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존슨
1. 개요
루 존슨은 1960년대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이다. 1953년 뉴욕 양키스와 계약 후 마이너 리그를 거쳐, 1960년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1965년 월드 시리즈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1966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69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677경기에 출전하여 .258의 타율을 기록했다. 202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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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Louis Brown Johnson 루이스 브라운 존슨 |
|---|---|
| 별칭 | Sweet Lou 스위트 루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34년 9월 22일 |
| 출생지 | 켄터키주 렉싱턴 |
| 사망일 | 2020년 10월 1일 (86세) |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신장 | 180 cm |
| 체중 | 77 kg |
| 타석 | 우 |
| 투구 | 우 |
| 수비 위치 | 외야수 |
| 데뷔 | 리그: MLB 날짜: 1960년 4월 17일 팀: 시카고 컵스 장소: 캔들스틱 파크 상대: SF |
|---|---|
| 마지막 경기 | 리그: MLB 날짜: 1969년 9월 6일 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장소: 애너하임 스타디움 상대: CWS |
| 소속 팀 | 시카고 컵스 (1960)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61) 밀워키 브레이브스 (196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5~1967) 시카고 컵스 (1968)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68)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69) |
| 획득 타이틀 | 월드 시리즈 우승 (1965) |
|---|
| 타율 | 0.258 |
|---|---|
| 홈런 | 48 |
| 타점 | 232 |
| Baseball-Reference | Lou Johnson Career Statistics |
|---|---|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프런트 오피스 | MLB.com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프런트 오피스 디렉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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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로빈슨
재키 로빈슨은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초의 흑인 선수로 데뷔, 뛰어난 야구 실력과 용기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었으며 은퇴 후에도 인권 운동가와 사업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정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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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턴 하워드
엘스턴 하워드는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중 한 명으로, 뉴욕 양키스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하고 9번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32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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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쇼인딘스트
레드 쇼인딘스트는 "레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 코치로, 뛰어난 수비력과 양손 타격 능력으로 10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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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마틴
빌리 마틴은 뉴욕 양키스에서 이름을 알린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공격적인 "빌리 볼" 야구 스타일로 여러 팀을 이끌었지만 불화와 갈등, 사생활 문제로 해고와 복귀를 반복한 파란만장한 감독이다.
2. 초기 생애
존슨은 렉싱턴의 폴 로렌스 던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농구와 야구를 했다. 그는 애돌프 럽 코치 아래 켄터키 대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싶어 했으나, 당시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소속 학교들은 흑인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았다.
2.2. 학창 시절
존슨은 1934년 9월 22일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시드니 벨과 셜리 존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세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자매가 있었다.
존슨은 렉싱턴의 폴 로렌스 던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농구와 야구를 했다. 그는 애돌프 럽 코치 아래 켄터키 대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켄터키를 포함한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소속 학교들은 흑인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들이 인종 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3. 야구 선수 경력
존슨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복귀하여 자리를 잡은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조 토레에게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다저스에서 104경기, 1968년에는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127경기를 뛰었으며, 1969년에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67경기만 출전하여 타율 0.203에 그쳤다. 1969 시즌 말, 35세의 나이로 야구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8년 간의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 동안 존슨은 677경기에 출전하여 .258의 통산 타율과 48개의 홈런, 232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세 개의 외야 포지션에서 모두 .98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3.1. 마이너 리그 시절
존슨은 1953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약 8년 동안 마이너 리그를 전전한 후, 1960년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1961년 4월 1일, 컵스는 짐 맥아나니를 상대로 존슨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트레이드했다. 1962년에는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61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이후 브레이브스는 존슨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로 트레이드했고, 타이거스는 1963년과 64년 시즌에 그를 다시 마이너 리그로 보냈다. 그 후 타이거스는 투수 래리 셰리를 상대로 존슨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했다.
3.2. 메이저 리그 데뷔와 트레이드
존슨은 1953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약 8년 동안 마이너 리그를 전전한 후, 1960년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61년 4월 1일, 컵스는 짐 맥아나니를 상대로 존슨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트레이드했다. 1962년에는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61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이후 브레이브스는 존슨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로 트레이드했고, 타이거스는 1963년과 1964년 시즌에 그를 다시 마이너 리그로 보냈다. 그 후 타이거스는 투수 래리 셰리를 상대로 존슨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했다.
3.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존슨은 1965년 초 왼쪽 발목 골절로 인해 정규 좌익수였던 토미 데이비스가 시즌 아웃되면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복귀하여 자리를 잡았다. 1965년 9월 9일에는 샌디 쿠팩스가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 다저스의 유일한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1965년 월드 시리즈에서 존슨은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2개의 홈런을 포함하여 8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 두 번째 홈런은 결정적인 7차전에서 결승타가 되었다.
