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스 빈트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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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랄스 빈트호르스트는 독일의 기업가이다. 14세에 회사를 설립하여 젊은 기업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헬무트 콜 전 총리와 함께 아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1993년 빈트호르스트 일렉트로닉스 GmbH를 설립하여 전자 부품을 거래했고, 이후 Sapinda 투자 그룹을 공동 설립하여 여러 기업에 투자했다. 2019년에는 헤르타 BSC의 지분을 매입했으나, 이후 매각했다. 그는 법적 문제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사회 공헌 활동도 펼치고 있다.

랄스 빈트호르스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랄스 빈트호르스트
출생일1976년 11월 22일 (47세)
출생지라덴, 독일
직업사핀다 그룹의 회장이자 파트너 (2019년 테너로 리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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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교육

14세의 빈트호르스트는 지역 문구점 주인의 아들로, 고향인 라덴에 있는 가족 차고를 임시 컴퓨터 연구실로 삼았다. 그는 반 친구들과 함께 PC를 조립하고 아버지 가게에서 판매했으며, 중국에서 부품 공급업체를 찾기도 했다.

1993년,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첫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계약서 서명과 출퇴근 등을 도우며 회사 운영을 지원했다. 빈트호르스트는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젊은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영재'이자 독일의 빌 게이츠로 불렸으며,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연방 총리와 함께 정부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아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방문을 통해 국제적인 사업 관계를 구축했으며,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 최연소 참가자로 기록되었다.

3. 사업 경력

랄스 빈트호르스트는 14세 때 고향인 라덴에 있는 가족 차고를 임시 컴퓨터 연구실로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반 친구들을 동원해 PC를 조립하고 아버지 가게에서 판매했으며, 중국에서 부품 공급업체를 직접 찾기도 했다.

1993년, 아직 학교에 다니던 빈트호르스트는 첫 회사인 빈트호르스트 일렉트로닉스 GmbH를 중국 사업가 밍롱 장과 함께 설립했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계약서 서명과 출퇴근을 도왔다. 이 회사는 주로 아시아에서 전자 부품 및 컴퓨터 부품을 수입하고, 독일과 유럽 전역에 IT 제품을 판매했다. 설립 1년 만에 직원 80명을 고용하고 약 8천만 마르크의 매출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빈트호르스트는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젊은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떠올랐고, "영재", "독일의 빌 게이츠"로 불리며 당시 독일 연방 총리였던 헬무트 콜과 함께 정부 대표단으로 아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방문을 통해 국제적인 사업 관계를 맺었으며,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 최연소 참가자로 이름을 올렸다.

1995년에는 홍콩으로 이주하여 아시아 지역 사업을 위한 지주 회사인 빈트호르스트 아시아 태평양 홀딩 리미티드를 설립했다. 1996년까지 빈트호르스트 그룹은 전자, 산업, 무역, 부동산,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중국 본토와 베트남을 포함한 유럽과 아시아 여러 곳에 사무실을 두었다.

2000년, 빈트호르스트는 인터넷 및 신기술 분야 투자를 목적으로 빈트호르스트 뉴 테크놀로지스 AG를 설립했다. 2002년 프랑크푸르트 증권 거래소 상장을 추진했으나, 닷컴 버블 붕괴로 인한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3년 결국 파산했다.

파산 이후 2004년, 빈트호르스트는 Sapinda 투자 그룹을 공동 설립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Sapinda 그룹은 계열사 Anoa Capital과 협력하여 상장 기업, 사모 기업, 신생 기업 등에 투자했다. 약 5년간 2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으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독일 자회사 Vatas Holding GmbH가 큰 손실을 입었고, 결국 2009년 1월 파산을 신청하게 되었다.

2009년 4월, 사업 활동을 재편하여 암스테르담에 새로운 모회사인 Sapinda Holding BV를 설립했다. 이 그룹은 여러 국가에 사무실을 두고 8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며, 농업 및 식품 가공, 광업/원자재, 석유 및 가스 추출·생산 분야에 주로 투자하고, 미디어, 기술, 부동산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2월에는 명품 브랜드 라 펄라를 인수했다. 독일 시사 주간지 Der Spiegel에 따르면, 빈트호르스트는 칼 하인리히 브룬과 함께 Amatheon Agri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농업 부문에도 진출했다. 빈트호르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Sapinda가 에어 베를린, 인피니언 등에 대한 대출을 포함해 약 3.5 규모의 투자를 조직했다고 밝혔다. Sapinda 그룹의 파트너로는 경영 컨설턴트 롤랜드 버거가 참여했으며, 자문위원회는 스위스 기업 ABB Ltd. 회장인 후베르투스 폰 그륀베르크가 이끌었다.

2019년 5월, Sapinda Holding BV는 회사 이름을 Tennor Holding B.V.로 변경했다.

3.1. 헤르타 BSC 투자 논란

2019년 6월, 분데스리가 축구 클럽 헤르타 BSC의 지분을 매입하며 투자자로 나섰다. 그는 소위 '빅 시티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빈트호르스트는 2019년 이후 헤르타 BSC에 총 374를 투자하여 지분 64.7%를 확보했으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운영 방식으로 논란을 빚었다.

결국 2022년 9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빈트호르스트가 이스라엘의 사설 정보 회사인 시부미 전략(Shibumi Strategy)에 의뢰하여 당시 헤르타 BSC 회장이었던 베르너 게겐바우어(Werner Gegenbauer)를 축출하기 위한 비밀 캠페인을 벌였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빈트호르스트는 결국 자신이 보유했던 헤르타 BSC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4. 법적 문제

빈트호르스트는 2007년 여름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독일 뉴스 잡지 포커스 2007년 9월 3일자 기사에 따르면, 공동 채권자인 울리히 마르세유가 제기한 소송이 8월 독일 연방 대법원에서 기각되면서 빈트호르스트의 부채는 탕감되었다.

2009년, 베를린의 검찰총장은 빈트호르스트를 사기, 배임, 횡령 및 여러 건의 파산 관련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그의 배임 행위는 개인 자금 800를 자신의 다른 계좌로 이체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플리바겐 절차를 통해 검찰은 그가 벌금 1를 납부하고 피해자에게 2.5를 변제하며 배임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사기 혐의를 기각하는 데 합의했고, 그는 1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9년 12월 18일에 시작된 소송에서 이러한 혐의는 중단되었고, 해당 금액은 반환되었다.

2010년, 빈트호르스트는 미국 헤지 펀드인 알키 파트너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알키 파트너스는 그와 다른 사람들이 미국 회사 Remote DX의 주가를 "조작"하기 위한 "사기 행위"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맨해튼 법원에 소송 서류를 제출했다. 이 소송은 그 해 말 기각되었다.

5. 사회 공헌 활동

빈트호르스트는 서펜타인 노스 갤러리의 창립 후원자이며,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이사회 위원이다. 2014년부터 사진 예술 전문 사립 박물관인 베를린의 C/O 갤러리를 후원하고 있다.

빈트호르스트는 1995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국회의사당을 포장하는 프로젝트에 사용된 문서와 물건(비계 등) 일부를 포함한 컬렉션을 구매했다. 2015년 11월, 당시 분데스탁 의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라메르트와 예술가 크리스토는 빈트호르스트가 2035년까지 국회에 기증한 국회의사당 포장 관련 드로잉과 스케치 400점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멘토 재단 이사로 활동했으며, Ein Herz für Kinder독일어 재단과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