 하치만 신사에 초혼비를 세워 이들을 위로하기로 했다.
4. 홍수 피해와 복구
1918년 산인 본선에 큰 폭우가 내려 선로가 가라앉는 피해가 속출하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 도칸 터널 부근에서는 터널 동쪽 입구 앞을 흐르는 니시카와 강이 범람하였다. 니시카와 강에서 넘친 물이 도칸 터널로 흘러들어가 반대쪽 출구의 구타니 마을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터널에 물이 다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터널을 연장하고 위로 오르는 역경사를 설치하는 공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터널 길이는 1992m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