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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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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지털 리서치는 1972년 게리 킬달에 의해 설립된 회사로,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용 디스크 운영체제인 CP/M을 개발했다. CP/M은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시대의 사실상 표준 운영체제가 되었으며, 이후 IBM과의 계약 실패와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등장으로 경쟁 구도에 놓였다. 디지털 리서치는 MS-DOS에 대항하여 CP/M-86과 DR-DOS를 개발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견제와 시장 경쟁에서 밀려 노벨에 매각되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다양한 운영체제 제품군, 프로그래밍 언어, 그래픽 환경 매니저(GEM) 등을 개발했으며, 게리 킬달, 고든 유뱅크스, 톰 롤랜더 등 주요 인물들이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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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서치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회사 이름Digital Research, Inc.
로고
유형비상장 기업
산업소프트웨어
설립1974년 미국캘리포니아주퍼시픽 그로브
설립자게리 킬달
본사 위치캘리포니아주퍼시픽 그로브
캘리포니아주몬터레이
주요 인물게리 킬달 (CEO)
도로시 맥이웬 킬달
고든 유뱅크스
톰 롤랜더
캐서린 스트루틴스키
에드 맥크라켄
제품컴파일러
운영 체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직원 수2명 (1976년)
9명 (1978년 11월)
24명 (1980년 8월)
약 82–100명 (1981년)
약 200명 (1982년 여름)
약 280명 (1982년)
530명 (1983년)
약 500명 (1984년)
약 300명 (1985년)
240명 (1986년)
273명 (1990년)
290명 (1991년)
수익4500만 미국 달러 (1983년)
3620만 미국 달러 (1989년)
4090만 미국 달러 (1990년)
4550만 미국 달러 (1991년)
해체1991년 노벨에 인수 합병
공식 웹사이트Digital Research
Digital Research의 원래 본사
캘리포니아주퍼시픽 그로브, 801 Lighthouse Ave에 위치한 Digital Research의 원래 본사. 왼쪽 보도에는 기념 명판이 있음.

2. 디지털 리서치의 설립과 CP/M 개발

1972년 미국 해군대학원 강사였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개인 사업체인 마이크로컴퓨터 애플리케이션 어소시에이츠(MAA)를 통해 인텔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5] 이 경험을 바탕으로 킬달은 1974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디스크 운영체제CP/M(Control Program/Monitor)을 개발했다.

같은 해인 1974년, 킬달은 아내와 함께 사업 부분을 담당하며 '인터갤럭틱 디지털 리서치'(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용 운영체제 개발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5] 회사는 곧 약칭인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DRI)로 운영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개발한 CP/M은 인텔 8080자일로그 Z80 기반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서 빠르게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킬달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5]

2. 1. 게리 킬달과 인텔

1972년 미국 해군대학원의 강사였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마이크로컴퓨터 애플리케이션 어소시에이츠(Microcomputer Applications Associates, MAA)라는 개인 사업체를 통해 인텔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5] 이 시기 인텔과의 협력은 훗날 마이크로컴퓨터용 초기 디스크 운영체제CP/M(Control Program/Monitor)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 2. CP/M의 탄생과 디지털 리서치 설립

1972년 미국 해군대학원 강사였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마이크로컴퓨터 애플리케이션 어소시에이츠(Microcomputer Applications Associates, MAA)라는 사업체 이름으로 인텔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5] 그는 1974년까지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디스크 운영체제CP/M(Control Program/Monitor)을 개발했다.

1974년 킬달은 아내가 사업 부분을 담당하며 '''인터갤럭틱 디지털 리서치'''(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용 운영체제 개발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5] 회사는 곧 약칭인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DRI)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CP/M은 출시 이후 인텔 8080자일로그 Z80 기반 마이크로컴퓨터의 사실상의 표준 운영체제가 되었다.

