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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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처드 크레나는 미국의 배우로, 1926년 11월 30일에 태어나 2003년 1월 17일에 사망했다. 1937년 라디오 연기를 시작했으며, 1950년 영화 《렛츠 댄스》로 데뷔했다.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시트콤 《리얼 맥코이》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으며, 《슬래터리의 사람들》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람보》 시리즈에서 샘 트라우트먼 대령 역으로 출연하여 널리 알려졌으며, 1985년 《리처드 벡의 강간》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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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크레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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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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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Richard Donald Crenna |
출생일 | 1926년 11월 30일 |
출생지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사망일 | 2003년 1월 17일 |
사망지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학력 | 벨몬트 고등학교 |
모교 |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BA) |
직업 | 배우 감독 제작자 |
활동 기간 | 1937년–2003년 |
배우자 | Joan Grisham (1950년–1955년, 이혼) Penni Sweeney (1959년–2003년) |
자녀 | 3명 |
군 복무 | |
소속 국가 | 미국 |
군종 | 미국 육군 |
복무 기간 | 1945년–1946년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2. 생애
캘리포니아주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이탈리아계인 리처드 크레나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소개로 NBC 라디오에 출연하며 배우를 지망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졸업 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다 텔레비전으로 옮겨갔다. 『매코이 영감』, 『슬래터리 이야기』 등 텔레비전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샌드 페블즈』,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도 출연했지만,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에서 주로 활동했다.[4]
1982년 영화 『람보』에서 새뮤얼 트라우트먼 대령 역을 맡아 주목받았고, 이후 『람보』 시리즈와 『핫 샷! 2』(패러디)에 출연했다.
1959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차남은 배우 리처드 앤서니 크레나(Richard Anthony Crenna), 장녀 마리아 크레나(Maria Crenna)는 CBS의 부사장이 되었다.
2003년1월 17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7세.[4]
2. 1. 어린 시절과 교육
크레나는 1926년 11월 3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호텔 경영자인 어머니 에디스 조세핀(Edith Josephine)과 약사였던 아버지 도메니크 앤서니 크레나(Domenic Anthony Crenna)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계였다.[4] 크레나는 버질 중학교를 거쳐 벨몬트 고등학교를 1944년에 졸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 육군에 복무했으며, 1945년 2월 입대하여 1946년 8월까지 복무했다.[5][2]군 복무 후, 크레나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 입학하여 영어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카파 시그마 동아리 회원이었다.[5][6]
2. 2. 연기 경력
캘리포니아주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이탈리아계인 크레나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소개로 NBC 라디오에 출연하며 배우를 지망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졸업 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다 텔레비전으로 옮겨갔다. 『매코이 영감』, 『슬래터리 이야기』 등 텔레비전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샌드 페블즈』,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도 출연했지만,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에서 주로 활동했다.1982년 영화 『람보』에서 새뮤얼 트라우트먼 대령 역을 맡아 주목받았고, 이후 『람보』 시리즈와 『핫 샷! 2』(패러디)에 출연했다.
2. 2. 1. 라디오와 초기 텔레비전 (1937-1963)
