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바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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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릭 바탈리아는 이탈리아의 배우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역사 영화, 검과 샌들 영화, 모험 영화, 스파게티 웨스턴, 공포 영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으며, 《한니발》, 《소돔과 고모라》, 《보물섬》, 《열 개의 작은 인디언》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1991년 마지막 영화를 촬영한 후 1999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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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릭 바탈리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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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카테리노 베르탈리아 |
| 출생지 | 코르볼라, 로비고, 베네토, 이탈리아 왕국 |
| 사망지 | 코르볼라, 베네토, 이탈리아 |
| 직업 | 배우 |
| 활동 기간 | 1954–1999 |
2. 경력
릭 바탈리아는 1950년대 후반부터 역사 영화와 검과 샌들 영화 장르에서 주로 활동하며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카를로 루도비코 브라가글리아 감독의 ''강철 십자군''(1958)과 ''한니발''(1959, 에드가 G. 울머 공동 감독) 등이 초기 대표작이다. 또한 리처드 윌슨 감독의 할리우드 모험 영화 ''에덴의 거친 바람''(1958)에 출연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1960년대는 그의 전성기로, ''정복자 카이사르''(1962), ''카이사르의 여왕''(1962) 등 역사 영화와 더불어 ''에스더와 왕''(1960), ''소돔과 고모라''(1962)와 같은 성서 영화, ''무어인의 공격''(1959), ''위대한 산도칸''(1963) 등 모험 영화, 심지어 ''악몽의 성''(1965)과 같은 공포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이 시기 후반부터는 독일 작가 칼 메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올드 샤터핸드''(1963), ''태양신의 피라미드''(1965) 등)과 스파게티 웨스턴( ''블랙 잭''(1968) 등) 장르에 자주 출연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1970년대에도 스파게티 웨스턴(''석양의 갱들''(1971), ''블레이드라는 남자''(1977))과 모험 영화(''황야의 부름''(1972), ''화이트 팽''(1973), ''화이트 팽에 대한 도전''(1974))에 꾸준히 출연하는 한편, ''보물섬''(1972)에서 스몰렛 선장 역을 맡거나 애거사 크리스티 원작의 ''열 개의 작은 인디언''(1974), 세르지오 레오네가 공동 제작한 ''천재, 두 파트너, 그리고 얼간이''(1975),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시간 문제''(1976)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연기 경력을 이어갔다. 이 외에도 ''그녀는 창녀가 슬프다''(1971), ''SS 특수 부서의 추방된 여성''(1976), ''에마누엘 수녀''(1977), ''철의 지사''(1977), ''38 갱의 귀환''(1977)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1980년대에는 ''자파토레''(1980), ''돈 보스코''(1988) 등의 작품에 참여했으며, 1991년 영화 Buck ai confini del cieloita를 마지막으로 1999년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2. 1. 1960년대: 전성기
바탈리아는 1950년대 후반부터 역사 영화와 검과 샌들 영화 장르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카를로 루도비코 브라가글리아 감독의 ''강철 십자군''(1958)과 브라가글리아 및 에드가 G. 울머 감독과 함께한 ''한니발''(1959)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또한 리처드 윌슨 감독의 할리우드 모험 영화 ''에덴의 거친 바람''(1958)에 출연하며 국제 무대에도 얼굴을 알렸다.1960년대는 바탈리아의 전성기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마우로 볼로니니 감독의 ''로마의 발코니에서''(1960)에 참여했으며, 성서 이야기를 다룬 ''에스더와 왕''(1960)과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대작 서사시 ''소돔과 고모라''(1962)와 같은 주요 작품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1960년대에도 바탈리아는 타니오 보치아 감독의 ''정복자 카이사르''(1962), 피에로 피에로티 감독의 ''카이사르의 여왕''(1962) 등 역사 및 검과 샌들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모험 영화 장르에서도 활약이 두드러졌다. 마리오 코스타 감독의 ''무어인의 공격''(1959)을 시작으로, 타니오 보치아 감독의 ''동방의 정복자''(1960), 루이지 카푸아노 감독의 ''성 마르코의 사자''(1963), 움베르토 렌지 감독의 ''위대한 산도칸''(1963) 등에 출연했다. 더불어 마리오 카이아노 감독의 공포 영화 ''악몽의 성''(1965)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히기도 했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독일 작가 칼 메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대표적인 칼 메이 원작 영화로는 ''올드 샤터핸드''(1963), ''태양신의 피라미드''(1965), ''잉카의 유산''(1965), ''윈네투와 올드 파이어핸드''(1966), ''죽음의 계곡''(1968) 등이 있으며, 스파게티 웨스턴 ''블랙 잭''(1968) 등에도 출연했다.