CP/M은 1974년 12월에 개발되었으며, 초기 명칭은 'Control Program/Monitor'(제어 프로그램/모니터)를 의미했다. 1976년 11월 15일에 "CP/M" 상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s'(마이크로컴퓨터 제어 프로그램)의 약자로 변경되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1977년 11월 25일에 정식으로 법인 등기되었다. 이는 킬달 개인 프로젝트에서 본격적인 사업체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회사는 PL/M 컴파일러를 인텔과의 계약으로 개발하는 등 기반을 다졌다. 킬달은 "마이크로컴퓨터"라는 용어를 통해 디지털 리서치의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확립하고자 했으며, 초기에는 외부적으로 디지털 리서치 코퍼레이션(Digital Research Corporation)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이후 정식 명칭인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Inc.)를 사용하게 되었다.

2. 3. 초기 CP/M의 성공과 브랜드 이미지 구축

CP/M (Control Program/Monitor)은 1974년 개리 키들달에 의해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디스크 운영체제로 개발되었다. 이후 CP/M은 8080/Z80 기반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며 당시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리서치의 제품군에는 원본 8비트 CP/M과 CP/M의 다양한 파생 제품인 MP/M (1979) (CP/M의 멀티태스킹, 멀티유저 버전) 등이 포함되었다.

1974년 킬달은 아내와 함께 사업 부분을 담당하며 회사를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라는 이름으로 법인화했으나, 곧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라는 약칭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CP/M은 1974년 12월에 처음 등장했으며, 초기에는 'Control Program/Monitor'(제어 프로그램/모니터)를 의미했다. 그러나 1976년 11월 15일, 회사는 'CP/M'을 상표로 등록하면서 그 의미를 '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s'(마이크로컴퓨터 제어 프로그램)로 변경했다. 이는 미국 상표 등록 1112646번으로 기록되어 있다.

회사는 1977년 11월 25일에 공식적으로 등기되었으며, 이는 킬달 개인의 프로젝트에서 본격적인 사업체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킬달은 인텔과의 계약을 통해 PL/M 컴파일러를 개발하는 등 회사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CP/M과 PL/M 모두에서 "Microcomputer"라는 단어를 핵심 브랜드 이미지로 삼고자 노력했다. 이는 마치 IBM마이크로소프트가 "퍼스널 컴퓨터"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브랜드와 성공적으로 연결시킨 것과 유사한 전략이었다. 킬달은 '마이크로컴퓨터' 하면 디지털 리서치가 떠오르도록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킬달은 초기에 공식 사명인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 Inc.'를 외부에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 '디지털 리서치 코퍼레이션(Digital Research Corporation)'이라는 명칭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이후 정식으로 사명을 'Digital Research, Inc.'로 변경한 뒤에도 1980년대까지는 '디지털 리서치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을 대외적으로 사용하다가, 점차 'Digital Research, Inc.'를 사용하게 되었다.

3. IBM과의 계약 실패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상

게리 킬달이 설립한 디지털 리서치는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초기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CP/M은 당시 사실상 표준 운영체제로 여겨졌으며, 디지털 리서치는 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5]

그러나 1980년, IBM이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PC)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디지털 리서치에 운영체제 공급을 제안했을 때, 디지털 리서치는 이 기회를 잡지 못했다. IBM은 인텔 8088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PC에 맞는 CP/M 버전을 요청했으나,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 등으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는 디지털 리서치에게 치명적인 실수였으며, 회사의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생긴 공백을 빌 게이츠가 이끄는 신생 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파고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로부터 CP/M과 유사한 86-DOS라는 운영체제의 권리를 사들여 PC DOS를 개발했고, 이를 IBM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1981년 IBM PC가 출시되면서 PC DOS(이후 MS-DO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짐)는 빠르게 시장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발판 삼아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가 게리 킬달의 CP/M을 상당 부분 모방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IBM과의 계약 실패는 디지털 리서치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회사는 이후 CP/M-86, DR DOS 등을 출시하며 MS-DOS에 대항하려 했지만, 이미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뒤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적인 시장 전략과 경쟁 속에서 디지털 리서치는 점차 영향력을 잃었고, 결국 1991년 노벨에 인수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사건은 기술력만으로는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으며, 사업적 판단과 기회 포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3. 1. IBM PC 운영체제 제안과 거절