토미 데이비스가 좌익수로 복귀하고 윌리 데이비스가 중견수로 뛰면서 존슨은 1966년에 주로 우익수로 출전했다. 1966년 월드 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다저스 공격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4경기에서 3번의 완봉패를 당하고 단 2득점에 그쳤다. 존슨은 이 시리즈에서 15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시리즈 마지막 아웃을 폴 블레어에게 플라이 아웃으로 기록했다.
3.3.1. 1965년 시즌
존슨은 1965년 초 왼쪽 발목 골절로 인해 정규 좌익수였던 토미 데이비스가 시즌 아웃되면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1965년부터 메이저 리그에 복귀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해 다저스에서 130경기에 출전하여 .260의 타율, 57 득점, 58 타점을 기록했다.
1965년 9월 9일, 샌디 쿠팩스가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 다저스의 유일한 득점을 올렸다. 5회에 볼넷으로 출루한 후 희생 번트로 2루로 진루했고, 3루를 훔친 다음 컵스 포수 크리스 크루그의 송구 실책으로 득점했다. 7회에는 2루타를 쳐 컵스 투수 밥 헨들리를 상대로 유일한 안타를 기록했으며, 이로써 메이저 리그 역사상 9이닝 경기에서 양 팀을 통틀어 출루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다저스는 1965년 월드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맞붙었고, 이 시리즈에서 존슨은 2개의 홈런을 포함하여 8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 두 번째 홈런은 결정적인 7차전에서 결승타가 되었다.
3.3.2. 샌디 쿠팩스의 퍼펙트 게임
1965년 9월 9일, 존슨은 샌디 쿠팩스가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 다저스의 유일한 득점을 올렸다. 5회에 볼넷으로 출루한 후 희생 번트로 2루로 진루했고, 3루를 훔친 다음 컵스 포수 크리스 크루그의 송구 실책으로 득점했다. 7회에는 2루타를 쳐 컵스 투수 밥 헨들리를 상대로 유일한 안타를 기록했으며, 이로써 존슨은 메이저 리그 역사상 9이닝 경기에서 양 팀을 통틀어 출루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3.3.3. 1965년 월드 시리즈
1965년 월드 시리즈에서 존슨은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2개의 홈런을 포함하여 8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 두 번째 홈런은 결정적인 7차전에서 결승타가 되었다.
3.3.4. 1966년 시즌
토미 데이비스가 좌익수로 복귀하고 윌리 데이비스가 중견수로 뛰면서 존슨은 1966년에 주로 우익수로 출전했다. 타순에서 주로 3번 타자로 출전하여 강타자 토미 데이비스 앞에 배치되었으며, 152경기에 출전하여 526타수, 143안타, 17홈런, 71득점, 73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 시즌 존슨의 타율은 .272였고, 다저스는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 해는 샌디 쿠팩스가 심한 관절염과 3시즌 넘게 그를 괴롭힌 투구 팔의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은퇴하기 전 메이저 리그에서의 마지막 해였다. 1966년 월드 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다저스 공격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4경기에서 3번의 완봉패를 당하고 단 2득점에 그쳤다. 존슨은 이 시리즈에서 15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시리즈 마지막 아웃을 폴 블레어에게 플라이 아웃으로 기록했다.
3.3.5. 1966년 월드 시리즈
토미 데이비스가 좌익수로 복귀하고 윌리 데이비스가 중견수로 뛰면서, 존슨은 1966년에 주로 우익수로 출전했다. 타순에서는 주로 3번 타자로 출전하여 강타자 토미 데이비스 앞에 배치되었으며, 152경기에 출전하여 526타수, 143안타, 17홈런, 71득점, 73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 시즌 존슨의 타율은 .272였고, 다저스는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66년 월드 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다저스 공격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4경기에서 3번의 완봉패를 당하고 단 2득점에 그쳤다. 이 해는 샌디 쿠팩스가 심한 관절염과 3시즌 넘게 그를 괴롭힌 투구 팔의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은퇴하기 전 메이저 리그에서의 마지막 해였다. 존슨은 시리즈에서 15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시리즈 마지막 아웃을 폴 블레어에게 플라이 아웃으로 아웃되었다.
3.4. 선수 경력 후반기
이 시점부터 존슨의 메이저 리그 경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조 토레에게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1967년에는 다저스에서 104경기, 1968년에는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127경기를 뛰었으며, 1969년에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67경기만 출전하여 타율 0.203에 그쳤다. 그는 1969 시즌 말, 35세의 나이로 야구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약 8년 간의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 동안 존슨은 677경기에 출전하여 .258의 통산 타율과 48개의 홈런, 232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세 개의 외야 포지션에서 모두 .98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