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릉
1. 개요
마릉은 후한 시대의 관료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종형에게 의탁하여 성장했다. 건초 연간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장제의 알자로 임명되었으며, 광릉태수로 부임하여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염관 폐지, 세금 감면 등의 정책을 펼쳐 칭송을 받았다. 이후 한양태수, 단양태수, 회계태수, 하내태수를 역임하며 치적을 쌓았으나, 두헌에게 군비를 바치면서 백성에게 세금을 수탈한 죄로 연좌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영초 연간에 죄를 지어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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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 마씨 -
마식 (당나라)
마식은 당나라 중기의 인물로, 헌종 연간에 진사과에 급제하여 문종 연간에 재상이 되었으나 환관과의 관계로 파면되어 절도사로 좌천되었다. -
부풍 마씨 -
마융
마융은 후한 시대의 '통유'라 불린 학자이자 관료로, 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폭넓은 지식, 그리고 노식과 정현을 비롯한 제자 양성을 통해 후대 유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다수의 경전에 주석을 남겼다. -
후한의 관료 -
왕윤
왕윤은 후한 말 관료로서 동탁 암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황건적의 난 진압에도 공을 세웠으나, 동탁 제거 후 잔당의 반란으로 헌제를 지키다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 뛰어난 능력과 충절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후한의 관료 -
조조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인이었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으로 인해 후대 평가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마릉은 마원의 족손으로,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종형(사촌 형)인 마의에게 의탁하여 가업을 도왔다. 마의는 마릉을 친형제처럼 보살폈으며, 마의가 자식 없이 사망하자 마릉은 3년 상을 치렀다.
건초 연간에 군의 공조(功曹)가 되었고,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장제는 조정에서 마씨 일족이 축출되었을 때에도 마릉의 행실을 높이 사 알자(謁者)로 임용하였고, 장화 원년(87년)에 광릉태수로 전출시켰다.
당시 광릉 백성들은 기근에 허덕였다. 마릉은 조정에 염관(鹽官) 폐지를 상주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곳간을 열고 세금을 경감했다. 또 제방을 다시 쌓고 밭 20000ha에 다시 물을 대니, 관속과 백성들은 마릉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웠다.
영원 2년(90년)에 한양태수가 되어 위엄으로 명성을 떨쳤다. 대장군 두헌이 무위에 주둔하였을 때 마릉은 군비를 많이 바쳤는데, 이때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수탈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두헌이 주살되었을 때 마릉 또한 연좌되었다. 몇 년 후 강호(江湖) 일대에 도적이 창궐하여 단양태수로 발령되었고, 마릉은 병력을 이끌고 도적을 모두 소탕하였다. 이후 회계태수가 되어 치적으로 명성이 있었고, 하내태수로 전임되었다. 영초 연간에 죄를 지어 집에서 죽었다.
2.1. 초기 생애
마릉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종형(사촌 형)인 마의(馬毅)에게 의탁하였다. 마의가 자식 없이 죽자 3년간 복상(부모나 조부모가 돌아가신 뒤 상복을 입고 일정 기간 동안 근신하는 일)하였다.
건초 연간에 군의 공조(功曹)가 되었고,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장제는 조정에서 마씨 일족이 축출되었을 때에도 마릉의 행실을 높이 사 알자(謁者)로 임용하였고, 장화 원년(87년)에 광릉태수로 전출시켰다.
2.2. 관직 생활
건초 연간에 군의 공조(功曹)가 되었고,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조정에서 마씨 일족이 축출되었을 때 장제는 마릉의 행실을 높이 사 알자(謁者)로 임용하였고, 장화 원년(87년)에 광릉태수로 전출시켰다.
당시 광릉의 백성들은 기근에 허덕이고 있었다. 마릉은 조정에 염관(鹽官)을 폐지할 것을 상주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곳간을 열고 세금을 경감하였다. 또 제방을 다시 쌓고 밭 2만여 경(頃)에 다시 물을 대니, 관속과 백성들은 마릉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웠다.
영원 2년(90년)에 한양태수가 되었고, 위엄으로 명성을 떨쳤다. 대장군 두헌이 무위에 주둔하였을 때 마릉은 군비를 많이 바쳤는데, 이때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수탈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두헌이 주살되었을 때 마릉 또한 연좌되었다. 몇 년 후 강호(江湖) 일대에 도적이 창궐하여 단양태수로 발령되었고, 마릉은 병력을 이끌고 도적을 모두 소탕하였다. 이후 회계태수가 되어 치적으로 명성이 있었고, 하내태수로 전임되었다. 영초 연간에 죄를 지어 집에서 죽었다.
2.3. 말년
영초 연간에 죄를 지어 집에서 죽었다. 마원은 족손에 해당한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고, 종형(從兄) 마의에게 의지하여 가업을 도왔으며, 어머니를 같이하는 형제처럼 보살핌을 받았다. 마의가 자식 없이 사망하자, 마릉은 3년 상을 치렀다.