IBM PC가 개발될 당시, 디지털 리서치의 CP/M 운영체제는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1980년, IBM은 디지털 리서치에 인텔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용 CP/M 버전을 개발하여 IBM PC의 표준 운영체제로 공급해 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IBM PC는 8086과 코드 호환이 가능한 인텔 8088 칩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리서치는 IBM과의 계약 조건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려로 인해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 결정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ASIC과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와 함께 운영체제 공급 계약을 IBM과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eattle Computer Products)의 팀 패터슨이 개발한 CP/M 호환 운영체제인 86-DOS를 인수하여 이를 기반으로 PC DOS를 만들었다. 1981년 말 IBM PC가 출시되었을 때, 운영체제는 바로 이 PC DOS였다. 1982년 중반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운영체제를 MS-DOS라는 이름으로 IBM 외의 다른 컴퓨터 제조사에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소프트웨어 산업의 선두 주자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PBS 시리즈 ''Triumph of the Nerds''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의 관점에서, 그리고 ''The Computer Chronicles''에서 디지털 리서치 창립자 게리 키들의 친구와 동료들의 관점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다.

디지털 리서치는 뒤늦게 CP/M-86을 개발하여 1982년 IBM을 통해 출시하며 MS-DOS에 대항하려 했다. 이후 MS-DOS와 호환되면서 더 많은 기능을 갖춘 DR DOS를 개발했지만, 이는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를 더욱 개선하도록 자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MS-DOS와 DR DOS 간의 경쟁은 마이크로컴퓨터 역사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MS-DOS를 모든 시스템에 탑재하는 조건으로 유리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제조사들은 다른 운영체제를 탑재한 시스템을 판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리해졌고, 이러한 관행은 결국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아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위 "프로세서당 라이선스"를 금지하는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R DOS의 판매를 견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90년에는 MS-DOS 5.0 출시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DR-DOS 5의 판매를 위축시키려 했고, 자사의 Microsoft Word와 같은 프로그램이 DR-DOS 환경에서 실행될 경우 이를 감지하여 실행을 중단시키는 코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노벨에 인수되었다. 이후 노벨로부터 DR DOS 및 CP/M-86 관련 권리를 인수한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칼데라에 1.5억달러를 지불하며 합의했다.

3. 2. 마이크로소프트 MS-DOS의 등장과 시장 장악

IBM PC 개발 당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은 시장을 지배하는 운영 체제였다. 1980년, IBM은 디지털 리서치에 인텔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용 CP/M 버전을 IBM PC의 표준 운영 체제로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IBM PC는 8086과 호환되는 인텔 8088 칩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리서치는 IBM과의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 기회를 포착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ASIC과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와 함께 운영 체제를 IBM에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운영 체제가 없었기에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의 팀 패터슨이 개발한 CP/M 호환 운영 체제인 86-DOS의 권리를 사들였다. 86-DOS는 CP/M이 8086용으로 이식되지 않는 상황에 대응하여 개발된 것이었다.

1981년 말 IBM PC가 출시되었을 때, 운영 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86-DOS를 기반으로 개발한 PC DOS였다. 이는 사실상 MS-DOSOEM 버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82년 중반부터 IBM PC 외의 호환 컴퓨터 제조사에도 MS-DOS라는 이름으로 이 운영 체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적인 계약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숨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게리 킬달의 CP/M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여 MS-DOS를 만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 과정은 PBS 다큐멘터리 시리즈 ''Triumph of the Nerds''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의 시각에서, ''The Computer Chronicles''에서는 게리 킬달의 친구와 동료들의 시각에서 상세히 다루어졌다.

MS-DOS가 시장을 장악해나가자, 디지털 리서치는 CP/M-86을 개발하여 1982년 IBM을 통해 출시하며 MS-DOS에 대항하려 했다. 이후 DR DOS와 같은 MS-DOS 호환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도 했으나, 이미 시장의 주도권은 마이크로소프트로 넘어간 상태였다.

