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커티스
1. 개요
딕 커티스는 1909년 켄터키주 뉴포트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이다. 1926년부터 뉴욕에서 무대 연기를 시작하여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주로 악당 역할을 맡았다. 그는 파이어니어타운 개발에 참여하여 서부극 세트장 조성에 기여했다. 1952년까지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며, 무성 영화 배우 루스 설리번과 결혼했다. 딕 커티스는 49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캘리포니아주 컬버 시티의 홀리 크로스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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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 -
달머스 라수라라
달머스 라수라라는 흑인 착취 영화와 TV 미니시리즈 《뿌리》에서 활약한 미국의 배우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출연했으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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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
폐암으로 죽은 사람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폐암으로 죽은 사람 -
장택상
장택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임시정부 활동,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지지 후 야당 정치인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
1952년 사망 -
지그메 왕축
부탄의 제2대 국왕인 지그메 왕축은 교육 및 인프라 개선, 사법 제도 개혁 등 국내 문제 해결에 힘썼으며 영국령 인도 및 인도와 우호 관계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
1952년 사망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3. 배우 경력
헐리우드에서 잠시 활동한 후, 1926년부터 1930년까지 뉴욕에서 무대 연기를 하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순회 공연을 다녔다.
키가 190.5cm로 큰 편이었던 커티스는 찰스 스타렛부터 쓰리 스투지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우들과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큰 키와 인상 때문에 주로 악당이나 건달 역할을 맡았다.
텔레비전 시리즈 론 레인저와 더 레인지 라이더를 비롯하여, 캘리포니아 골드 러쉬, 스푸크 타운, 진 오트리 쇼 등 다수의 서부극 영화와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쓰리 스투지스와는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었는데, 예스, 위 해브 노 보난자, 유 나치 스파이!, 더 쓰리 트러블두어스 등의 단편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여 익살스러운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래는 그의 주요 출연 작품 목록이다.
3.1. 파이어니어타운 개발 참여
친구이자 배우인 러셀 헤이든의 도움을 받아, 커티스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서부 영화 세트장인 파이어니어타운 개발에 참여했다. 파이어니어타운은 많은 텔레비전 및 영화 서부극 촬영에 활용되었다. 이 개발 프로젝트는 로이 로저스 및 선즈 오브 더 파이어니어스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되었다.
4. 출연 영화 목록
키가 190.5cm인 커티스는 찰스 스타렛에서 쓰리 스투지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악당이나 건달 역할을 맡았다. 주요 출연 영화는 다음과 같다.
5. 사생활
커티스는 무성 영화 배우였던 루스 설리번과 결혼했으며, 그녀는 커티스보다 오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