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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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흘란은 유럽 북부 지역과 관련된 단어로, 특히 아일랜드와 웨일스 문헌에서 스칸디나비아, 노르웨이, 바이킹과 관련된 지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일랜드 연대기에서는 바이킹을 '로흘란스'로 지칭하며, 로흘란 왕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웨일스 문헌에서는 스칸디나비아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으며, 문학 작품에서 포모르족의 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코리브레칸 해협과 관련된 전설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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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흘란 | |
---|---|
지리적 명칭 및 위치 정보 | |
명칭 | 로흘란 |
언어별 명칭 | 게일어: Lochlann ˈl̪ˠɔxl̪ˠan̪ˠ 웨일스어: Llychlyn ˈɬəχlɨn |
관련 용어 | 게일어: Lochlannach ˈl̪ˠɔxl̪ˠən̪ˠəx (로흘란에 속한 자) |
역사적 의미 | |
정의 | 스칸디나비아 또는 그 구성 국가들을 지칭하는 게일어 용어; 문자 그대로 "호수의 땅" |
관련 인물 | 12세기 갤러웨이의 영주 |
개인 이름 | 로흘란(Lochlann)과 로흘라인(Lochlainn) (개인 이름) |
2. 역사적 용례
Lochlannga은 유럽의 북유럽 지역과 관련된 모든 용례에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는 노르웨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일부 학자들은 스코틀랜드의 노르드인이 지배했던 지역, 특히 헤브리디스 제도나 북부 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2] 아일랜드의 역사학자 Donnchadh Ó Corráinga은 Laithlinn이 바이킹 스코틀랜드의 이름이었으며, 9세기 초반에 바이킹이 스코틀랜드 북부와 서부 제도, 케이스네스와 서덜랜드에서 아가일에 이르는 넓은 해안 지역을 정복하고, 9세기 중반 이전에 바이킹 왕국을 세웠다고 주장한다.[3]
2. 1. 아일랜드와 수드레야르 (Suðreyjar)
''아일랜드 단편 연대기''에는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두려워하고 불신했던 바이킹족인 '로흘란스'(Lochlanns)에 대한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신원이 명확히 확인된 경우는 드물며, 이들 사이의 관계도 대부분 불분명하다.
848년, "로흘란 왕의 타니스트(tanist)"로 묘사된 토므라르(Tomrair)가 Sciath Nechtain|스키어 네흐탄gle(현대 캐슬더못 근처) 전투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4]
851년에는 "로흘란스의 반왕"으로 지칭된 자인(Zain)[5]과 "로흘란스 함대의 두 수장" 중 한 명인 이아르그나(Iargna)가 칼링포드 로(Carlingford Lough)에서 데인인과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6] 같은 자료에 따르면, 마엘 세크나일 막 마일 루아나이드(Máel Sechnaill mac Maíl Ruanaid)의 치세 6년인 852년경, "로흘란 왕의 아들"인 아믈라입 코눙(Amlaíb Conung)이 에린(아일랜드)에 와서 아버지의 명으로 많은 세금과 공물을 징수했으나 갑자기 떠났고, 그의 동생 이마르(Ímar)가 뒤따라와 같은 세금을 징수했다고 한다.[7] 아믈라입은 853년 ''얼스터 연대기''에서도 "라이슬린(Laithlinn) 왕의 아들"로 언급된다.[8] 그는 Amlaíb|암라입sga이라는 이름(고대 아일랜드어로 고대 노르드어 이름 Oláfr|올라프non를 표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칸디나비아 출신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871년, 그는 자신을 도우러 온 아버지 고프라이드 오브 로클란(Gofraid of Lochlainn)을 돕기 위해 "에린에서 로흘란으로 가서 로흘란인들과 전쟁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9][10]
연대기 저술가들이 드루이드라고 믿었던 호나(Hona)와 토므리르 토라(Tomrir Torra)는 "두 명의 고귀한 수장", "자신의 백성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고", "로흘란스에서 최고의 혈통" 출신으로 묘사되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은 달리 기록되지 않았다. 그들은 860년 먼스터 사람들과 싸우다 사망했다.[11]