MS-DOS와 DR DOS 간의 경쟁은 마이크로컴퓨터 역사상 논란이 많은 부분 중 하나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MS-DOS를 모든 시스템에 탑재하는 조건으로 유리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제조사들이 다른 운영 체제를 탑재한 시스템을 판매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프로세서당 라이선스' 관행은 결국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고, 1994년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Microsoft Word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이 DR DOS 환경에서 실행될 경우 이를 감지하여 강제로 종료시키는 코드를 삽입하는 등 경쟁을 저해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4. MS-DOS와의 경쟁과 디지털 리서치의 쇠퇴

CP/M으로 초기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했던 디지털 리서치는 1980년 IBM과의 IBM PC용 운영체제 공급 계약 기회를 놓치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IBM은 당시 업계 표준이던 CP/M의 16비트 버전(CP/M-86)을 원했지만,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 기회를 포착한 마이크로소프트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로부터 86-DOS를 인수하여 PC DOS(후에 MS-DOS로 판매)로 개량하고 IBM PC의 표준 운영체제로 공급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5]

디지털 리서치는 뒤늦게 CP/M-86을 출시하고, 이후 멀티태스킹 기능 등을 추가한 운영체제와 MS-DOS 호환성을 높인 DR DOS 등을 내놓으며 경쟁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매출 4500만달러를 기록하며 여전히 시장에서 영향력을 보였으나, 점차 MS-DOS의 공세에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공격적인 라이선스 정책, 마케팅 전략, 기술적 견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특히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MS-DOS를 사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라이선스 계약은 디지털 리서치와 같은 경쟁사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으며, 이는 훗날 미국 법무부로부터 반독점 조사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응용 프로그램이 DR-DOS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거나, 경쟁 제품 출시 시점에 맞춰 자사 차기 버전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리서치를 압박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경영난에 직면했으며, 1991년 노벨에 인수되면서 사실상 운영체제 시장에서 퇴장하게 되었다. 한때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을 선도했던 기업이 거대 기업의 공세 속에 밀려난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후 칼데라가 노벨로부터 DR-DOS 사업부를 인수하여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1.5억달러를 지불하며 합의했다.

4. 1. CP/M-86과 DR-DOS 개발

IBM PC 개발 당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은 시장을 지배하는 운영 체제였다. 1980년, IBM은 디지털 리서치에 인텔 8086용 CP/M 버전을 IBM PC의 표준 운영 체제로 탑재할 것을 제안했다. IBM PC는 8086과 호환되는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리서치는 IBM이 제시한 계약 조건에 부담을 느껴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BASIC과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와 함께 운영 체제를 IBM에 제공하기로 했다. 1981년 말 IBM PC가 출시되었을 때, 운영 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PC DOS였다. 이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eattle Computer Products)의 팀 패터슨이 개발한 86-DOS에 기반한 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용으로 이 운영 체제를 인수했다. 1982년 중반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라는 이름으로 IBM 외의 다른 컴퓨터 제조사에도 이 운영 체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소프트웨어 업계의 선두 주자로 만들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이에 대응하여 MS-DOS와 직접 경쟁하기 위해 CP/M-86을 개발했다. CP/M-86은 최초의 16비트 컴퓨팅 시스템용 운영 체제 중 하나로, 1982년 초 IBM을 통해 IBM PC용으로 제공되었다. 이어서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MP/M-86(1981)과 Concurrent CP/M(1982)을 출시했다. Concurrent CP/M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가상의 콘솔에서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단일 사용자 버전이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여전히 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1983년에는 45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마이크로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 중 4위를 차지했다. Concurrent CP/M의 후속 버전들은 점차 MS-DOS API 에뮬레이션(1983년부터)과 FAT 파일 시스템 지원을 추가하며 Concurrent DOS(1984), Concurrent PC DOS(1984) 등으로 발전했다. 1985년에는 80286 기반 IBM PC/AT 출시에 맞춰 실시간 운영 체제인 Concurrent DOS 286을 선보였다.

1988년, 디지털 리서치는 MS-DOS 및 PC DOS를 직접 대체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이고 추가 기능을 갖춘 DR DOS를 출시했다. DR-DOS는 기존 CP/M 애플리케이션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MS-DOS와의 호환성에 집중했으며, 자체적으로 성공적인 제품 라인을 구축했다.