크레나는 라디오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1937년에 그는 "모든 것을 잘못하는 아이" 역할을 맡아 ''보이스카우트 잠보리''에 출연했는데, 1948년까지 이 쇼에서 다양한 역할로 간헐적으로 출연했다. 이듬해 그는 1954년까지 연기한 ''더 그레이트 길더슬리브''에서 월터 "브롱코" 톰슨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1948년 이브 아덴, 게일 고든과 함께 라디오 코미디 ''아워 미스 브룩스''에서 어리숙한 월터 덴튼 역할을 시작했으며, 이 시리즈가 1952년 텔레비전으로 옮겨간 후에도 그 역할을 이어갔다.[5] 그는 1957년까지 그 역할을 유지했다. 그는 ''마이 페이보릿 허즈번드''(에피소드 "리즈가 12인분을 저녁으로 요리하다")에서 배달 소년으로 출연했고, ''어 데이트 위드 주디''(에피소드 "경쟁적인 식단" 외 다수 에피소드)에서 우기 프링글로, 그리고 ''조지 번스 앤 그레이시 앨런 쇼''(에피소드 "이웃집 딸을 훔쳐보다")에서 십대로 출연했다.크레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아워 미스 브룩스''에서 월터 덴튼 역을 맡았으며, 1952년 텔레비전으로 옮겨진 후에도 출연진으로 남았다.[5] 그는 1957년 이 쇼가 종영될 때까지 함께 했다. 그는 재닛 왈도와 함께 ''아이 러브 루시'' 에피소드 "젊은 팬들"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1955–56년 앤솔로지 시리즈 ''프론티어''[7]의 "존 레슬리의 10일"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주연을 맡았다. 1955년에는 ''백만장자'' 에피소드 "랄프 맥나이트 이야기"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크레나는 1956년 텔레비전 시리즈 ''아버지의 마음''의 "유망한 젊은이" 에피소드에서 우디라는 젊은이로 출연했다. 1957년에는 ''샤이엔'' (시즌 2, 에피소드 19)에서 은행 강도로 출연했다.[7]
1957년 ''아워 미스 브룩스''가 종영된 후, 크레나는 코미디 시리즈 ''리얼 맥코이스''에 루크 맥코이 역으로 합류했다. 그의 공동 출연자는 할아버지 아모스 맥코이 역을 맡은 월터 브레넌이었다. 크레나는 결국 6년 동안 (1957–1963) 이 시리즈의 네 명의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8]
2. 2. 2. 1960년대와 1970년대: 다양한 역할
딕 크레나(Dick Crenna)라는 이름으로, 그는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앤디 그리피스 쇼(The Andy Griffith Show)''의 8개 에피소드를 연출했는데, 여기에는 "새 인간 오피", "오늘의 설교", 그리고 고머 파일이 시작한 "시민 체포"가 포함된다.[5] 크레나는 또한 ''루 그랜트(Lou Grant)''의 1977년 에피소드인 "닭장"을 연출했다.[5]크레나는 ''슬래터리의 사람들(Slattery's People)''(1964–1965)에서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제임스 슬래터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시리즈에서의 연기로 그는 1965년 에미상에서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개인 성과상과 드라마 시리즈의 주연 배우의 뛰어난 지속적 연기상, 두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9] 크레나는 1965년 이 역할로 골든 글로브상 TV 스타상 –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66년 크레나는 스티브 맥퀸과 함께 1920년대 중국에서 불운한 미국 군함 선장을 연기한 영화 ''샌드 페블스(The Sand Pebbles)''에 출연했다.[8]
1970년대에 크레나는 ''탈주병(The Deserter)'', ''캣로우(Catlow)'',[10] ''정오의 사나이(The Man Called Noon)'',[11] 그리고 ''브레이크하트 패스(Breakheart Pass)''와 같은 서부극 드라마에 계속 출연했다. 그는 1972년 장피에르 멜빌의 마지막 영화인 ''언 플릭(Un Flic)''에서 주목할 만한 연기를 선보였다. 1976년, 크레나는 버나데트 피터스와 함께 출연한 정치 풍자 시트콤 ''올스 페어(All's Fair)''로 주간 네트워크 텔레비전에 복귀했다. 높은 기대와 좋은 평론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단 한 시즌만 방영되었다. 1978년 미니시리즈 ''센테니얼(Centennial)''은 제임스 A. 미치너의 역사 소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크레나는 1864년 콜로라도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명령한 정신 이상 종교 광신자 프랭크 스키머혼 대령 역할을 맡았다.[7]
2. 2. 3. 1980년대 이후: 람보와 그 이후
크레나는 1985년 영화 ''리처드 벡의 강간''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 에미상[5]과 골든 글로브상 미니시리즈 또는 텔레비전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12]크레나는 처음 세 편의 ''람보'' 영화에서 존 람보의 전 지휘관 샘 트라우트만 대령 역을 맡았는데,[13] 이 역할은 커크 더글러스가 촬영 시작 하루 만에 제작에서 하차한 후 그를 대신해 캐스팅된 것이었다. 트라우트만은 베테랑 배우에게 가장 유명한 역할이 되었고, 그의 연기는 광범위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14] 그는 또한 1993년 ''못말리는 비행사 2''에서 이 캐릭터를 패러디했다.[15][16]
크레나는 1988년부터 1994년까지 7편의 TV 영화 시리즈에서 NYPD 탐정 중위 프랭크 재넥 역으로 출연했다. 재넥 캐릭터는 원래 윌리엄 바이어의 소설 시리즈에 등장했다.[17][18]
2001년, 크레나는 쇼타임 영화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1981년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을 허구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3. 사망
4. 출연 작품
코미디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 (1959)
골든 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 (1965)
프라임타임 에미상 뛰어난 예능 개인 업적 후보 (1965)
프라임타임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 후보 (1966)
골든 글로브상 미니시리즈 또는 텔레비전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
에피소드: B-29: 시간에 갇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