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서스턴 엘리엇
1. 개요
론서스턴 엘리엇은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한 역도 선수로, 1896년 아테네 올림픽 한손 역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영국의 첫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육상, 레슬링, 체조에도 참여했으며, 1899년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기록을 세웠다. 1900년 올림픽에서는 원반 던지기에 출전했으며, 1903년 프로로 전향 후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0년 사망했다. 그의 사진은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
영국의 체조 선수 -
맥스 휘틀록
맥스 휘틀록은 영국의 남자 체조 선수로, 올림픽에서 마루 운동과 안마 금메달을 획득하며 영국 최초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안마 2연패를 달성하여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
영국의 체조 선수 -
브라이어니 페이지
-
189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 -
카를 슈만
카를 슈만은 독일의 체조 및 레슬링 선수로서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체조 3관왕과 레슬링 금메달을 획득하여 4관왕에 올랐으며, 역도에서도 4위를 기록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체조 시범 경기에 참가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
189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 -
스테파노스 흐리스토풀로스
-
1896년 하계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비고 옌센
-
1896년 하계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 -
소티리오스 베르시스
소티리오스 베르시스는 그리스의 육상 및 역도 선수로,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원반던지기와 역도 양손 저크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포환던지기에 출전했다.
2. 생애 및 경력
론서스턴 엘리엇은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론서스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출생 전 가족이 인도로 이주하여 카르나타카 주 굴레드구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제4대 민토 백작을 수장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이었다. 엘리엇의 할아버지는 세인트헬레나 총독이었던 찰스 엘리엇이었고, 아버지는 인도 공무원으로 치안 판사였다.
1887년, 엘리엇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은퇴하고 가족과 함께 잉글랜드 에식스로 이주하여 농업을 시작했다. 13세의 엘리엇은 오이겐 산도우의 영향을 받아 역도 선수로 성장했다. 1891년, 16세의 나이로 런던 피카딜리의 카페 모니코에서 열린 최초의 영국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1894년 웨스트민스터의 로열 아쿠아리움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1896년 하계 올림픽에서 엘리엇은 한손 역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영국의 첫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양손 역도에서는 덴마크의 비고 옌센과 111.5kg을 들어 올렸지만, 조지 왕자는 옌센의 스타일이 더 낫다고 판정하여 엘리엇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엘리엇은 육상 100m, 레슬링, 체조 로프 오르기에도 출전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엘리엇은 1899년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900년 하계 올림픽 원반던지기에 출전하여 11위를 기록했고, 1903년 프로로 전향했다. 은퇴 후 잉글랜드에서 농사를 짓다가 1923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정착했다. 1930년 척추암으로 사망하여 폭너 묘지에 안장되었다.
론서스턴 엘리엇의 사진은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2.1. 인도 출생과 영국 이주
론서스턴 엘리엇은 1874년 인도 카르나타카 주 굴레드구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4대 민토 백작이 가문의 수장이었다. 엘리엇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치안 판사로 근무했다.
1887년, 엘리엇의 아버지는 인도에서의 직위를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잉글랜드 에식스로 이주하여 농업을 시작했다.
2.2. 역도 선수로의 성장
13세의 론서스턴 엘리엇은 체격이 매우 좋아 오이겐 산도우의 영향을 받아 뛰어난 역도 선수로 성장했다. 1891년 1월, 16세의 나이에 런던 피카딜리의 카페 모니코에서 열린 최초의 영국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3년 후인 1894년에는 웨스트민스터의 로열 아쿠아리움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2.3. 1896년 아테네 올림픽
1896년 하계 올림픽에서 론서스턴 엘리엇은 한손 역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영국의 첫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당시 역도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규칙이나 체급이 없었다. 엘리엇은 71.0kg을 들어 올렸는데, 양손 역도에서 112.5kg을 들어 올리려다 어깨 부상을 입은 덴마크의 비고 옌센은 57.0kg밖에 들어 올리지 못했다. 양손 역도 종목에서는 옌센과 엘리엇 모두 111.5kg을 들어 올렸지만, 조지 왕자는 더 나은 스타일로 들어 올린 옌센에게 1위를 수여하여 엘리엇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엘리엇은 역도 외에도 육상 100m, 레슬링, 체조 로프 오르기 종목에도 출전했다. 육상 100m 예선에서는 3위를 차지하여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레슬링 경기에서는 1라운드에서 독일의 카를 슈만에게 패했다. 체조 로프 오르기에서는 5명의 경쟁자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4. 올림픽 이후
1896년 하계 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엘리엇은 1899년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영국 역도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1900년 하계 올림픽 육상 원반던지기 종목에 출전하여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에는 역도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1903년에 프로로 전향한 후, 은퇴하고 잉글랜드에서 농사를 짓다가 1923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정착했다. 1930년 8월 8일 척추암으로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멜버른의 폭너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유산
1896년 하계 올림픽 역도에서 영국의 첫 올림픽 챔피언이 된 론서스턴 엘리엇은 다재다능한 스포츠인으로 기억된다. 그의 사진은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스포츠 섹션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