하지만 MS-DOS와 DR-DOS 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MS-DOS를 사전 설치하는 조건으로 유리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제조업체들은 MS-DOS가 설치되지 않은 시스템에 대해서도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DR-DOS와 같은 다른 운영 체제를 탑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관행은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고, 1994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위 "프로세서당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것을 금지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Microsoft Word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이 DR-DOS 환경에서 실행될 경우 이를 감지하고 실행을 중단시키는 코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여 경쟁을 주도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 5.0 출시를 대대적으로 예고하며 DR-DOS 5의 판매를 견제했다. 1년 후 실제 출시된 MS-DOS 5.0은 광고했던 일부 기능이 빠져 있었고 DR-DOS 5보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었다. 디지털 리서치가 DR-DOS 6을 출시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 MS-DOS 6.0 출시 예고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마케팅 경쟁에서 오는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91년 노벨에 회사를 매각했다. 1991년 ''Computer Reseller News''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디지털 리서치를 "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체제의 복제품을 만드는 회사"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노벨로부터 DR-DOS 사업부를 인수한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칼데라에 1.5억달러를 지불하며 합의했다.

4. 2. 마이크로소프트의 견제와 AARD 코드

MS-DOSDR-DOS 간의 경쟁은 마이크로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 중 하나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운영체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모든 컴퓨터 시스템에 MS-DOS를 함께 판매하기로 약속한 제조업체에게 더 유리한 라이선스 조건을 제공했다. 이로 인해 제조업체들은 설령 다른 운영체제를 탑재하더라도 해당 시스템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불해야 했으므로, DR-DOS 같은 경쟁 운영체제를 채택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프로세서별 라이선스' 관행은 결국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고, 1994년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Microsoft Word와 같은 응용 소프트웨어가 DR-DOS 환경에서 실행되는 것을 감지하면 의도적으로 실행을 중단시키는 코드를 삽입하기도 했다. 이는 DR-DOS와의 호환성 문제를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사용자들이 MS-DOS를 선호하게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위 '베이퍼웨어'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1990년, 디지털 리서치가 DR-DOS 5를 출시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곧 MS-DOS 5.0이 출시될 것이라고 예고하며 DR-DOS 5의 판매를 견제했다. 그러나 1년 뒤 실제로 출시된 MS-DOS 5.0은 광고했던 기능 중 일부가 누락되었으며, 당시 DR-DOS 5보다 성능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리서치가 다시 DR-DOS 6을 출시했을 때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즉시 MS-DOS 6.0 출시를 예고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 속에서 디지털 리서치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결국 노벨에 인수되었다. 1991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 빌 게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의 복제품이나 만드는 회사"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DR-DOSCP/M-86 관련 권리를 인수한 칼데라 사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불공정 경쟁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칼데라 측에 1.5억달러를 지불하며 합의에 이르렀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4. 3. 노벨에 인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3.1의 한 베타 버전에 AARD 코드라고 불리는 숨겨진 코드를 포함시켜 DR DOS 사용 시 의도적으로 오류 메시지가 나타나도록 했다. 또한 Microsoft Word와 같은 자사의 주요 응용 프로그램이 DR-DOS 환경에서는 실행되지 않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개발 중이던 MS-DOS 5.0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경쟁 제품인 DR-DOS 5의 판매를 견제했다. 그러나 1년 후 실제로 출시된 MS-DOS 5.0은 광고했던 일부 기능이 구현되지 않았으며, 성능 면에서도 DR-DOS 5보다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리서치가 이에 대응하여 DR-DOS 6을 출시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 MS-DOS 6.0 출시를 예고하는 광고 공세를 펼쳤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한 마케팅 공세와 기술적 견제를 이겨내지 못한 디지털 리서치는 경영난에 부딪혔고, 1991년 노벨에 모든 권리와 함께 매각되었다. 이는 한때 운영체제 시장을 선도했던 디지털 리서치가 MS-DOS의 그늘 아래 비주류 개발사로 전락한 끝에 맞이한 결과였다. 인수 직전인 1991년, 디지털 리서치는 멀티유저 DOS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시장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1991년 ''Computer Reseller News''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 빌 게이츠는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복제품을 만드는 존재일 뿐"이라며 경쟁사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후 노벨로부터 사업 부문을 인수한 칼데라는 DR-DOS 및 CP/M-86과 관련하여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칼데라 측에 1.5억달러를 지불하며 합의했다.