2. 2. 1970년대: 다양한 장르 도전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스파게티 웨스턴과 모험 영화에서의 활동은 197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대표적인 스파게티 웨스턴 출연작으로는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 ''석양의 갱들''(1971)과 ''블레이드라는 남자''(1977) 등이 있다. 또한, 잭 런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험 영화 시리즈인 ''황야의 부름''(1972), ''화이트 팽''(1973), ''화이트 팽에 대한 도전''(1974) 등에 출연하며 모험 장르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1972년에는 오슨 웰스 등 유명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보물섬''에서 스몰렛 선장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열 개의 작은 인디언''(1974)에 출연했으며, 세르지오 레오네가 공동 제작에 참여한 서부 영화 ''천재, 두 파트너, 그리고 얼간이''(1975)에도 참여했다.
이 시기 바탈리아는 스파게티 웨스턴과 모험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시간 문제''(1976)를 비롯하여, ''그녀는 창녀가 슬프다''(1971), ''여의사 에미의 사생활''(1976), ''SS 특수 부서의 추방된 여성''(1976), ''에마누엘 수녀''(1977), 파스콸레 스퀴티에리 감독의 시대극 ''철의 지사''(Il prefetto di ferro, 1977), ''배틀 포스''(La Lunga cavalcata della vendetta, 1977), ''38 갱의 귀환''(Ritornano quelli della calibro 38, 1977)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 3. 1980년대 이후: 후기 활동과 은퇴
1970년대 후반에도 SS 특수 부서의 추방된 여성(1976), 에마누엘 수녀(1977), 철의 지사(1977), 38 갱의 귀환(1977)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대에는 자파토레(1980)와 돈 보스코(1988) 등에 출연하였다. 그의 마지막 장편 영화 출연작은 1991년 작 Buck ai confini del cieloita이며, 1999년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였다.3. 출연 작품
- ''강가 소녀'' (1954) - 지노 로디
- ''쌀 소녀'' (1956) - 지아니
- ''정글 여신 리안'' (1956) - 승무원 (출연 표기 없음)
- ''롤랜드 더 마이티'' (1956) - 롤랑
- ''죽음을 위한 약혼'' (1957) - 카를로
- ''마이티 크루세이더스'' (1958) - 리날도 데스테
- ''에덴의 거친 바람'' (1958) - 가비노
- ''애도라빌리 에 부지아르데'' (1958) - 조르지오 피타고라
- ''볼가의 포로'' (1959) - 리젠코 중위
- ''무어인의 습격'' (1959) - 베장송 백작 롤랑
- ''한니발'' (1959) - 하스드루발
- ''동방의 정복자'' (1960) - 나디르
- ''로마 발코니에서'' (1960) - 카르피티
- ''에스더와 왕'' (1960) - 시몬
- ''크레타의 야수 미노타우르'' (1960) - 데메트리오
- ''노크하지 마세요'' (1961) - 굴리오
- ''정복자 시저'' (1962) - 베르킨게토릭스
- ''소돔과 고모라'' (1962) - 멜키오르
- ''카이사르의 여왕'' (1962) -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 ''성 마르코의 사자'' (1963) - 잔돌로
- ''위대한 산도칸'' (1963) - 삼빌리옹
- ''서커스의 아들'' (1963) - 스테피
- ''올드 섀터핸드'' (1964) - 딕슨
- ''슛'' (1964) - 니르완
- ''와일드 웨스트의 프레디'' (1964) - 스티브 퍼킨스
- ''아즈텍의 보물'' (1965) - 라자로 베르도자 대위
- ''태양신의 피라미드'' (1965) - 라자로 베르도자 대위
- ''토르투가의 모험가'' (1965) - 페드로 발베르데
- ''나이트메어 캐슬'' (1965) - 데이비드
- ''잉카의 유산'' (1965) - 안토니오 페릴로
- ''데스페라도 트레일'' (1965) - 롤린스
- ''위네투와 올드 파이어핸드'' (1966) - 멘도자 대위
- ''쓴 열매'' (1967) - 세바스티안
- ''증오의 긴 날들'' (1968) - 빅 그레이엄
- ''가장 긴 사냥''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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