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츠 롱
1. 개요
루츠 롱은 독일의 육상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보여준 스포츠맨십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한 그는 1936년 올림픽에서 멀리뛰기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제시 오언스에게 축하를 보내는 등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군 복무 중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의 스포츠맨십은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올림피아'와 영화 '레이스' 등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조성되고, 스포츠 박물관에 유품이 전시되는 등 사후에도 기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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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카를 루트비히 롱 |
|---|---|
| 출생일 | 1913년 4월 27일 |
| 출생지 | 독일 제국 작센 왕국 라이프치히 |
| 사망일 | 1943년 7월 14일(30세) |
| 사망지 | 이탈리아 시칠리아 아카테 |
| 키 | 1.84m |
| 국가대표 | 나치 독일 |
|---|---|
| 종목 | 육상 멀리뛰기, 세단뛰기 |
| 소속 | Leipziger SC, Leipzig (GER) |
| 개인 최고 기록 | 멀리뛰기: 7.90m (1937년) 세단뛰기: 14.80m (1936년) |
| 올림픽 | 1936년 베를린 멀리뛰기 은메달 |
|---|---|
|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 1934년 토리노 멀리뛰기 동메달 |
| 1938년 파리 멀리뛰기 동메달 | |
| 소속 국가 | 나치 독일 |
|---|---|
| 군종 | 육군 |
| 복무 기간 | 1941년–1943년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전역 시칠리아 침공 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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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남자 멀리뛰기 선수 -
발데마르 슈테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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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 수훈자 -
에밀 자토페크
체코의 장거리 육상 선수 에밀 자토페크는 1948년 런던 올림픽 10,000m 우승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 10,000m, 마라톤 3관왕을 달성, '인간 기관차'라는 별명과 함께 인터벌 트레이닝 방식을 발전시켜 육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적 박해와 복권의 과정을 거쳐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 기려지고 있다. -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 수훈자 -
프란츠 요나스
프란츠 요나스는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7대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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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시 오군레예는 나이지리아의 육상 선수이며, 주로 단거리 달리기 선수로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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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라트케
리나 라트케는 1920년대 독일의 육상 선구자 중 한 명으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여자 800m에서 금메달과 세계 기록을 동시에 달성하며 여성 육상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루츠 롱은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언스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며 스포츠맨십의 귀감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국방군 오버게프라이터(상병)으로 복무하다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당시 비스카리-산토 피에트로 비행장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롱은 1913년 4월 27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1936년에는 라이프치히 스포츠 클럽에 가입했다. 졸업 후, 그는 함부르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2.2.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자국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대회였다. 롱은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멀리뛰기 3위를 기록하며 독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롱은 멀리뛰기 예선에서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미국의 제시 오언스는 첫 두 번의 도약에서 파울을 범하며 위기에 몰렸으나, 롱의 조언을 받고 세 번째 시기에서 성공하여 결선에 진출했다. (이 조언에 대한 진위 여부는 논란이 있다.)
결선에서 오언스는 8.06m를 기록하며 롱의 7.87m 기록을 깨고 금메달을 획득했고, 롱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롱은 오언스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스포츠맨십의 귀감이 되었다. 롱은 오언스와 함께 팔짱을 끼고 경기장을 나서는 모습은 인종차별을 극복한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역사에 남았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롱의 행동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롱은 멀리뛰기 외에 세단뛰기에도 출전하여 10위를 기록했다. 롱과 오언스의 경쟁은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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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과 죽음
롱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국방군에서 오버게프라이터(상병) 계급으로 복무했다. 1938년에는 돌격대에 입대하여 최종 계급은 돌격대 병장이었다. 1940년에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에 입당했다(당원 번호 8,051,702).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허스키 작전) 당시 비스카리-산토 피에트로 비행장 전투에서 7월 10일 중상을 입었고, 시칠리아 섬의 산 피에트로 클라렌차에 설치된 영국군 야전 병원에서 7월 13일(혹은 14일) 사망했다. 그는 시칠리아의 모타 산타나스타시아에 있는 전쟁 묘지에 안장되었다.
롱이 죽을 경우 오웬스에게 롱의 아들을 방문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도시전설이 있으나, 오웬스나 롱의 가족들은 그러한 편지를 본 적이 없으며, 롱이 독일군에 복무하면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가능성도 낮다고 알려져 있다.
3. 유산 및 평가
루츠 롱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보여준 스포츠맨십으로 인해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나치 치하에서 흑인 선수인 제시 오언스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하고 우정을 나눈 행동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스포츠 정신의 귀감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름을 딴 도로는 라이프치히의 스포츠 시설 근처와 뮌헨 올림픽 공원에 있다. 그의 메달, 사진, 문서들은 라이프치히 스포츠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09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롱의 아들 카이와 제시 오언스의 손녀 말린이 함께 남자 멀리뛰기 시상식에서 프레젠터를 맡았다.
3.1. 스포츠맨십
롱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보여준 스포츠맨십으로 인해,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나치 치하에서 흑인 선수인 제시 오언스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하고 우정을 나눈 행동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스포츠 정신의 귀감으로 평가받는다.
멀리뛰기 결승에서 제시 오언스가 8.06m로 롱의 7.87m 기록을 깨고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을 때, 롱은 2위로 은메달을 획득했음에도 오언스를 가장 먼저 축하했다. 그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팔짱을 끼고 탈의실로 걸어갔으며, 오언스는 "히틀러 앞에서 나를 친구로 삼는 것은 그에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순간 루츠 롱에 대해 느꼈던 24 캐럿의 우정에는 내가 가진 모든 메달과 트로피를 녹여도 그 가치가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롱의 행동은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롱과 오언스의 경쟁은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올림피아 – 민족의 축제에 기록되어 있다.
3.2. 사후
롱의 고향인 라이프치히의 스포츠 시설 근처 도로와 뮌헨 올림픽 공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그의 메달, 사진, 문서들은 라이프치히 스포츠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09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롱의 아들 카이와 제시 오언스의 손녀 말린이 함께 남자 멀리뛰기 시상식에서 프레젠터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