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여도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동여도지》는 1822년경부터 편찬되어 1834년에 1차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리지이다. 김정호가 편찬한 이 책은 총목과 편목으로 구성되어 각 도별 연혁 등 42개 항목과 각 주현별 30여 개 항목을 수록하고 있으며, 청구도의 시방서 역할을 했다는 견해가 있다. 영남대학교,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려대학교 등에 소장본이 있으며, 평안도 편은 김정호가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지리지 - 대동지지
《대동지지》는 김정호가 《동여도지》와 《여도비지》를 바탕으로 1862년에서 1866년 사이에 편찬한 15책의 지리서로, 65종의 방대한 사료를 인용하여 정확성을 높였으며, 특히 정사 중시의 역사 의식이 반영되었다. - 한국의 지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행, 윤은보, 홍언필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보완하여 편찬한 지리지로, 각 도의 지리, 역사, 인물, 풍속 등을 기록하고 사림파의 성리학적 이념이 반영된 조선 시대의 중요한 사료이며 현대 문화 콘텐츠로도 활용된다. - 조선의 책 -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허준이 편찬하여 1613년에 간행된 조선 시대의 의서로, 조선 의학과 명나라 의학을 통합하고 실용성을 중시하여 당대 의학 지식을 집대성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조선의 책 -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로, 전쟁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 사회상 등이 기록된 7권의 일기이며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동여도지 | |
---|---|
지도 정보 | |
서지 정보 | |
제목 | 동여도지 |
한글 | 동여도지 |
한자 | 東輿圖志 |
가타카나 | 톤요도지 |
히라가나 | 토우요즈시 |
참고 문헌 | |
저자 | 이상태 |
제목 | 한국 고지도 발달사 |
연도 | 1999 |
출판사 | 혜안 |
출판 위치 | 서울 |
쪽 | 185~242 |
2. 제1차 편찬
1822년경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여 1834년 (순조 34년)에 1차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지》 제6책 권11 청주목 연혁조의 "순조 25년에 현을 강호(降號)(※행정 구역 단위를 낮추는 것)하였으나, 34년에 원래대로 되돌렸다"라는 기록을 통해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1] 이 기록은 《동여도지》 주현 연혁조에서 가장 늦은 기록이다. 청구도는 1834년 가을에 제작되었으므로, 《동여도지》는 늦어도 그때까지는 제1차 편찬을 마쳤을 것이다.
김정호는 『동여도지』 권2 '동여도지서'에서 편찬 목적을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지 300여 년이 지나 그 기록이 달라졌음을 들어 동국여지승람의 예에 따라 기록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여러 소장본을 연구한 결과, 평안도편은 김정호가 직접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2]
이후 《동여도지》 제1차 편찬본의 상하좌우 여백에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수정, 보완되었다.[1]
3. 편찬 체제
『동여도지』의 총목은 각 도별로 나뉘어 있으며, 편목은 각 도의 첫머리에서 도세(道勢)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 도의 연혁 등 42개 항목[3]을 수록하고 있다. 각 주현의 편목도 각도의 도세 편목과 비슷하게 연혁 등 30여 개 항목[4]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현의 편목은 청구도 범례 38개 항목과 거의 유사하다. 각 편목의 항목은 『동여도지』를 편찬할 당시의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인용되었으며, 일부 오류가 발견되기는 하나, 동국여지승람의 체계와 흡사하다. 이는 동국여지승람이 『동여도지』의 근거 자료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두 책의 편목 또한 비슷하다.