5. 디지털 리서치의 기타 제품 및 기술

디지털 리서치는 CP/M 운영체제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후 다양한 운영체제 제품군, 여러 프로그래밍 언어와 개발 도구, 그리고 GUI 기술인 GEM 등을 개발하며 기술 영역을 확장했다.

5. 1. 다양한 운영체제 제품군

디지털 리서치는 CP/M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운영체제 제품군을 개발하며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

초기 CP/M8080/Z80 기반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환경의 표준 운영체제로 자리 잡았다. 이를 기반으로 1979년에는 멀티태스킹과 다중 사용자 환경을 지원하는 MP/M을 출시하여 운영체제의 기능을 확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DOS를 출시하며 16비트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입하자, 디지털 리서치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16비트 프로세서용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1981년에는 인텔 8086/8088 기반 시스템을 위한 CP/M-86을 출시했으며, 이는 1982년 초 IBM PC의 운영체제 옵션 중 하나로 제공되었다. 또한, 16비트 환경을 위한 멀티태스킹 운영체제인 MP/M-86 (1981)도 선보였다.

1982년에는 단일 사용자 환경에서도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가상 콘솔을 통해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Concurrent CP/M을 출시하여 멀티태스킹 기술을 개인 사용자에게 제공했다. 이 운영체제는 이후 MS-DOS와의 호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MS-DOS API 에뮬레이션 기능과 FAT 파일 시스템 지원이 추가되면서 1984년 Concurrent DOS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IBM PC 호환 기종을 위한 Concurrent PC DOS 버전도 같은 해에 출시되었다.

80286 프로세서가 탑재된 IBM PC/AT가 등장한 1985년에는 실시간 운영체제인 Concurrent DOS 286을 출시했다. Concurrent DOS 제품군은 이후 확장 메모리를 지원하는 Concurrent DOS XM (1986)과 32비트 환경을 지원하는 Concurrent DOS 386 (1987)으로 이어졌다.

또한, 컨커런트 PC DOS를 기반으로 한 모듈형 실시간 운영체제인 FlexOS (1986)도 개발되었다. FlexOS는 향상된 메모리 관리 능력과 유연한 멀티태스킹 환경을 제공하여, 특히 판매 시점 정보 관리(POS) 시스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단일 사용자를 위한 운영체제로 DOS Plus (1985)와 DR DOS (1988)가 출시되었다. 특히 DR DOS는 MS-DOS 및 PC DOS와의 높은 호환성을 가지면서도 메모리 관리 등 여러 고급 기능을 제공하는 대체 운영체제로 주목받으며 독자적인 제품 라인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CP/M 애플리케이션 실행 기능 대신 DOS 호환 내부 구조를 채택했다.

5. 2. 프로그래밍 언어 및 개발 도구

디지털 리서치는 자사의 운영체제에서 지원하는 플랫폼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를 개발했다. 여기에는 C, 파스칼, COBOL, FORTRAN, PL/I, PL/M, CBASIC, BASIC, 로고 등이 포함되었다.

1983년 5월, 디지털 리서치는 자사의 모든 언어와 유틸리티를 PC DOS 버전으로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5. 3. 그래픽 환경 매니저(GEM)

1985년의 그래픽스 환경 매니저(GEM)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1985년, 디지털 리서치는 GKS(Graphics Kernel System) 그래픽 표준을 기반으로 마이크로컴퓨터용 GSX(Graphics System Extension)를 개발했다. 이후 GSX를 기반으로 GEM(Graphics Environment Manager)이라는 GUI를 선보였다.

GEM은 초기 GUI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GSX 기반의 DR DRAW나 GEM용 소규모 프로그램 같은 관련 응용 프로그램도 있었다. GEM이 개발된 후, 마이크로소프트윈도우 1.0을 발표하며 GUI 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6. 디지털 리서치의 주요 인물

디지털 리서치에는 창립자인 게리 킬달 외에도 IT 산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여러 인물들이 근무했다.[5]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게리 킬달
  • 캐서린 스트루친스키
  • 고든 유뱅크스
  • 톰 롤랜더
  • 에드워드 R. 매크라켄

6. 1. 게리 킬달 (Gary Kildall)

