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기
1. 개요
리승기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담양 출신의 과학기술자이다. 교토 제국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교토 제국대학 화학연구소 조교수를 역임했다. 1939년에는 비닐론 합성에 성공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합성 섬유를 개발했으나, 일제강점기 말 일본의 군사 정책에 협력하지 않아 투옥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을 지냈으나, 한국 전쟁 중 북한으로 건너갔으며, 북한에서 비날론 등 섬유 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으며, 1996년 사망 후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 이름 | 리승기 |
|---|---|
| 한글 | 리승기 |
| 한자 | 李升基 |
| 로마자 표기 | Ri Seunggi |
| 분야 | 화학 |
| 출생 | 알 수 없음 |
|---|---|
| 사망 | 알 수 없음 |
| 국적 | 북한 |
| 출신 대학 | 알 수 없음 |
|---|---|
| 학위 논문 | 알 수 없음 |
| 지도 교수 | 알 수 없음 |
| 지도 학생 | 알 수 없음 |
| 주요 업적 | 알 수 없음 |
|---|---|
| 소속 | 알 수 없음 |
| 수상 내역 | 알 수 없음 |
|---|
-
일제강점기의 과학자 -
이원철 (1896년)
한국 최초의 이학 박사이자 천문학자인 이원철은 연희전문학교 교수로서 한국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일제강점기 수양동우회 사건과 창씨개명 거부로 민족정신을 지켰으며, 광복 후 기상 분야와 교육 및 학문 발전에 헌신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학자 -
마원춘
마원춘은 북한의 건축가이자 정치인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별장 등 주요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김정은 집권 후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가 좌천 및 복귀를 겪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학자 -
계응상
계응상은 일제강점기부터 북한에서 활동한 유전학자이자 잠학자로, 북한 잠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재직 당시 리센코의 유전 이론을 비판하며 고전 유전학 연구를 옹호한 인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 -
김두봉
김두봉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 언어학자, 정치인으로, 주시경의 제자로서 한글 연구와 교육에 힘썼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조선독립동맹 결성,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으나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숙청되었다.
2. 생애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나, 중앙보통학교를 거쳐 마츠야마 고등학교 이과 갑류를 1928년에 졸업했다. 이후 교토 제국대학 공학부를 1931년에 졸업하고, 교토 제국대학 화학연구소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1939년 사쿠라다 이치로, 카와카미 히로시(다이닛폰 방적) 등과 함께 비닐론을 합성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 합성 섬유를 개발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일본의 군사 정책에 협력하지 않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해방 때까지 갇혀 있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대학 공학부장에 상당)을 맡았으나, 한국 전쟁 발발 후 북한으로 갔다(한국 측은 납북이라고 주장). 북한에서 비날론(비닐론의 북한 명칭) 등 섬유 공업 발전에 힘썼으며,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다.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핵무기 개발에도 관여하며 많은 과학 기술자를 양성했다. 1996년 2월 8일 사망했고, 2월 10일 국장이 거행되었다. 생전의 공적으로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2.1.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다. 중앙보통학교를 거쳐 마츠야마 고등학교 이과 갑류를 1928년에 졸업했다. 교토 제국대학 공학부를 1931년에 졸업하고, 교토 제국대학 화학연구소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1939년 사쿠라다 이치로, 카와카미 히로시(다이닛폰 방적) 등과 함께 비닐론을 합성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 합성 섬유를 만들었다. 전시 중 일본의 군사 정책에 협력하지 않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 갇혀 있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대학 공학부장에 상당)을 맡았다.
2.2. 한국 전쟁과 월북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으로 갔다(한국 측은 납북이라고 주장). 이후 북한에서 비날론(비닐론의 북한 명칭) 등의 섬유 공업 발전에 힘썼으며, 1962년-19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다.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가 설립되자 초대 소장이 되어 핵무기 개발에도 관여함과 동시에 많은 과학 기술자를 길러냈다.
2.3. 북한에서의 활동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으로 갔다(한국 측은 납치라고 주장). 이후 북한에서 비날론(비닐론의 북한 명칭) 등 섬유 공업 발전에 힘썼으며,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다.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가 설립되자 초대 소장이 되어 핵무기 개발에도 관여함과 동시에 많은 과학 기술자를 길러냈다.
3. 저서
* 리승기, 《세상에 부러운 것 없어라》 (평양: 외국문출판사, 1977), 〈비날론 이야기〉.
* 타니구치 마사카츠 (공저), 《초산화 법인 조견사 제조법》, 방직 잡지사, 1937-07-15.
* 재일본조선인과학자협회 번역위원회 (역), 《어떤 조선인 과학자의 수기》, 미래사, 196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