코크의 갈(Gall, 외국인 즉 바이킹) 수장인 그님베올루(Gnimbeolu)는 865년에 사망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 로흘란스 수장 그님 친시올라(Gnim Cinnsiola)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12] 869년에는 얼 토마르크(Earl Tomrark)가 "사납고, 거칠고, 잔혹한 로흘란스인"으로 묘사되었으며,[13] 연대기 저술가는 이 "브렌단 항해자(Brendan the Navigator)의 적"이 같은 해 포르트-마난(Port-Manann, 아마도 맨 섬의 항구)에서 광기로 죽었다고 기록했다.[14]

또한 869년에는 픽트족이 로흘란스에게 공격받았으며, 로흘란 내부에서 분쟁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흘란 왕 알브단(Albdan)의 아들들은 장남 라그날(Ragnall)을 쫓아냈다. 그들이 아버지를 이어 로흘란 왕국을 차지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그날은 세 아들을 데리고 오크니 제도(Innsi Orc)로 갔고, 라그날은 막내 아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의 장남들은 모든 곳에서 모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자부심과 야망에 부풀어 프랑크족과 색슨족을 공격하기 위해 브리튼 제도로 갔다. 그들은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로흘란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15]
이 기록은 몇 가지 의문점을 남긴다. 아믈라입, 이마르, 아우슬레(Auisle)의 아버지인 로흘란의 왕 고프라이드(Gofraid)[16]의 죽음은 873년 ''단편 연대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Ég righ Lochlainne .i. Gothfraid do tedmaimm grána opond. Sic quod placuit Deo''. (로흘란 왕, 즉 고프라이드가 갑작스럽고 끔찍한 발작으로 사망했다. 신의 뜻이었다.)[17]
오 코라인(Ó Corráin, 1998)은 이 기록이 스코틀랜드 바이킹 왕 고드뢰르(Godfraid mac Fergusa?)의 사망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18] 다른 학자들은 이 기록이 그의 아들 이마르의 죽음을 언급한다고 보기도 한다.[19] 그렇다면 앞서 언급된 "알브단"은 누구일까? 이 이름은 노르웨이 이름 할덴(Halden) 또는 하프단(Halfdan)의 변형일 수 있으며,[15] 이는 할프단 검은머리(Halfdan the Black)를 가리킬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라그날은 노르웨이의 로근발드 에이스테인손(Rognvald Eysteinsson)이며 하랄드 아름다운 머리(Harald Fairhair)의 형제일 수 있다(하지만 노르웨이 사가에 따르면 할프단은 로근발드의 할아버지였다).[20] 따라서 "로흘란스"는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전사들과 북부 제도(Norðreyjar) 또는 헤브리디스(Suðreyjar)에 기반을 둔 노르드계 섬 군대를 모두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였을 수 있다.
10세기 초 기록에 언급된 다른 로흘란스인으로는 잉기문드(Ingimundr)[21]와 스코틀랜드인에게 살해된 이아르그나의 아들 오터(Oitir)가 있다.[22] 9세기와 10세기 아일랜드에서 라이슬린과 로흘란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든, 후대에는 노르웨이를 지칭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058년 마그누스 2세 (노르웨이)(Magnus Haraldsson)는 "로흘란 왕의 아들"로 불렸고, 그의 조카 마그누스 맨발왕(Magnus Barefoot)은 약 40년 후 아일랜드 서부 원정 기록에서 "로흘란의 왕"으로 칭해졌다.[23]
2. 2. 웨일스
아일랜드어의 로흘란은 웨일스어 Llychlyn|리흘린cy과 어원이 같으며, 이 단어는 산문 설화인 ''쿨후흐와 올웬''과 ''로나브위의 꿈'', 그리고 웨일스 삼재시 35번의 일부 판본에서 스칸디나비아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나타난다.[24] 삼재시 35번의 이 판본들에서 Llychlyn|리흘린cy은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호스트의 이르프(Iwrch of the Hosts)의 목적지이며, 그는 섬의 각 주요 요새가 그가 데려온 병력의 두 배를 제공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브리튼의 군대를 고갈시켰다. 그는 단 두 명의 병력으로 시작했지만 수천 명과 함께 떠났다.[25] 같은 판본들은 또한 Llychlyn|리흘린cy을 호스트의 엘렌과 막센 윌레딕이 이끄는 군대의 목적지로 언급하는데, 막센 윌레딕은 역사적인 로마의 찬탈자 막누스 막시무스의 웨일스어 버전이다. 그러나 레이첼 브롬위치는 이 경우의 Llychlyn|리흘린cy이 Llydaw|리다우cy, 즉 아르모리카의 오기일 수 있다고 제안하며, 아르모리카는 다른 출처에서 막센의 일반적인 목적지이다.[24] ''로나브위의 꿈''에서, 마르크 압 메이르키아운(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의 마크 왕)이 이끄는 Llychlyn|리흘린cy 출신의 일행이 아서의 생생하게 묘사된 군대에 나타난다.[26] 브롬위치는 이 등장이 궁극적으로 웨일스 삼재시 14번을 기억해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삼재시 14번은 마르크 압 메이르키아운을 "브리튼 섬의 세 명의 항해자/선대 소유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하는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그들의 해상 기술로 유명했다.[26]3. 문학적 용례
