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네 오우세만
1. 개요
레네 오우세만은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로, 윙어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데펜소레스 데 벨그라노에서 프로 데뷔 후 우라칸에서 1973년 메트로폴리타노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며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리버 플레이트, 콜로-콜로, 아마줄루 FC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인데펜디엔테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였다. 선수 은퇴 후 우라칸의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으며, 알코올 중독과 설암으로 투병하다 201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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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레네 올란도 오우세만 |
|---|---|
| 출생일 | 1953년 7월 19일 |
| 출생지 | 라 반다, 아르헨티나 |
| 사망일 | 2018년 3월 22일 |
| 사망지 |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신장 | 1.65m |
| 포지션 | 윙어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 선수 경력 | 1971–1973: 데펜소레스 데 벨그라노 (38경기, 16골) 1973–1980: 우라칸 (267경기, 110골) 1981: 리버 플레이트 (12경기, 1골) 1982: 콜로-콜로 (18경기, 3골) 1983: 아마줄루 (경기 수 및 골 정보 없음) 1984: 인데펜디엔테 (3경기, 0골) 1985: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 (1경기, 0골) |
| 총 출장 및 골 | 339경기, 130골 |
| 국가대표팀 | 아르헨티나 |
|---|---|
| 국가대표 연도 | 1973–1979 |
| 국가대표 출장 및 골 | 55경기, 13골 |
| FIFA 월드컵 | 1978 아르헨티나 우승 (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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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출신 -
루이스 갈반
루이스 갈반은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로,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이며, 주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탈예레스 데 코르도바에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출신 -
훌리오 리카르도 크루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 훌리오 리카르도 크루스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에서 뛰었고, 특히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다수의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200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
CA 인데펜디엔테의 축구 선수 -
다니엘 베르토니
다니엘 베르토니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CA 인데펜디엔테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달성하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CA 인데펜디엔테의 축구 선수 -
에스테반 캄비아소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중앙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패스 능력과 수비력을 선보이며 여러 유럽 명문 클럽에서 활약, 트레블 우승을 포함한 다양한 우승 경력을 쌓았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인으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며 에너지, 농업,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변화를 추진했고, 남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 부부가 연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한 최초의 사례를 기록했으며, 2019년에는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재임 중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
스테퍼니 비어트리즈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국 배우 스테퍼니 비어트리즈는 콜롬비아인 아버지와 볼리비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로사 디아즈 형사 역할로 유명하며, 영화, 텔레비전, 연극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다.
2. 클럽 경력
하우스만은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 라 반다에서 태어났다. 세사르 메노티는 하우스만을 마라도나와 가린샤의 혼합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선수 경력 대부분을 CA 우라칸에서 보냈으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통산 269경기에서 122골을 기록했다. 선수 경력 초기에 그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다리들이 당신을 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2.1. 주요 클럽 경력
하우스만은 클루브 아틀레티코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 유소년 팀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의 라이벌 팀인 데펜소레스 데 벨그라노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1971년에 첫 번째 타이틀인 프리메라 C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1973년 초, 세사르 메노티 감독의 추천으로 클루브 아틀레티코 우라칸에 입단했다.
하우스만은 1973년 메트로폴리타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우라칸 팀의 핵심 선수였다. 메노티 감독이 이끌었던 이 팀은 미겔 브린디시, 카를로스 바빙턴 및 오마르 라로사와 같은 유명 선수들과 함께 하우스만이 활약하면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 우라칸을 떠난 하우스만은 리버 플레이트에서 짧은 시간(1981년 단 한 시즌)을 보낸 후 칠레로 이적하여 콜로-콜로에서 뛰었으며, 이후 아마줄루 FC에 합류하여 남아프리카로 이적했다.
1984년 인데펜디엔테에서 뛰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지만 총 3경기만 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스만은 그 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우승한 로스터의 일원이었다.
1985년 자신의 첫 번째 클럽인 엑스쿠르시오니스타스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경기를 치르며 축구 선수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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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네 오우세만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974년 FIFA 월드컵과 197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특히 1978년 월드컵에서는 페루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고,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도 교체 출전하여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기여했다.
3.1. 주요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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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만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3골을 기록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페루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통산 55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기록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1차 리그에서 2골, 2차 리그에서 1골을 기록했다. 1978년 월드컵에서는 2차 리그 최종전 페루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었고,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도 교체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4. 은퇴 후
오우세만은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앙헬 카파가 이끄는 코칭 스태프의 일원으로 우라칸을 관리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5. 개인사
하우스만은 평생 동안 알코올 중독 문제로 고생하여 선수 경력이 일찍 끝났다. 리버 플레이트를 상대로 골을 넣었지만, 그는 그 경기 내내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7년, 하우스만이 설암에 걸린 사실이 밝혀졌다.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는 그의 치료를 돕겠다고 발표했다.
하우스만은 1978년 팀 동료 루벤 갈반의 사망 8일 후인 2018년 3월 22일, 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
6. 수상 내역
레네 오우세만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 뉴턴컵(1975, 1976), 립톤컵(1976), 펠릭스 보가도컵(1976), 라몬 카스티야컵(1976, 1978)에서 우승했다.
6.1. 클럽
데펜소레스 데 벨그라노
* 프리메라 C: 1972
우라칸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73 메트로폴리타노; 준우승: 1975 메트로폴리타노, 1976 메트로폴리타노
콜로-콜로
* 코파 칠레: 1982
인데펜디엔테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84
* 인터컨티넨탈컵: 1984
6.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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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만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뛰었으며,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3골을 기록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페루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우승팀의 일원이었다.
| 대회 | 결과 |
|---|---|
| 1978년 FIFA 월드컵 | 우승 |
| 뉴턴컵 | 1975, 1976 |
| 립톤컵 | 1976 |
| 펠릭스 보가도컵 | 1976 |
| 라몬 카스티야컵 | 1976,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