김정호는 지지(地誌)는 지도의 근원이며 지도에 다 나타내지 못한 것을 기록하고, 주현의 형편에 따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표기하되 그가 제시하는 38개의 항목에 따라 어기지 말고 지도와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3. 1. 소장본
영남대학교,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려대학교 등에 소장본이 있다. 영남대학교 소장본은 20책 중 17책,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은 2권이 현존하며, 이 둘은 중복되지 않아 총 19책이 현존한다. 고려대학교 소장본은 총 15책이며, 평안도 편은 서체가 달라 김정호가 제작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대학교 소장본 제15책은 김정호의 자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1. 1. 영남대학교 소장본
영남대학교 소장본은 가로 11.3cm, 세로 16cm, 총 20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중 제8, 14, 18책 3책이 결본되어 17책만 남아 있다. 책 이름은 17책 중 14책에 "여지(輿地)"라고 쓰여 있으며, 3책에는 "대동여지통고(大東輿地通考)"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권2의 서문과 본문의 권 표시에는 책 이름이 "동여도지(東輿圖志)"로 되어 있다. 권차는 권1부터 권37까지 매겨져 있으며, 함경도까지 있는데 평안도 편은 결본되었다. 제17책은 김정호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1]
3. 1. 2.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은 2권이 현존한다. 영남대학교 소장본과 체재는 같지만, 중복되지 않으므로 현재 총 19책이 현존한다.[1]
4. 《동여도지》와 《청구도》
《동여도지》와 《청구도》의 관계는 학계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청구도》가 《동여도지》의 부도적 성격을 지녔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두 자료의 편찬 순서 및 관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1]
《동여도지》는 1822년경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여 1834년에 1차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지》 제6책 권11 청주목 연혁조에는 순조 25년에 현을 강호하였다가 34년에 다시 복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동여도지》 주현 연혁조에서 가장 늦은 기록이다. 《청구도》는 1834년 가을에 제작되었으므로, 《동여도지》는 늦어도 그때까지는 1차 편찬을 마쳤을 것이다. 이후 《동여도지》 1차 편찬본의 여백에 내용이 추가되었다.
김정호는 《동여도지》 권2 〈동여도지서〉에서 《동여도지》의 편찬 목적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지 300여 년이 지나 기록이 달라졌음을 들어 《동국여지승람》의 예에 따라 기록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여러 소장본을 연구한 결과, 평안도 편은 김정호가 작성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2]
《동여도지》의 총목은 각 도별로 나뉘어 있으며, 편목은 각 도의 첫머리에서 도세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 도의 연혁을 비롯한 42개 항목[3]을 수록하고 있다. 각 주현의 편목도 각도의 도세 편목과 비슷하게 연혁을 비롯한 30여 개 항목[4]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현의 편목은 《청구도》 범례의 38개 항목과 거의 비슷하다. 각 편목의 항목은 《동여도지》 편찬 당시의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인용되었으며, 《동국여지승람》의 체계와 흡사하다. 이는 《동국여지승람》이 《동여도지》의 근거 자료임을 보여주며, 두 책의 편목도 비슷하다.
김정호는 지지는 지도의 근원이며, 지도에 다 나타내지 못한 것을 기록하고, 주현의 형편에 따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표기하되 그가 제시하는 38개의 항목에 따라 어기지 말고 지도와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4. 1. 동여도지가 청구도의 시방서 역할을 했다는 견해
청구도와 《동여도지》 두 자료에 실린 편목은 그 수와 항목이 거의 같다. 《동여도지》 제1차 편찬 이후 바뀐 행정 체제 변화가 청구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지지를 만든 뒤 바로 지도가 제작되었음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동여도지》의 편목에 나타난 수치는 간략화되어 청구도에 실려 있다. 예컨대 함경도 부령(富寧)의 곡부(穀賦) 조에서 《동여도지》에는 73,138석, 청구도에는 73,100석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지도에는 자세히 적을 수 없었기 때문에 100자리 아래에서 버림한 값을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1]참조
[1]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2]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3]
문서
연혁, 분도(分道), 진관(鎭管), 관원(官員), 고읍, 방면(坊面), 명산, 영로(嶺路), 대천(大川), 도서(島嶼), 강역, 형승(形勝), 풍속, 영진(營鎭), 성지(城池), 관방(關防), 해방(海防), 진보(鎭堡), 호구, 전부(田賦), 군병, 역도(驛道), 도리(道里), 창고, 곡총(穀總), 토산(土産), 장시, 발참(發站), 봉수, 진도(津渡), 목장, 봉산(封山), 제언(堤堰), 누정, 능묘, 사원(祠院), 사찰 등.
[4]
문서
연혁, 고읍, 산류(山類), 수류(水類), 강역, 형승, 호구, 전부, 영진, 성곽, 군병, 창고, 곡부(穀簿), 봉수, 역참, 원점(院店), 진도(津渡), 교량, 목장, 토산, 장시, 궁실, 누정, 능묘, 단유, 묘전, 전고 등.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