로흘란은 아일랜드의 레보르 가발라 에렌gle에 나오는 포모르족의 땅이다. 레보르 나 후이데르gle와 ''린스터의 서''에서는 "거대하고 흉측한" 모습의 포모르족을 투아하 데 다난과 싸운 바다 악마로 묘사한다.[27]
이후 아일랜드 이야기에는 스칸디나비아의 로흘란이 등장한다. 이는 주로 콜간이라는 로흘란의 왕이나 그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 루 라와 피니언 연대기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28]
레보르 브레트나크gle는 Historia Brittonumlat를 게일어로 옮긴 판본으로, 스코틀랜드 아버네시에서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문헌에서는 5세기 전설적인 앵글로-색슨족 지도자 헨기스트의 딸을 "모든 로흘란 여성 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한다.[29]
로흘란의 브레칸 왕자의 모험은 코리브레칸 해협( Coire Bhreacaingla )의 이름 유래에 관한 신화 중 하나이다. 이 해협은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주라 섬과 스카바 섬 사이에 있는 소용돌이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해협의 이름은 50척의 함대와 함께 그곳에서 난파된 브레칸 왕자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덴마크 왕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노르웨이 왕자였다고 한다. 브레칸은 주라 섬 북서쪽 끝에 있는 Bagh nam Mucgla(돼지의 만)의 동굴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30][31] 해즈웰-스미스(Haswell-Smith, 2004)에 따르면, 아돔난이 쓴 ''성 콜룸바의 생애''는 이 재앙이 라슬린 섬과 북아일랜드 앤트림주 해안 사이에서 일어났음을 시사한다.[30] W. H. 머레이는 이 이야기가 원래 라슬린 섬과 앤트림주 해안 사이를 가리켰을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그는 10세기 문헌인 ''코르마크의 용어집''에 나오는 "니알 노이기얼라흐의 아들 메인의 아들 브레칸" 이야기를 근거로 든다.[32][33]
같은 이야기는 Bealach a' Choin Ghlaisgla(회색 개의 통로)라는 이름과도 관련 있다. 이곳은 스카바 섬과 룽가 섬 사이에 있는 더 북쪽의 조류 지역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자의 개는 간신히 헤엄쳐 육지에 도착해 주인을 찾아다녔다. 주라 섬이나 스카바 섬에서 주인을 찾지 못하자, 해협을 건너 룽가 섬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두 섬 사이 해협 중앙에 있는 Eilean a' Bhealaichgla 섬에서 발을 헛디뎌 거센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다. 그가 빠진 해협은 개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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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Lochlainn
https://www.oxfordr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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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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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ppins.or[...]
Appin Regiment/Appin Historical Society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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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Jura & the Corryvreckan ~ tales and legends from an Easter Expedition in 2004
http://www.ukseak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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