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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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인하르트 리부다는 독일의 축구 선수로, 윙어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고, 서독 국가대표팀으로 1970년 FIFA 월드컵 3위에 기여했다. FC 샬케 04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1972년 DFB-포칼 우승을 차지했다. 1971년 분데스리가 스캔들에 연루되었으며,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라인하르트 리부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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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의 리부다
출생일1943년 10월 10일
출생지벤들링하우젠, 독일
사망일1996년 8월 25일
사망지겔젠키르헨, 독일
1.75m
포지션공격수
유소년 클럽
연도1954년 이전
클럽로트-바이스 비스마르크
연도1954년–1961년
클럽샬케 04
클럽 경력
연도1961–1965
클럽샬케 04
출장 (골)76 (15)
연도1965–1968
클럽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출장 (골)74 (8)
연도1968–1972
클럽샬케 04
출장 (골)124 (13)
연도1972–1973
클럽스트라스부르
출장 (골)15 (3)
연도1973–1976
클럽샬케 04
출장 (골)15 (0)
총 출장 (골)304 (39)
국가대표 경력
연도1964–1966
국가대표팀서독 U-23
출장 (골)2 (0)
연도1963–1971
국가대표팀서독
출장 (골)26 (3)
메달
스포츠남자 축구
대회FIFA 월드컵
순위3위
대회 정보1970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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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렘고 인근 벤들링하우젠(Wendlinghausen)에서 태어난 리부다는 1961년부터 1976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유명했으며, 주로 FC 샬케 04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중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65-1968)와 프랑스의 RC 스트라스부르(1972-1973)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이던 1966년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리버풀 FC를 상대로 연장전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서독 국가대표팀 선수로는 1963년부터 1971년까지 2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넣었으며,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이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FC 샬케 04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통산 264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1971년 분데스리가 스캔들에 연루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뛰어난 드리블 실력 덕분에 같은 포지션의 영국 유명 선수 스탠리 매튜스의 이름을 딴 "스탠(St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샬케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줍음이 많았던 성격으로 알려진 리부다는 은퇴 후 암 투병을 했으며, 겔젠키르헨에서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2.1. 클럽 경력

리부다는 1961년부터 1976년까지 FC 샬케 04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고, 두 차례 다른 팀에서 활동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었고, 1972년부터 1973년까지는 프랑스의 RC 스트라스부르 소속이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그의 뛰어난 드리블 실력은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66년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는 리버풀 FC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2-1 승리를 확정 짓는 결승골을 넣어 팀 우승을 이끌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FC 샬케 04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총 264경기에 출전하여 28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971년 분데스리가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리부다는 뛰어난 드리블 실력 덕분에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유명 영국 선수 스탠리 매튜스의 이름을 따 "스탠(St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샬케 팬들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칭송하며 "아무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는 당시 독일 복음교회 총회의 슬로건에 "스탠 리부다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덧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2.1.1. 클럽, 시즌, 대회별 출전 및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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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시즌, 대회별 출전 및 득점 기록
클럽시즌리그DFB-포칼베스트팔렌컵(서독 컵)UEFA컵 위너스컵(유럽대항전)총계
디비전출전득점출전득점출전득점출전득점출전득점
샬케 041961-62오베르리가 베스트팔렌003030
1962-63오베르리가 베스트팔렌25811423011
1963-64분데스리가27420294
1964-65분데스리가24330273
총계|15|1|2|1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65-66분데스리가3030091394
1966-67분데스리가2220010232
1967-68분데스리가22311234
총계|8|1|1|10
샬케 041968-69분데스리가32550375
1969-70분데스리가3103273415
1970-71분데스리가31551366
1971-72분데스리가30390393
총계|13|3|3|19
RC 스트라스부르1972-73리그 115300153
샬케 041973-74분데스리가10000100
1974-75분데스리가501060
1975-76분데스리가000000
샬케 04 총계|28|4|2|3|37
통산 총계|39|5|2|4|50

2.2. 국가대표 경력

리부다는 1963년부터 1971년까지 서독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2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는 서독 대표팀이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2.1. 국가대표팀 출전 및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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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별 출전 및 득점 기록
국가대표팀연도출전득점
독일196330
196430
196510
196600
196721
196800
196941
1970111
197120
합계263

3. 분데스리가 스캔들

리부다는 1971년 1971년 분데스리가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4. 은퇴 이후

선수 생활 말년인 1971년에는 분데스리가 스캔달에 연루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암으로 투병했으며, 겔젠키르헨에서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5. 플레이 스타일

리부다는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그는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드리블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 선수 스탠리 매튜스의 이름을 따 Stan영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샬케 팬들은 1960년대 독일 복음교회 총회의 슬로건이었던 "아무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을 "스탠 리부다를 제외하고는"이라고 바꾸어 사용할 정도로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슬로건은 샬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드리블 능력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1966년 UEFA 컵위너스컵 우승과 서독 국가대표팀의 1970년 FIFA 월드컵 3위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유산

리부다는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했고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널리 칭찬받았던 영국의 선수 스탠리 매튜스를 따라 "스탠(Sta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샬케 팬들은 1960년대 독일 복음교회 총회의 슬로건인 "아무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를 "스탠 리부다를 제외하고는"으로 확장하여 사용하며 그를 칭송했다. 이 슬로건은 샬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일부이기도 하다.

7. 수상 경력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UEFA컵 위너스컵: 1965-66

샬케 04
* DFB-포칼: 1971-72

서독
* FIFA 월드컵: 3위 1970

7.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부다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했다. 그의 뛰어난 [[드리블]] 실력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1966년 UEFA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1966년 UEFA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는 리버풀 FC를 상대로 연장전 끝에 2-1 승리를 확정 짓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 UEFA컵 위너스컵: 1965-66

7.2. 샬케 04

리부다는 1961년부터 1976년까지 FC 샬케 04에서 활약했으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65-1968)와 RC 스트라스부르(1972-1973)에서 뛴 기간을 제외하면 선수 경력 대부분을 샬케에서 보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FC 샬케 04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총 264경기에 출전하여 28골을 기록했다.

샬케 04 소속으로 DFB-포칼 1971-72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 중 1971년 분데스리가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인해,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드리블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선수 스탠리 매튜스를 따라 "스탠(Sta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샬케 팬들은 1960년대 독일 복음교회 총회의 슬로건인 "아무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에 "스탠 리부다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말을 덧붙여 그의 뛰어난 기량을 칭송했다. 이 표현은 샬케를 소재로 한 뮤지컬에도 등장한다.

7.3. 서독

리부다는 1963년부터 1971년까지 서독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는 서독 대표팀이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