1972년 미국 해군대학원 강사였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마이크로컴퓨터 애플리케이션 어소시에이츠(Microcomputer Applications Associates, MAA)라는 이름으로 컨설팅 업무를 하며 인텔과 협력하기 시작했다.[5]

킬달은 1974년 12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운영체제CP/M(Control Program/Monitor)을 개발했다.[5] 이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는 BIOS(Basic Input/Output System) 개념을 활용한 중요한 성과였다. 초기에 CP/M은 'Control Program/Monitor'를 의미했으나, 1976년 11월 15일 상표 등록 시 '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s'의 약자로 정의되었다. 킬달은 같은 해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1977년 11월 25일 이를 공식적으로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Inc., DRI)로 법인 등기했다.[5] 킬달은 '마이크로컴퓨터'라는 용어를 디지털 리서치의 브랜드와 강력하게 연결시키려 노력했으며, 이는 IBM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용 컴퓨터'라는 용어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것과 유사한 전략이었다. 회사명을 정식으로 Digital Research, Inc.로 변경한 후에도 한동안 대외적으로는 디지털 리서치 코퍼레이션(Digital Research Corporation)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CP/M은 초기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사실상의 표준 운영체제로 자리 잡았고, 킬달에게 상당한 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1980년, IBM은 자사의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에 탑재할 운영체제 공급 계약을 위해 디지털 리서치에 접촉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 기회를 포착한 마이크로소프트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로부터 QDOS를 구매하여 수정한 뒤 MS-DOS라는 이름으로 IBM에 제공했다. MS-DOS는 CP/M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었으며[5], 이 계약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강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디지털 리서치는 MS-DOS 및 윈도우와의 경쟁에서 점차 밀려났고, 결국 1991년 노벨에 인수되었다.[5] 킬달은 마이크로컴퓨터 운영체제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83년에는 극동 지역 시장 공략을 위해 일본 법인인 (주)디지털 리서치 재팬을 설립하기도 했다.

6. 2. 고든 유뱅크스 (Gordon Eubanks)

고든 유뱅크스(Gordon Eubanks)는 디지털 리서치에서 근무하며 CBASIC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후 시만텍(Symantec)을 설립하여 노턴 유틸리티(Norton Utilities) 등 유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IT 산업에 기여했다.

6. 3. 톰 롤랜더 (Tom Rolander)

디지털 리서치에서 근무한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FlexOS 개발에 참여했으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겨 Windows NT 개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7. 디지털 리서치가 한국에 미친 영향

디지털 리서치가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나 시장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디지털 리서치의 대표적인 운영체제인 CP/M은 초기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기술적 흐름은 한국의 초기 컴퓨터 기술 도입 및 발전 과정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IBM PC 호환 기종과 MS-DOS가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7. 1. 한국 IT 산업 초기의 간접적인 영향

디지털 리서치는 게리 킬달이 1970년대 초 설립한 회사로[5], 초기 마이크로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킬달은 1974년 CP/M(Control Program/Monitor)이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했는데,[5] 이는 당시 개인용 컴퓨터 환경에서 널리 사용되던 운영체제 중 하나였다. CP/M은 전 세계의 많은 기업과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며 초기 컴퓨터 환경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디지털 리서치는 1980년 IBM과의 운영체제 공급 계약 기회를 놓쳤고, 이 기회는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MS-DOS를 통해 잡게 되었다. 이후 디지털 리서치는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다가 1991년 노벨(Novell)에 인수되었다. CP/M의 초기 성공과 확산은 이후 등장하는 여러 운영체제 및 관련 기술 발전에 간접적인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조

[1] 간행물 DRI adds graphics update https://books.google[...] IDG Publications 1990-03-26
[2] 웹사이트 Novell Founder Noorda Pushes Antitrust Suit Against Microsoft https://www.latimes.[...] 1996-07-25
[3] 서적 ASCII 1983年7月号 株式会社アスキー出版 1983-07-01
[4] 논문 Gary Kildall and the Digital Research Success Story https://books.google[...] Popular Computing 1981-05-25
[5] 논문 Gary Kildall and Collegial Entrepreneurship http://www.digitalre[...] 1997-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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